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이 청년남성을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둘이다. 하나는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말과 글이 나오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일단 청년남성들 사이에서 어떤 말이 돌면 그것을 뒤따라 주워먹기 때문이다.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 사람은 무지할수록 정의롭다. 세상은 그만큼 복잡하다. 수없이 다양한 이유와 사정들이 존재한다. 그런 모든 요소들을 이해하게 되면 그 순간 정의는 오염되고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현실 앞에 자신의 정의를 타협하는 법을 알아가게 된다. 내가 지금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짜 한나라당만큼이나 끔찍하던 게 민주당이었었는데.

 

어째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더욱 선명하고 순수한 주장을 펼치는 진보정당이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아 왔었는가. 때로 어이없이 양보하고 후퇴하면서도 그런 다양한 현실의 요인들과 협상하며 공존을 꾀하는 민주당을 대중이 선택해 온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미친 짓 하기보다 차라리 조금 모자른 바보로 남는 쪽이 현명하다. 그래서 알아야 한다. 과연 어떤 요인들이, 어떤 사정과 이유들이, 어떤 문제와 요소들이 그런 결과로 이어지게 하는가. 그런데 그런 부분들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면 현실은 그야말로 정의따위 없는 아싸리판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전제한다. 현실따위 상관없이 자기 머릿속에서 가장 순수한 정의와 도덕만을 설정한다. 거기서 벗어나면 모두 악이다. 전부 똑같은 악이다. 청년들이 순수하다는 이유다. 그런 만큼 청년들은 순수하게 악하기도 하다. 그들의 순수란 현실을 벗어난 때로 공상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으로 모든 청년들이 정규직이 되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도 존재해서 노력하지 않은 징벌을 받아야 하고, 노동자로서 높은 급여와 대우를 받아야 하지만, 고용하는 입장을 고려해서 기업에 손해가 되지 않도록 너무 높아서도 너무 대우해서도 안된다. 아무튼 자기가 생각하기에 좋아 보이는 것은 다 주장하다 보니 그 안에 모순까지 수도 없이 뒤엉키고 마는데 그마저 무시하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순수인 것이다. 그런 설익은 모순들을 체계화하여 정리하라고 지성이 존재하는 것인데, 인터넷이란 그런 지성 없이도 자기들끼리 소통하며 그런 모순된 순수를 자가단조하게 된다.

 

사실 최근 일도 아니다. 80년대 운동권도 보면 주장하는 것이 서로 모순되는 게 많았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좋아서 다 한꺼번에 주장하다 보니 안에서 논리가 붕괴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운동권은 상당히 권위적인 방식으로, 마치 군대처럼 결사처럼 운용되고 있었다. 민주화 이후 운동권이 통일성을 잃고 와해 된 이유다. 90년대에도 2천년대 초반에도 그런 식으로 아직 설익은 논리와 주장들은 각각 따로 놀면서 세상의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현실정치에 대한 불만도 많았던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가장 강하게 비난하던 것이 어디의 누구일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청년들의 불만이라면 자신들의 올곧고 순수한 정의를 제도권이 제대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제도권이란 그런 섣부른 정의를 현실과 절충하여 타협점을 찾아가는 역할을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이 또한 지성이기도 하다. 대부분 정치인들은 아무리 이념이 달라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대중을 쫓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앞에서 그들이 보지 못한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그래서 대중이 주장한다고 다 듣기보다 때로 반대편에서 설득하는 역할 또한 충실히 하려 해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역할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선 것이 하태경과 이준석이었다.

 

아니 이제 하태경은 아니다. 하태경은 어찌되었거나 주류정당의 주류정치인이다. 그 정도로 생각이 없는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 이준석은 국회의원도 뭣도 아니다 보니 그런 책임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원래 인간의 바닥이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대중의 - 특히 20대 남성들의 직관적이고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정의를 받아 사유를 거치지 않고 대변하는데 익숙하다. 아니 그런 데 익숙하다 보니 이제는 아예 생각하는 능력 자체를 잃어버린 듯하다. 사유는 없고 논리의 궤변만 남는다. 그런 이준석을 본받으라는 자칭 진보는 그런 점에서 얼마나 지성이란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인가.

 

이준석의 주장을 살펴보면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맹목과 증오다. 공포 이상으로 순수하다. 맹목적인 선과 정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그를 벗어난 모든 것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통해 자신의 선명함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다. 원래 사유를 거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들이니. 자신의 20대 시절을 떠올려보면 바로 이해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준석의 지금 나이를 생각하면 철이 덜 든 것인지, 아예 안 든 것인지.

 

이준석이 주장하는 것들인 민주당 초선들이 주장하는 것과 그 논리적 구조에서 거의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사유가 없다. 사실에 대한 이해가 없다. 그냥 그러니까 그렇다 주장하는 것이다. 자료조사없이 쓰여지는 웹소설들처럼. 내가 이준석을 병신이라 여기는 이유다. 뭐라 열심히 떠드는데 알맹이 없기는 진석사보다 더하다. 그래서 더 웃긴다. 진보와는 전혀 거리가 먼 그런 이준석의 주장들을 띄워주는 자칭진보는 뭐하는 존재들인가.

 

어쩌면 제도권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일베라는 표현이 적절할 지 모르겠다. 정의당에도 비슷한 인간이 둘 쯤 보이는데. 주장하니 논리가 되고 근거가 된다는 병신들이다. 참 닮아 있다. 합당의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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