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발악하는 하이에나 한 마리에 사자떼가 주춤하는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산더미만한 덩치의 코끼리가 그러나 사납게 날뛰는 쥐를 보고 겁먹고 멈춰선다. 100만 대군이면 그냥 싸우지 않고도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있게 출진했는데 정작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적을 보자 움츠러들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의당이나 한겨레나 그동안 정대협시절부터 연대해 온 세월이 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뻔히 속이 보이는 공격에 합세할 수 있는가. 정의연에 아예 모를 그들이 아닌데 어째서 조금만 사정을 알면 바로 이해가 가능한 사안에 대해서까지 수구언론과 정치권과 손발을 맞춰가며 공격에 가담하고 있는 것인가. 김재련이 박원순을 저격하며 나타난 순간 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러고보니 자칭 진보는 여성주의에 점령된 지 오래였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썼을 것이다. 여성주의의 뿌리에 대해서. 그리고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여성주의에 씌워진 원죄의 굴레에 대해서도. 아직까지도 박근혜가 무고하며, 박근혜와 최순실이 모두 여성이라 부당하게 탄압받은 것이라 믿는 극렬 여성주의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그들 박근혜 정권에 부역했던, 친일과 친독재에 뿌리를 둔 여성주의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원죄를 건드리는 정의연을 공격하고 박원순을 짓밟고 다시 주도권을 쥐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 수구진영과 손잡고 총궐기하여 민주당을 주저앉히려 한 것이었다.

 

아마 지지자들 만큼이나 민주당 정치인들도 그리 믿고 있었을 것이다. 180석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정의당까지 190석에 이르는 의석을 범진보가 확보한 이상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개혁법안들을 입법할 수 있을 것이다. 감히 언론도 야당도 자신들을 막아서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언론이 하나가 되어 정의연을 공격하고, 여성주의를 무기로 박원순을 짓밟는 모습을 보면서 그만 현실을 깨닫고 만 것이었다. 세상에 민주당 편은 자기들과 지지자들 밖에는 없다. 언론도, 검찰도, 그래도 진보를 자처하던 지식인사회들조차 모두가 자신들을 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정부 관료들마저 저들을 등에 업고 대통령마저 우습게 여기며 덤비는 상황에서 과연 자신들이 저들과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이낙연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민주당 전체가 자칭 진보와 자칭 진보가 손잡은 기득권의 총궐기에 지레 겁먹고 주저앉아 버린 것이 문제란 것이다. 이낙연은 일어나서 싸우고자 하는 이들의 뒤를 두텁게 버티는 존재이지 자기가 앞장서서 피투성이가 되어 진흙탕을 뒹구는 타입의 인물이 아니다. 180석이나 되는 의석을 가지고서도 그래서 언론이 무서워 언론을 살피고, 지식인 사회의 비판이 두려워 그들의 한 마디에 휘둘리며, 그 모두의 지지를 받는 수구정당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박용진이 소신파라? 지금 언론보도를 접하는 이들에게 목소리가 더 큰 것은 언론인가? 그들 지식인인가? 아니면 지지자들일 것인가? 김해영도 마찬가지다.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를 무지렁이 지지자보다는 누군지 아는 언론과 지식인사회에 책잡히지 않기 위한 말과 행동만을 보이려 했던 비겁함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욕먹을까 입닫고, 혹시라도 책잡힐까 몸사리고, 혹시라도 책임질 일 생길까봐 아무것도 않고, 그래서 지난 몇 달 동안 민주당이 한 일이 무엇이 있던가. 민주당이란 정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단 하나라도 보여 준 것이 있었는가. 압도적인 다수의석을 가지고서도 당연히 처리해야 할 개혁입법조차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낙연은 차기 대선을 노리는 인물이다. 여론의 돌을 맞아야 하는 것은 이낙연이 아닌 오물구덩이를 뒹굴어도 상관없는 무명의 초선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청래가 그것을 알고 총대를 매는 것이고, 고민정이며 이재정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논란의 중심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 뿐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김재련이 앞장섰던 것이었다. 박근혜 정권에 부역했던 여성인사 가운데 하나였었다. 그 네트워크가 움직이며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모든 언론과 지식인과 심지어 정치권마저 움직이고 말았다. 민주당 내 정치인들까지 그들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한 번 굴복한 이상 더이상 그들과 맞설 수 없게 되었다. 여성주의가 수구와 손을 잡았다. 여성주의를 등에 업으면서 자칭 진보는 더욱 자연스럽게 저들과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었고, 민주당 내부의 여성주의자들 역시 정면으로 맞서기를 꺼리게 되었다. 대신 그를 위해서 정의연은 저들의 제물로 선택된 것이었다. 정의연을 제물삼아 여성주의의 권위를 회복하고, 박원순을 희생물삼아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물론 김재련이 이 모든 일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총대를 매고 나선 선봉작 역할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성주의를 위해서 정의당이든 한겨레든 위안부 피해자들을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검찰의 기소내용에서도 볼 수 있듯 저들이 바란 것은 피해자들을 판단능력도 없는 치매환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전부터 피해자들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며 증언의 신뢰성을 문제삼아 온 것이 일본이었고 그에 부화뇌동한 것이 한국 여성주의의 주류였었다. 정의연을 밟고, 박원순을 밟고, 문재인의 목을 딴 뒤, 여성대통령 박근혜를 복권시키고 여성주의의 국가를 만든다. 뭐 거기까지는 너무 간 것일 수 있을 테지만.

 

이낙연이 당대표가 된 시점이 그래서 너무 아쉬운 것이다. 차라리 박원순 논란 이전이었다면 오히려 더 낫지 않았겠는가. 초선이 오히려 다수라 지레 주눅들어 주저앉아 버린 민주당을 이끌고 이낙연처럼 조심스러운 인물이 어떻게 과감하게 치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원래 홍남기나 기재부 등 관료들과 싸워야 하는 것은 역시 바로 그들 초선들이었을 텐데도. 이재명이 아니라 그들 초선들이 나서서 대신 싸워주면 이낙연이 당대표로써 중재하며 수습했어야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180석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100만 대군이면 수 만 정도의 적은 그냥 규모만으로도 간단하게 압살시킬 수 있다. 그 사실만 깨달을 수 있다면. 태산의 힘을 가지고 겨자씨만하게 조심하는 그 본성만 이번 기회에 바꿀 수 있으면. 그래도 여전한 언론의 힘일 것이다. 언론의 눈치를 보는 민주당에게는.

 

지지자들이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하는데 정작 이재명이나 이낙연이냐를 두고 자기들끼리 싸우는데 여념이 없으니. 이재명은 오물을 온몸에 묻혀가며 앞장서서 싸우고, 이낙연은 뒤에서 점잖게 좋은 역할을 맡고. 그래서 선봉에 선 이재명의 역할이 크면 주장이 바뀌기도 한다. 아무튼 상황이 그렇다는 것이다. 언론이 아닌 지지자를 믿으라. 그 한 마디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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