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어느 중국의 현자는 벼슬을 권하는 왕의 제안을 받고는 그 자리에서 귀를 씻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현자는 그 상류로 소를 몰고 가서 물을 먹였다고 한다. 벼슬을 권하는 말 자체가 그만큼 더러운 것이고 그러므로 그를 거부하는 것이 현명하고 덕망있는 행동이라 여기던 당시의 사고를 보여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아무래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권력이란 자신을 억압하는 강제적인 힘인 만큼 당연하게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일 것이다. 우리만 그런가면 다른 나라들도 다르지 않다. 권력을 탐하는 것은 부정한 것이며 그 권력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은 부덕한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와 멀어질수록, 권력과 거리를 둘수록 그는 청렴하고 도덕적이며 덕망과 인품을 갖춘 말 그대로 훌륭한 인물로 여겨지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 권력을 쫓아서 정치에 몸을 담으려는 이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혐오와 경멸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꽤나 흔하다. 문제는 그럼에도 권력이란 인간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구조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권력은 근본 중의 근본이라 할 정도로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권력도 권위도 없는 동아리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누가 뭘 결정하든 아무도 따르지 않고, 그에 대해 누구도 강제하거나 제재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 모임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일정 이상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모임이라면 최소한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내규 정도는 있게 마련이다. 누가 그 모임의 행사를 주도하고, 그에 대해 어떤 강제력과 제재가 이루어지며, 그러므로 그 모임에서 계속 활동하기 위해서 자신은 어디까지 자신을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냥 나 하고 싶은대로 다 하면서 그냥 모임에 이름만 걸어두겠다는 것이면 절대 그 모임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 사람만 쫓겨나거나 아니면 모임 자체가 와해되어 사라지거나. 그런데 하물며 국가단위다. 수 백만, 수 천만, 심지어 억 단위가 넘어가는 사람들이 모여 이룬 거대단위인 것이다. 권력 없이 그런 것이 유지되고 관리될 수 있을까?
그래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인간은 정치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누가 권력을 가지고, 누가 무리를 주도하고, 그러므로 누구를 쫓아서 어떤 명령과 지시 아래에서 행동하는 것이 집단을 위해 이익이 될 것인가. 가장 연장자에게 권력이 아닌 권위를 쥐어주게 된 것도, 가장 용감하고 싸움을 잘하는 전사에게 권력을 안겨준 것도,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에게 권력의 자리를 내어 준 것도 그런 결과였다. 그런데 그런 권력과 그를 위한 정치를 부정하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이들이 권력을 멀리하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를 하지 않게 되면 그 사회는 올바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게 바로 윤석열이라는 괴물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일 것이다. 아니 이전에도 이미 히틀러라고 최악의 괴물이 최선의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전에도 썼지만 벌써 1990년대부터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치와 무관한 초인을 한결같이 바라오고 있었다. 김대중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그리 좋지 못했던 이유도 그가 너무 대통령 자리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권모술수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위해 때로 야합하고 때로 협잡을 부리며 때로 배신을 저지르기도 하고 때로 대중의 기대를 벗어난 독단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처음으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아직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열악한 상황에서도 많은 일들을 오로지 자신의 실력과 신념만으로 이루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찌되었거나 자신의 실력으로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던 이명박과 박근혜 또한 그 수단의 정당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는 있어도 자신이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일들을 대부분 실제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역시나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해 노무현과 문재인은 어떤가?
