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여전히 어제일처럼 떠오르는 장면이다. 재개발한다고 다 허문 폐허 위에서 동생에게 소리쳤다.

 

"나 초코파이 먹었다!"

 

친구들이 비웃더라. 초코파이 먹은 게 뭐 그리 자랑이냐고. 어릴 적 그리 간절했던 소원 가운데 브라보콘과 가나초콜릿을 사먹는 것이 있었다. 마음껏도 아니다. 그저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어귀에 있던 구멍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과자와 아이스크림 가운데 그 두 개가 그리 먹고 싶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시장바닥에서 초콜릿 사달라고 떼쓰며 울다가 엄마에게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모른다. 외갓집 간다고 이모네랑 같이 기차 타고 갈 때 이모부가 사줘서 처음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도 초콜릿이라면 환장을 한다. 

 

워낙 고기 먹을 일도 없어서 고기만 먹었다 하면 그리 설사를 해댔었다. 그 질긴 고기힘줄도 아깝다고 계속 씹다가 하마트면 기도가 막혀서 어린 나이에 요절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 당시의 내 눈에 매일 고기 먹고, 아이스크림 콘에, 초콜릿에, 심지어 장난감과 만화책까지 자기 방 가득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 어떻게 비쳤겠는가. 그런데 별 상관 없었다. 그나마 나보다도 더 가난하고 집안환경이 좋지 않던 녀석이 또 주위에 있었으니까. 내가 처음으로 돈벌이란 것을 한 것이 당시 그 노마랑 리어카 빌려서 끌고 다니며 폐지며 고철 모아서 고물상에 내다 파는 것이었다. 나중에 자전거와 신문, 우유까지 훔쳐서 돈버는 법을 가르쳐 줬는데 예나 지금이나 내가 그런 일까지 할 주제는 못되어 그만두었었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사는 곳까지 갈리며 소식을 듣지 못하게 되었지만 알아서 어디선가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것이다. 고3 시절에도 과외니 학원이니 하는 건 언감생심이고 그 흔한 참고서마저 과목마다 한 권 이상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세계사 참고서는 학년 초에 샀다가 잃어버려서 졸업할 때까지 참고서 없이 교과서만으로 공부해서 1년 내내 만점은 도맡았던 기억이 있다. 참고서 하나도 새로 사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보충수업을 받으려면 학교에서 지정한 참고서를 사야만 했었는데 나를 좋게 본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나만 면제가 되어 참고서 없이 필기만 열심히 하기도 했었다. 과연 그런 나의 눈에 수업이 다 끝나기도 전에 과외 받고 학원 다닌다며 학교 허락까지 받고 교실을 나서던 녀석들이 어떻게 비쳤겠는가? 그런데 역시나 예나 지금이나 어차피 있는 집 놈들이 있는 만큼 누리는 것이아 원래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게 빈부격차란 것이다. 그런 게 자본주의란 것이다. 아니 자본주의 이전에 인간의 사회란 그렇게 굴러왔던 것이다. 더 많이 가진 만큼 더 많은 것들을 누리고, 더 높은 곳에 있는 만큼 더 많은 것들을 허락받으며, 더 다양한 사람을 아는 만큼 그 관계에서 이익을 얻는다. 그렇게 나도 이리저리 알게 된 사람을 통해 일자리를 새로 얻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보다가 단골이라 친해진 주인의 소개로 백수시절 잠시 공장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 시장에서 사과장사를 하게 된 것도 그렇게 우연히 오다가다 만나 친해진 사람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런 것을 두고 불공정하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공장일이나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이나 남들 부러워 할 만한 대단한 것이 아닐 테니까. 특히 공장의 경우는 사람을 못 구해서 내 차례까지 돌아온 경우라 그리 추천할 만한 일은 되지 못했다.

