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은, 더구나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원리주의적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은 엄격하게 청렴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고 이기를 넘어 국왕과 백성에 대한 극단의 이타를 강요한다. 그것이 바로 군자이고 선비가 이르러야 할 궁극의 목표였다. 유자의 길이었고 사대부의 길이었다.


그러나 정작 성리학을 원리주의적으로 추구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이건만 실제 현실에서는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는 모습들이 일상적으로 발견되고 있었다. 아니 사실 같은 시대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 보더라도 조선의 사대부들만 특별히 더 부패했다는 느낌은 그다지 없다. 지금도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나라들에서조차 공직자의 부정과 관련한 이슈가 거의 끊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리학을 추구하는 유학자이기도 했던 당시의 선비들의 부패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째서?


별 것 없다. 그들이 성리학을 배우는 이유가 그것이었으니까. 송나라 진종이 권학가를 지으며 그렇게 선비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책속에 쌀이 있고, 돈이 있고, 집이 있고, 미인이 있다. 책을 읽어 학문을 닦고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르면 그 모든 욕망을 이룰 수 있다. 지극히 욕망에 솔직한 중국인다운 사고방식이다. 돈을 벌기 위해 공부를 하고, 더 큰 집과 더 아름다운 미인을 얻기 위해 공부를 하고, 일신의 영달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공부를 한다.


과거공부라는 게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혼자서 골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니 한 사람의 노동력이라도 소중했던 농경사회에서 한창 일할 나이의 장정 한 사람이 아무것도 않고 공부만 하고 있다는 자체가 가계에 큰 손실이다. 적당히 사교육도 받아야만 한다. 유행하는 과거문제가 있고, 그 문제들에 대한 모범답안이 있다. 어떤 식으로 답을 써내야 채점에 유리한가 하는 정보도 얻어야 한다. 성리학의 나라이면서도 정작 성리학의 경전이 정식으로 유통되고 있지 않았기에 책 한 권 구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하자면 자신이 부자이거나, 아니면 문중의 힘을 빌어야 했었다. 이게 다 빚이다. 문중의 힘으로 과거에 급제했는데 관직에 나가서 문중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을까?


사적으로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공적으로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난 다음에 국가에 대한 충성이고 백성에 대한 헌신이다. 그마저도 후기에 이르러 아예 돈으로 관직을 사고 파는 지경이 되고서는 백성들을 상대로 본전을 챙기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라가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개인의 이기와 가문의 욕망을 위해 관직에 나갔으니 공적인 책임이야 항상 뒷전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굳이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식들을 교육시키는 목적이다. 자식들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어느 공직자가 사석에서 민중은 개돼지라 당당히 이야기했다 기사가 나왔었다. 우리 사회에는 신분제가 필요하다며 자신 역시 더 높은 신분으로 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 말했다 보도하고 있었다. 너무 솔직하다. 모두가 그같은 생각을 하지만 굳이 입밖에 내어 말하지 않는다.


검찰이 국민의 눈치조차 보지 않고 마음대로 사건을 결론짓고 기소내용까지 결정하는 이유다. 홍만표에 대한 수사발표를 하며 그들이 과연 국민의 여론 같은 것이 신경이나 썼을까? 까불면 잡아들이면 된다. 국회의원이라고 다를까? 언제부터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원이었을까? 그런데도 그런 국회의원들을 좋아라 반복해서 뽑아준다. 국민을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높은 자리에 올랐으니 그만큼 누려야 한다. 국민 자신이 느리는 부당함이나 불편함조차 그만큼 노력하지 않은 대가다.


부패마저 개인의 권리다. 높은 자리에 오르며 그만큼 해먹는 것이다. 그만한 자리에 오르지도 못하고 해먹는데 문제이고, 그만한 자리에 올랐으면서 해먹지도 않는 것도 문제다. 그만한 자리에서 그만큼 해먹으면 자신 역시 그만한 자리에 오르면 그만큼 해먹을 수 있다. 권력은 사유화된다. 사유화된 사회적 지위와 책임이야 말로 신분의 다른 말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과 다른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가진 별개의 존재다.


그래서 불법과외까지 시켜가며 자식들을 보다 좋은 대학에 보내려 발버둥친다. 보다 사회적으로 더 큰 책임과 의무를 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개인의 이익과 집안의 영화만을 위해서. 한 사람 출세하면 가족이 모두 달라붙는다. 괜히 청렴한 척 해봐야 친척들 사이에 안 좋은 소리만 돈다. 나름대로 청렴하다는 정치인치고 집안문제가 없는 경우가 드물다. 국회의원 보좌관에 친인척을 밀어넣는 관행도 이해할 만한 이유다. 오히려 적당히 먼 친척일 경우 청탁의 대상이 되기가 더 쉽다. 건너 건너 들어오는 부탁이 더 거절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


모두가 하나로 이어진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무엇을 위해 노력하라 말하는가. 권력은 트로피다. 사회적 지위란 타이틀이다. 그에 따른 보상이 필요하다. 공적 자산은 그를 위해 준비된 보상이다. 전정부의 부정에 대해 정작 사회가 크게 분개하지 않는 이유다. 그만한 자리에 있었고 그만한 능력이 있었으니 그만큼 해먹은 것이다. 자기가, 자기 자식이 해먹지 못한 것이 원통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 해먹은 것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항상 그같은 문제제기를 할 때마다 특히 기성세대로부터 들려오는 말이 있다. 배아파서 그러는 것인가. 억울하면 출세해라. 출세해서 너도 그렇게 해먹으면 된다. 떡을 만지다 보면 콩고물이 묻기도 한다. 콩고물을 묻히려 떡을 만진다. 달라지지 않는다. 뿌리부터 썩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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