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차라리 위안부운동을 이쯤에서 그만해야 한다 주장했던 것이다. 나는 누구들처럼 무책임하지 않으니까. 도울 수 없다.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아무것도 않고 있는 이상 나같은 미미한 존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냥 활동가들 남은 삶이라도 편하게 위안부운동도 접고 정의연도 해체하고 자유롭게 살라 말해주는 것 뿐.

 

내가 이번 정의연 논란을 지켜보며 더욱 대한민국 자칭 진보들과 자칭 지식인들에게 깊은 혐오감을 가지게 된 이유다. 차라리 나처럼 돌을 던졌어야 했다. 어차피 돕지 않을 것이면 더이상 괜한 수고와 고통을 겪지 않도록 포기하게라도 해주었어야 했었다. 보수언론이 공격하고, 보수정치권이 합세하고, 여론이 불리하게 움직이는 것 같으니 차마 욕먹기는 싫어서 정의연의 편에서 한 마디 거드는 말조차 못한다. 언론이 공격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고, 보수정치권이 공격하는 것도 그만한 빌미가 있었을 것이니 정의연이 더 잘했어야 했다. 반성하고 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사실상 보수언론과 보수정치권의 공격을 인정한다는 뜻 아닌가.

 

그런데 더 역겨운 것은 그러면서도 위안부운동의 취지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위안부운동을 이어나가야 한다 주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기세등등해진 보수단체들이 더 많이 달려들어 집회 자체를 훼방놓고 있는 와중에도, 자신들의 선의와 그동안의 노력까지 모조리 부정당한 채 상처투성이로 너덜너덜해진 상황을 보면서도. 사람이 언제 땀을 흘리는 지 아는가? 심화가 뻗친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교감신경의 작용으로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고, 땀까지 비오듯 흘리게 된다. 근육에 경련이 오고, 갑자기 오감의 감각이 마비되고, 소화기관에도 분명 이상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윤미향 의원을 두고 그들 자칭 진보 자칭 지식인들은 무어라 하고 있었는가.

 

차라리 일찌감치 포기하고 해체한 뒤 흩어졌으면 저런 비참한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버티려다 보니까. 그래도 악착같이 견뎌보려다 보니까. 그런 점에서 오히려 정의연 해체하라 대놓고 떠들어댄 보수언론과 보수정치권이 자칭 진보, 자칭 지식인들보다는 더 솔직하고 더 의미있는 주장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되도 않는 의혹으로 오물을 묻히고 상처까지 헤집고 있는데 자기는 더러워질 수 없으니 한 마디 보태지도 못하면서 그냥 견디라. 그냥 참으라. 그냥 잘하라. 오죽하면 아무도 정의연을 돕지 않으니 정의연의 편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김어준마저도 상종못할 인간으로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그래도 정의연의 그동안 활동을 지지해 왔고 앞으로의 활동 또한 지지할 것이기에 뻔히 예상되는 언론의 공격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오물구덩이를 뒹굴 각오까지 했던 김어준이 어째서 그런 놈들에게 비난을 들어야 한다는 것인가.

 

내가 그래도 고작 블로그에서 끄적이는 수준이라 할지라도 글이라는 것을 쓰면서 한 가지 반드시 지키고 싶었던 원칙이 있었다. 비겁해지지 말자. 해야 할 말이 있으면 해야 하는 것이다. 설사 그로 인해 함께 욕먹고 함께 조롱을 듣더라도 내가 그리 판단했고 필요하다 여겼다면 마땅히 해야 할 말은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뭐 대단한 것 해 준다고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짧지도 않은 내 글을 읽어주고 하겠는가. 유튜브도 저리 많은데 이미 시대에 뒤쳐진 블로그 글따위 일부러 찾아와서 읽는 사람들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겠는가. 기껏 찾아와서 욕이나 지껄이고 돌아가더라도 그래도 솔직한 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차라리 진중권이 진보인 연 지식인인 연 하나마나 한 듣기 좋은 소리나 반복해서 지껄여대는 허깨비들보다는 낫다. 욕먹기 싫다면 그냥 입 쳐닫고 살면 그만인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J를 보면서 더욱 확실히 깨달았다. 진짜 조용했다. 평소 그리 입바른 소리를 떠들어대던 자칭 진보, 자칭 지식인 가운데 과연 누가, 몇이나 정의연을 위해 기꺼이 모든 언론과 여론의 공격까지 감수하며 전면에 나서고 있었는가. 김어준 뿐이다. 내가 김어준을 참 한심하게 보는데 그래서 내가 김어준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중권에 쌍욕을 하면서도 진중권을 아주 무시하지는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면서도 그렇다고 자신이 공격당할 상황을 꺼려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이용수 할머니의 진의를 의심했다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고, 정의연의 의혹들에도 편들었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고, 혹시라도 사실로 드러났을 경우 책임도 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위안부운동의 취지가 옳았다는 사실 역시 지식인으로서 부정해서는 안된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래서 정의연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나도 같이 돌을 던질 텐데, 너희는 원래 선의로 하던 것이니까 그마저 모두 견디며 하던 운동을 계속 하라. 사이코패스란 바로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차마 더이상 정의연에게 위안부운동을 계속하라 못하겠던데.

 

사실 빚을 진 것은 정의연이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들과 대한민국 사회 전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수가 무려 수 백에 이르렀던 적도 있었다. 당시에도 정대협 활동과의 수는 모두 해봐야 열 명이 채 되지 않았었다. 대부분 시민들이 먹고사느라 바빠서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동안에도 정대협 활동가들은 항상 피해자들의 곁을 지키며 그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왔던 것이었다. 자칭 진보, 자칭 지식인들이 다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었다. 그렇게 자기 생활조차 없이, 거의 최저임금에 가까운 돈만 받으면서, 다른 수입은 거의 기부하다시피 해가며, 수 십 년을 이 하나를 위해 헌신해 왔는데 이제 앞으로는 욕까지 더 먹어가며 계속해야 한다니. 사람이 염치가 있다면 어떻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차라리 포기하면 편해진다. 그냥 실패했다 여기고 아예 놓아 버린다면 더 힘들고 괴로울 일도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그러기를 바랐던 것이었는데. 아마 남은 활동가들의 심정도 거의 비슷한 정도로 처참하게 갈기갈기 찢겨 있을 것이다. 보수언론이나 정치권이야 원래부터 정대협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누가 마지막 칼을 그들의 심장에 겨눴는가? 이쯤에서 진짜 놓아주는 것이 저 분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은 아닌가.

 

대한민국 모두가 적으로 돌아선 상황이란 것이다. 자칭 보수도, 자칭 진보도, 그동안 자신들과 연대해 왔던 지식인사회도, 그나마 지지율이 아직 크게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니 민주당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텨주고 있는 정도다. 더이상 위안부운동을 이어나갈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절망감과 상실감이 어떤 이유로든 불행한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 보는 것이다. 어째서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자기 편할 궁리만 하는 것인가.

 

그동안 정대협과 자칭 진보들 사이의 유대를 모르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시민사회도 이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공격당할 때 자칭진보는 절대 자신들을 위해 나서주지 않는다. 기껏해야 지켜보거나 상황이 불리하면 오히려 함께 돌이 아닌 칼을 휘두르며 나선다. 이번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게 자칭 진보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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