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했다시피 나는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학원이란 곳을 가 본 적이 없었다. 과외는 물론 못했다. 당연하게 집에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학원 다닌다고 보충수업도 빠지도 일찍 일어나던 아이들에게 박탈감을 느껴야 했을까?

 

지금도 모르긴 몰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학원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학원이 뭔가? 공부방도 따로 없어서 온 가족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어렵게 집중하며 공부해야 하는 경우도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아예 대학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일찌감치 취직자리 알아보러 다니는 경우도 상당할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도 벌지 않으면 생계조차 막막한 학생들에게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부하는 다른 학생들은 얼마나 부러운 대상들이겠는가. 그러면 그런 학생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누리는 다른 학생들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하긴 대학만 해도 그렇다. 나 역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에 한 발 걸치고 있기에 괜히 누가 알거나 하면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는 했었다. 대개 두 가지였다. 그런 좋은 대학에 갔었다고? 그런데 이런 일이나 하고 있다고? 바로 그것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타이틀이 가지는 의미인 것이다. 단지 그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시장에서도 결혼시장에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된다. 그래서 시위에 나서는 것 아니던가 말이다. 명문대생들은 명문대생대로, 그렇지 못한 대학들 역시 그들 대학 나름대로 자신들이 앞으로 가지게 될 대학이라는 타이틀의 가치를 지켜야겠다. 그러면 그런 대학에 가지 못한 학생들에 비해 그들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인가.

 

실제 출신대학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해 많은 대학생들이 반대하고 있었다. 내가 노력해서 좋은 대학 간 것인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역차별 아닌가. 단지 대학 이름만으로 우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출신대학을 보지 않는 것인데 그것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말은 곧 출신대학의 이름만으로 그보다 못한 다른 대학 출신들을 차별하는 것을 용인하라는 뜻이지 않은가. 어차피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도 실력으로 줄세우면 좋은 대학 출신들의 성적이 압도적으로 좋은 경우가 더 많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면 말할지 모르겠다.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은 자신들 노력이 아닌가. 하지만 자기 자식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굳이 비싼 동네로 이사하고, 비싼 비용을 지불해가며 과외까지 받게 하는 것도 그 부모들이 더 일찍부터 노력한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자식은 자기처럼 안 만들겠다고 결혼도 않고 아이도 안 낳겠다 하는 것 아니던가.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성공한 삶을 살려면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를 부담할 자신이 없으니 실패한 인생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식 낳기를 포기하겠다. 2세를 위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성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럴 수 있는 위치가 되어 그렇게 하겠다는데 어째서 그것을 문제삼는 것인가.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최소한 부정한 수단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면 부모의 노력도 존중하고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자식의 장래를 위해 가장 유리해 보이는 학교와 과정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것들이 결코 누려서는 안되는 그들만의 특권이라는 것인가. 어떤 사회적인 규범들이 그것들을 금지하고 있었는가. 금지하고 있었다면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 그런 위치에 오르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특권들을 부정하는 자신들은 그런 위치에 오르는 것까지 거부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상당수 젊은층들이 주장하는 상대적 박탈감에 어이없음을 넘어 환멸까지 느끼게 되는 이유다. 자신들은 누릴 수 없었다. 자신들은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들이 누리고 가지고 있는 그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가지지 못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무어라 하겠는가. 명문대생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대학생조차 아닌 사람들에게는? 그러면 자신들도 그들에 비해 특권을 누리고 있으니 앞으로 공직에는 절대 나서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그런 도덕적 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보다 단 하나라도 나은 삶을 살았다면 그 사람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는 요양원에 누운 행려병자 말고 공직자가 될 사람이 하나도 없겠다.

 

무슨 도덕적인 문제인가? 수시를 보는 것이 비도덕적인 것인가? 특목고에서 수시를 준비하는 것이 비도덕적인 것인가? 과거 언론에서 수시전형을 위한 인턴십에 대해 홍보하듯 기사를 쏟아냈던 것을 기억한다. 일반고 출신들도 그를 위해 굳이 대학이나 연구소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인턴십을 통해 경력을 쌓고 있었다. 그 모든 이들은 부정한 짓을 저지른 것인가? 그래서 도대체 그놈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묻고 싶다.

