예술이란 무엇인가? 내면의 충동이다.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이 많은 순간 머릿속에서 혹은 몸이 시켜서 떠오르는 말못할 무언가를 겪고는 할 것이다. 차이라면 그것을 실제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와 동기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흔히 천재적인 예술가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면에서 치솟는 충동에 자신을 맡기며 창작에 매진하는 모습일 것이다. 이를테면 정신병원에 갇혀서도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충동속에 살다가 세상을 떠났던 이중섭처럼.
그냥 그리고 싶으니 종이가 없어도 맨바닥에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음악을 연주하고 싶으니 악기가 없는데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드럼의 비트를 흉내내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쓰고 잎은데 원고지도 뭣도 없으니까 작은 메모지에 짧은 문장으로 적어나간 것이 영원한 스테드셀러라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란 소설이었다. 그래서 관광지에 가면 그렇게 낙서가 많은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나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아주 유구한 어쩌면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다가 진짜 기념할만한 인물이 와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그것이 또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했다. 중국의 소설들에서 경치좋은 누각에 올라서 기둥에 시를 쓰는 장면이 괜히 등장하는 게 아니다. 바로 내면의 충동에 이은 자기확신적인 실천의 결과가 결국 작품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히틀러가 젊었을 적 화가를 지망했더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그래서인가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국가수반으로서 히틀러가 보여준 행보란 치밀하고 정교한 논리나 사유의 결과라기보다 즉흥적인 충동에 따른 것들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즉흥적으로 행동으로 옮기고, 그래서 결과가 좋으면 확신에 차서 그를 고집하며 밀어붙인다. 유대인 학살 역시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자신의 알량한 경험에 의한 순간적인 충동에 충실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학살 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능률과 효율을 따져가며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이 독일답다면 독일다운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조의 일생도 그와 비슷하다. 조조는 아들 조식과 함께 후한말 가장 뛰어난 문인 일곱 명을 뜻하는 건안칠자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문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재능과 역량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래서일까? 실제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의 일대기를 보더라도 그런 예술가적인 충동에 자신을 맡기는 듯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여백사를 죽인 장면도 그렇고, 동탁을 토벌하겠다고 격문을 돌리는 것도 그렇고, 집안의 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키더니 혼자서 장안으로 물러나는 동탁을 쫓다가 죽을 뻔한 위기도 겪었었다. 장수를 토벌하러 갔다가 미망인 추씨에게 마음을 빼앗겨 틈을 보인 탓에 아끼던 장수 전위와 큰아들 조앙마저 잃었던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정치가로서, 그리고 지휘관으로서 그가 가진 역량이 또한 그 이상이었기에 마침내 후한말의 혼란 속에서 가장 크게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인물이 어느날 갑자기 자기 아버지는 물론 일족들까지 누군가에게 모조리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내릴 수 있는 판단이란 무엇이었겠는가? 더구나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고 군사까지 일으켰는데 정작 도겸을 어쩌지 못하고 물러나야만 했다.
실제 당시 조조가 서주에서 백성들을 학살에서 당시든 이후로든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당장 도겸을 토벌하는 것조차 당시 조조가 서주에서 저지른 학살이 너무 잔혹했던 탓에 공손찬의 휘하에 있던 유비가 개입하면서 잠시 저지되었었고, 서주에서 무려 수 십만의 백성들이 아예 강물의 흐름마저 막을 정도로 무참히 학살되었다는 소식에 근거지였던 연주의 유력자들이 이반하며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릴 뻔까지 했었다. 오죽하면 조조와 막역한 사이였던 장막마저 진궁과 더불어 외부에서 여포를 끌어들여 모반을 일으켰었겠는가 말이다. 장막의 모반이 조조에게도 꽤 큰 충격이었는지 누가 조조 아니랄까봐 장막에 대해서는 그 일족을 아예 절멸시켜가며 복수를 하기도 했었을 정도였다. 더구나 서주의 학살 이후로 조조의 밑에는 못 있겠다며 뭇 뛰어난 명사들이나 백성들이 조조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가기도 했었다. 신야의 백성들이 조조 밑에서는 못살겠다고 목숨걸고 유비를 따라나섰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고, 조조의 천하만은 막아야 한다며 제갈량과 노숙 등 당대의 명사들이 연대하고 나섰던 이유이기도 했다. 관우가 번성을 포위하자 각지에서 호응하니 조조가 천도까지 고민했다는 것도 그만큼 조조가 지배하던 지역에서마저 민심이 좋지 않았다는 한 예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조조가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학살을 저지른 것이다? 그게 더 사이코다. 철저히 냉정하게 합리적으로 계산에서 그 필요에 따라 학살을 저지를 수 있을 정도면 그건 그냥 인간이기를 포기한 학살기계라 봐야 좋을 것이다. 그게 과연 조조를 위한 변명이 될 수 있을 지.
그냥 조조의 생애에서 수도 없이 발견되는 뒤를 생각하지 않는 충동의 결과라 보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타당한 해석일 것이다. 젊은 시절 조정을 초급장교로써 쥐락펴락하는 십상시의 조카를 때려죽일 수 있었던 것도 순간의 정의감에 도취된 결과였을 테고, 그래서 동탁이 조정의 전권을 장악하자 바로 도망쳐서는 황실을 보위하려 의군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동탁을 몰아내자고 모인 제후들이 지리멸렬하고 있으니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가 서영에게 제대로 털리고 죽을 뻔하기도 했었다. 참고로 이 서영이 이전에도 용맹을 자랑하면 화웅까지 죽인 바 있는 손견까지도 패퇴시켰던 대단한 인물이었다. 다만 나중에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러도 뒷수습이 될 만큼 사람도 권력도 세력도 다 갖추고 있었기에 그다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한중에서 유비와 지리한 대치가 이어지자 무심결에 계륵이란 말을 내뱉고, 그 의도를 양수가 알아채자 바로 죽여 버리고는 그 김에 군을 물려 버리는 것을 봐서는 죽을 때까지 그 버릇을 고치지는 못한 듯하다. 그래서 아들이라는 것들도 조비나 조식이나 그 모양들이었던 것이고.
한 마디로 그냥 아버지랑 가족들이 죽었으니 슬프고 화난 김에 다른 것은 아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떠오르는 대로 저지른 결과가 바로 서주대학살이었다는 것이다. 그만한 힘을 가져서는 안되는 인간이 그러한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당연하게 이어지는 결과라고나 할까? 하필 그런 인간이 천 수 백 년 뒤에 태어난 어느 코털과는 달리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재능이 뛰어났던 것이 수 십만의 생명과 나아가 그로 인해 정든 고향을 등져야 했던 그 이상의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제는 그를 어떻게든 합리화하고자 하는 시도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어느 교수를 사람취급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 십만의 무고한 목숨을 논리로 이해하려는 자체가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니. 그런 걸 계산할 수 있다는 자체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차라리 즉흥적인 충동이 더 인간적일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성공하고 승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역사의 어두운 일면이겠지만.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