 

조국 전장관이며 추미애 장관과 관련해서 공정 어쩌고 떠드는 소리들을 들으며 느끼는 감상이다. 그 주장대로라면 한 달에 한 번 고기 먹는 것도 어려운 나는 매일같이 고기를 먹고 그나마도 물려서 버리는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을 사들고 흘려가며 먹을 수 있는 녀석들에게 분노마저 느꼈어야 하는 것이다. 어째서 저들은 나처럼 참고서 하나로 공부하지 않는 것일까? 나처럼 보충수업받고 자율학습받으며 교과서 하나만으로 공부하지 않는 것일까? 나도 저들처럼 참고서도 몇 개 씩이나 사서는 과외받고 학원도 다녔다면 더 좋은 대학을 나와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어쩌겠는가? 그마저도 부모님들이 열심히 고단한 현실을 헤치며 살아온 결과였던 것을.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고 고단한 몸을 누이던 부모님을 기억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동생 먹이겠다고 어설프게 라면을 끓여야 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래도 정부에서 생활보호대상자라고 때되면 주던 쌀과 밀가루가 있었기에 아주 배곯지 않아도 되었던 것을 지금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부모가 조국이다. 부모가 추미애다. 부모가 대학교수고 억대의 상속자인데 과연 일용직이나 전전하는 부모를 둔 나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옳은가. 부모가 판사출신에 국회의원도 몇 선이나 했는데 알량한 자기집 하나가 평생 모은 재산의 전부인 부모를 둔 나같은 사람들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더 나은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잘못된 일인가 하는 것이다. 부모가 무역회사를 하기에 외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장난감들이 집에 가득하고, 삼촌이 일본을 자주 오가기에 일본에서 바로 신작 애니메이션을 구해와 학교에서 신나게 자랑도 할 수 있다. 그러면 결론은 무언가. 밤늦게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면서도 안전하게 다칠 걱정 없게 돌아가서 다시 가족과 함께 할 시간만 행복하게 기대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른바 가붕게론이다. 워낙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더욱 지지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애매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들도 먹고 살 만한 위치에 있기에 저런 모습들이 괜히 배아프고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의대생이란 놈들이 조국 전장관 딸을 가지고 그 지랄들을 하는 것일 게다. 그러니까 보안검색요원들 정규직 시켜준다니 불공정하다고 발광하던 놈들이 추미애 장관 아들에 대해서도 불공정하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 게다. 그런데 내 기준에서 보면 그런 놈들도 불공정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따위 소리 지껄이는 놈들 가운데 추천 없이 수시 거치지 않고 대학 들어간 놈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스펙 만들겠다고 이런저런 인맥이며 연줄을 이용하지 않은 놈들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없는 사람은 못 받는 과외며 학원이며 마음껏 누렸던 놈들이 대부분이란 것이다. 그래서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도 위화감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과연 인터넷에서 이러고 놀아도 괜찮은 것인가. 저들이 보기에 나는 그냥 불가촉천민인 것을.

 

내가 누렸어야 했는데. 조국 전장관도 추미애 장관도 아닌, 그들의 자식도 아닌 자신만 누렸어야 했을 텐데. 진짜 솔직한 속내였을 것이다. 가난한 놈들은 정규직도 안되고,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자기 일자리나 위협하는 것이고, 임대료를 적게 내도 임대인에게 불이익을 되면 피해를 보게 될 주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정이란 가난한 놈들은 더 가난하게, 자기들처럼 누리는 놈들은 더 동등하게. 그런 미움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감히 저런 비천한 놈들과 자기들이 나누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놈들이다. 아니라 생각하는가? 대충 하는 소리 보면 그들의 경제수준이 보인다. 진짜 아무것도 없이 악밖에 남지 않은 경우와 함께 그런 자신들의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고 싶은 욕망들을 보게 된다.

 

바로 조국 전장관이나 추미애 장관을 둘러싼 공정논란의 실체인 것이다. 아마 진짜 현실의 불공정을 몸으로 느끼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저 남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불공정을 말하는 놈들이 누리는 현실은 또 나와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가. 웃긴다는 이유다. 그래서 더욱 정의당이며 한겨레 같은 자칭 진보들에 대한 혐오도 깊어지는 것이다. 진정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정과 정의란 무엇인가. 진보는 없다. 자칭만 있을 뿐. 논란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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