 

모르던 것이 아니었다. 원래 세상은 이렇게 되어 있고, 그래서 더 높은 곳까지 오르고자 황금같은 시절을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 보냈던 것이었다. 그래서 굳이 그 어렵다는 과정을 헤치고 명문대에도 입학했을 것이었다. 순수하게 학문적인 열정을 위해서였다고? 그저 좋은 대학에서 최고의 교수진으로부터 자신이 관심있어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 지원했다 말하겠는가?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그냥 배가 아픈 것이다. 교수 부모를 둔 것이 배아프고, 장차 장관부모를 두게 될 것이 배아프고, 그런 사람이 자기들보다 수월하게 대학에 들어간 것 같은 것이 배아프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다면 말해보라. 그놈의 상대적 박탈감을 아주 갈갈이 찢어발겨 줄 테니.

 

어이가 없는 것은 그동안 사회적인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정책들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더 입에 게거품을 물고 특권을 주장하며 도덕적 책임을 물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하던 말과 행동들이 다르다? 뭐가 그렇게 달라서? 뭐가 그렇게 대단한 특권이기에? 외고를 없애자 했지 외고에 자녀를 보내지 말자 한 것이 아니다. 외고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외고가 가지는 장점들을 누리는 것은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그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사회적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보였던 모든 노력들까지 부정되어야 하는 것인가. 강사들의 일자리를 위해 열악한 이전의 처우를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수준이니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저임금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해 생활도 안되는 임금만을 받으며 일하도록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

 

불평등이 있음을 알고 그 불평등을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 불평등을 이용해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자 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도덕적으로 옳다 판단해야 하는가? 충분히 그 불평등을 이용해서 이익을 보고 있음에도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하나씩 노력해가는 사람들과 그를 반대하며 자신들 역시 그 불평등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들 가운데 누구에게 더 도덕적인 평가를 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모순된 현실들을 바꿔 보려고. 조금이라도 나은 현실을 만들어 보자고. 그런데 그런 시도들을 했다는 이유로 더 엄격하게 더 가혹하게 비난받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솔직하니 칭찬받고 응원받는다. 그들의 도덕과 정의는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아무튼 정치인들도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굳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 없다. 사회적 가치와 정의를 위해 말하거나 행동할 필요가 없다. 괜히 나중에 다 꼬투리잡힐 뿐이다. 그에 비해 평소 사회적 불평등이나 사회적 정의에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던 자유한국당은 얼마나 편한가? 그렇기 때문에 더 심한 불법과 비리를 저질러도 솔직하다며 지지를 받는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병신이었던 것이다. 아니 조국 후보자가 미쳐 있었던 것이다. 그냥 자기 위치에 맞게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말과 행동들을 해왔다면 지금 이같은 비난들을 받았었을까? 그래서 그들이 분노하는 대상이란 진정 누구이고 무엇이어야 하는 것인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한 마디에 순간적으로 머리끝까지 열이 뻗치고 말았다. 저 새끼들이 진짜 사람새끼들인가? 그나마 아예 아무것도 없는 이들이라면 이해가 가는데 자신들도 이미 기득권일 터였다. 그보다 훨씬 못한 처지의 사람들이 보면 이미 기득권에 속해 있을 터였다. 자신들이 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신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나은 것들을 누리는 것은 특권인가? 혹시 공산주의 혁명이라도 꿈꾸는 것인가?

 

일단 언론이 개새끼인 것이다. 하긴 그렇게 대학가서 졸업한 놈들이 지금 기자새끼들일 것이다. 지금 집회에 나선 대학생들의 미래다. 그러니 꼭 기자새끼들 떠도는 헛소리를 금과옥조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

 

좋은 말 나오지 않는다. 말 그대로 열이 뻗쳤기 때문이다. 원래 살아온 환경이 그래서 말이 좀 거칠다. 그나마 글로 쓰니 이 정도 정제가 되는 것이다. 유튜브는 그래서 못한다. 쌍욕이 나온다. 어려서 그런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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