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사태가 터지기 전 20대 남성들은 조국 전장관을 가붕게라 부르며 혐오와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국 전장관이 트위터를 통해 주장한 개천의 가재, 붕어, 게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자기들은 용이 되고 싶은데. 잉어가 되어 장차 용이 될 꿈을 꾸고 싶은데. 조국이란 인간이 자기들더러 가재, 붕어, 게인 채 그저 현실에 만족하며 살라고 한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특히 20대 이후에서 조국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더 강하게 드러내는 이유일 것이다. 조국 전장관이 실제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다. 반칙을 사용해서도 아니다. 보다시피 이준석의 반칙에 대해 분노하는 20대는 아예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 20대가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 바로 이명박이다. 어떻게 그토록 공정을 중요시하는 20대인데 부도덕과 비리, 범죄의 상징이랄, 심지어 그로 인해 감옥에 간 대통령을 가장 좋아할 수 있는가. 저들이 생각하는 공정이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공정과 전혀 다른 공정인 때문이다.

 

이를테면 조국 전장관의 저 트위터에 대해 4050은 많이들 공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굳이 용이 되지 않더라도 미꾸라지나 갯지렁이라도 그저 현재의 위치에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그것이 평등이고 공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위치에서 최대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최저임금도 올리고, 근로시간도 줄이고, 유급휴일도 늘리려 한다. 그런데 20대들에게는 그런 것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평소 공부도 않고 노력도 않았던 패배자들의 삶까지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지금 이 순간도 더 많은 시간을 노력해서 더 위로 올라가려는 자신들의 앞을 막아서는 것이 아닌가. 

 

실제 주 52시간노동에 대해 한 20대 공장노동자는 반대의 이유로 이런 논리를 내세우고 있었다. 내가 적은 시급일망정 주 70시간 80시간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데 정부가 그것을 막아서 나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 덜 일하고 여가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도록 하고, 더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게끔 정부에서 보장해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당장 일자리가 아쉬운 사람에게는 더 낮은 시급을 받고서라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인상도 반대한다. 나는 더 낮은 시급으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다. 아니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은 더 낮은 시급으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며 그것이 공정한 것이다.

 

20대 남성들이 이재용이나 정용진에 대해서는 불공정을 말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그들의 신분이라면 그러는 것은 옳다. 마찬가지로 이준석 역시 주류 중의 주류인 국민의힘의 대표로써 하버드 졸업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누려 온 반칙과 특권들이 정당화된다. 박덕흠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다. 나경원이나 주호영들의 문제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데 딱히 흠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조국을 용서하지 못한다. 자기들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 그것을 막아서고 있었다. 조국 전장관이 아마 국민의힘 소속이었고 이준석처럼 능력지상주의를 주장했다면 검찰의 수사에 오히려 반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누린다. 패자는 더 가혹하고 열악한 형벌로 내몰린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반대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란 징벌이다. 학교 다닐 때 노력 않고 공부 안해서 내몰린 징벌의 현장이다. 정규직은 어렵게 노력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포상이다. 부모가 노력해서 건물주가 되었다면 그 또한 자식에게 물려지는 포상인 것이다. 그래서 보면 이른바 갑질의 가해자 가운데 20대가 적지 않다. 오히려 더 가혹하고 잔인한 경우가 많다. 자신은 승자고 상대는 패자이므로 그 모든 것은 자신의 권리인 때문이다.

 

지금 박성민 청년비서관을 두고 젊은 층 사이에서 불공정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인 것이다. 박성민의 부모가 박덕흠 쯤 되었으면 아예 아무 논란도 없었을 것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의 후계자거나, 혹은 시험 더 잘봐서 서울대 혹은 해외명문대에 재학중이었어도 역시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검찰이었으면 어땠을까? 심지어 자칭 진보 가운데서조차 검찰이라면 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믿어 버리는 이유인 것이다. 명문대 출신에 어려운 시험 합격해서 검찰까지 되었다. 그러니까 검찰이라면 그래도 된다. 판사라면 그래도 된다. 정치인을 경멸하고 혐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놈들은 시험도 치지 않고 그저 인기에 기대 저 자리에 올랐다.

 

과정에서의 공정이지 결과의 공정이 아니다. 결과가 불공정할수록 과정은 공정해진다. 더 가혹하고 더 엄격하고 더 잔혹할수록 과정 또한 공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은 노력한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승자가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한다. 이준석처럼 되기 위해서. 이명박처럼 되기 위해서. 주호영이나 나경원 배현진처럼 되기 위해서. 당장 정의당 장혜영과 류호정을 보라. 청년정의당의 평소 논평들을 보라. 무언가 이어지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런 20대의 공정이 현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증오와 함께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 바로 코인인 것이다. 코인으로 일확천금을 노리겠다. 일확천금을 노려 신분상승을 이루겠다. 그런데 정부의 입장에서 그대로 방치해 둘 수만 없기에 자꾸만 개입하려 한다. 경계하고 규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현정부와 민주당이 싫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아닌 부동산에 대한 규제에 더 분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정은 내가 승자가 되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다.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한 처지로 내몰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준석을 선택하고 국민의힘을 선택하고 이명박을 그리워한다.

 

민주당이 생각을 잘해야 한다는 이유다. 그런 20대의 논리를 쫓다 보면 박용진처럼 되어 버리고 만다. 민주당의 정체성을 부정해야 하는 것이다. 기성세대로써 경륜과 지혜를 몸으로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사실 지금 4050도 젊을 때는 비슷한 생각을 하던 이들이 적지 않다.  4050이 지금처럼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그들이 현실을 통해 보고 듣고 겪으며 느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것들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할 것인가.

 

본능이다. 직관이다. 그냥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유전자가 시키는대로 자신의 이기를 쫓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살고 내가 승자가 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것이 정의다. 그래서 의사들이 특권을 누리려는 것조차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준석의 생각은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그런 2030의 정의와 닿아 있는 것이다. 이준석이 2030을 배신하고 유리되어 간다는 것은 단지 기성세대의 착각일 뿐. 그래서 영향이 없다. 웃기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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