지지자들이 노무현과 문재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정치인답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답지 않게 순수하고 정치인답지 않게 선량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세력도 가지지 못했고, 불리한 상황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의도한 바를 이룰 수 있는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사실 이미 이때 깨달았어야 하는 것이었다. 정치인에게 정치란 곧 기술이고 능력이다. 정치를 할 수 있어야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약속한 것들을 실제 현실로 이룰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바란 것은 그보다도 더 정치와 거리가 있는, 전혀 정치따위 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었다. 대화도 없고, 타협도 없고, 조율도 없고, 상대에 대한 인정과 공존과 용납 또한 존재하지 않는 그런 막무가내를 우직함이라며 좋아서 선택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 법이 너무 엄하면 법을 피하려 속이는 이들만 더 늘어날 뿐이다. 너무 도덕적이어서, 너무 정의감이 넘쳐서, 그래서 조금의 더러움도 인정하지 않는다. 조금의 못나고 서툰 것도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십보 백보가 된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 자신의 기대감에 비추어 조국의 오십보는 처벌받아야 하고 곽상도와 나경원의 백보 천보는 괜찮은 것이 된다. 아예 정치에 대한 관심 자체를 부정하다 여기는 경우 그냥 정치적으로 흘러나오는 메시지에 쉽게 오염되기도 한다. 나는 정치를 모르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메시지를 너무나 손쉽게 믿고서 그에 휘둘리고 만다. 그럼에도 자신은 정치따위 모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어떤 책임도 없다. 오히려 정치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당신들이 정치병자고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기들은 정치와 무관하기에 당적도 없고,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도 지지하지 않고, 사안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과 정치인 개인의 차이에도 무지하고, 그 차이로 인한 실제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서도 판단지 못한다. 그러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내가 지금도 사방에 넘쳐나는 자칭 중도들을 보면서 오히려 태극기를 볼 때마다 더 큰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자기들은 너무나 깨끗하고 현명하기 때문에 정치같은 더러운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서 모두가 똑같다고 양비론이나 펼치는 놈들을 보면 경멸을 넘어 환멸의 감정까지 느끼게 되는 것은 모두 그래서인 것이다. 그놈들이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 지금도 친위쿠데타를 시도한 윤석열과 그를 막아내고 처벌까지 하려는 민주당을 같은 선상에 놓고 그저 정치싸움을 뿐이라 폄하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면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와 상식과 도덕의 기준이 무엇인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조금만 더러워도 다 더러운 것이면 결국 더 더러운 쪽이 승리하고 만다. 그동안 보수정당이 권력을 유지해 온 비결이었다. 자기들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민주당의 작은 잘못만 내보이면 다 똑같다고 그냥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린다. 그런 일을 보수 언론은 물론 진보적이라는 지식인과 언론과 정치인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되었는가?
정치는 물론 더러운 것이다. 남을 누르고 그 위에 서고자 하는 행위가 그저 선한 의도만 가지고 가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선한 의도와 선한 행위만으로 오로지 선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회란 최소한 인간이 인간인 이상 현실에 있을 수 없는 모르는 이들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환상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불필요한가? 권력은 필요없는 것인가? 그런데도 더럽다고 외면하면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선이고 정의고 도덕이고 윤리일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엄정하게 그 정도를 구분해서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오십 보와 백 보가 같다고 싸잡기보다 그 사이에서도 차등을 두고 차별을 두는 것이 곧 시비를 나누는 것이다. 그래도 그 가운데 누가 더 옳고 누가 덜 나쁘다. 그런데 그런 판단의 기준이 될 만한 자신만의 규준을 대부분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게 또한 무지고 어리석음인 것이다. 그냥 이놈도 저놈도 나쁘니 다 나쁘다. 그러면 자기만 오로지 옳고 바르고 깨끗한 것 같지만 그냥 뇌가 깨끗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모두를 위해 누가 더 나은 선택일 것인가?
정의를 위한 고민을 강요라 말한다. 도덕과 윤리를 위한 공감과 공유를 강제라 이야기한다. 그냥 다 똑같은 놈들이니 다 싫어하겠다. 다 거부하겠다. 여전한 그들의 태도가 바로 윤석열을 만든 것이다. 하긴 그런 놈들이 그토록 빨아대던 문국현이나 안철수도 사실 비슷한 수준이기는 했었다. 안철수도 지금 와서나 조금 정치인다워진 것이지 국민의힘 시절까지만 해도 뭐 이런 놈이 다 있는가 싶은 수준이었었다. 그래도 정치력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부족했어도 노무현이나 문재인이 끼친 해악은 그리 크지 않았으니 이 또한 차별을 두어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치란 무엇이고 권력이란 무엇이며 공동체를 위해 자신들은 어디까지 알고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가? 괜히 역사상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시도들이 실패로 끝났던 것이 아니란 것이다. 미국도 그 길을 밟아 가고 있는 중이다. 유럽도 지금 많이 위험하다. 누구 때문이라고? 바로 그런 놈들 때문이다. 혼자서만 옳은 자들. 자기 혼자서만 깨끗하면 좋은 병신들. 가장 쓰레기들이다. 2찍 진보가 세상에 가장 해악이 되는 놈들이라는 이유다. 그 새끼들은 뒈져도 존중할 가치가 없다. 그 비슷한 길을 걷는 놈들이 있다. 끔찍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