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한겨레와 경향을 비롯해서 자칭 진보정당과 진보지식인들이 이용수씨의 발언을 빌미삼아 조중동과 함께 정의연을 철저히 짓밟으려 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 가운데 역시 가장 현실적인 것이 바로 자신들이 정의연을 대신해서 앞으로 위안부운동을 주도해야겠다. 그나마 지금 생존한 피해자 가운데 가장 존재감도 영향력도 있는 이용수씨가 나섰으니 그와 함께 위안부운동의 새판을 자신들이 짜봐야겠다. 그러려면 먼저 지금까지 위안부운동을 처음부터 이끌어 온 정의연부터 끌어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니 정의연과 윤미향은 민주당과 함께 죽어야 한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그냥 정의연 하나 작살내고 위안부운동을 원점으로 되돌린 뒤 이용수씨와 함께 새로운 위안부운동을 자신들이 시작해 보려 했는데 이러다가 자칫 위안부운동이라는 쪽박 자체가 박살날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만 것이다. 오히려 위안부운동을 부정하던 이들이 일장기까지 꺼내들고 위안부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을 여론의 냉소 속에 더 당당히 비웃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전이라면 비판을 쏟아냈을 언론들마저 침묵하는 가운데 여론은 냉소하고 활동가들은 오욕속에 위축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자기들이 새롭게 위안부운동을 시작한다고 과연 국민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저들 자칭 진보들이 정의연을 대신해서 위안부운동의 새 판을 짜고 자신들이 주도해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이유는 자명한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위안부운동의 지분과 이권을 자신들도 나누어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쉼터 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에서조차 보수진영의 공격은 더욱 거세기만 하고 상황이 반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죽은 사람마저 아무렇지 않게 모욕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나선다고 새삼 반응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은 것이다. 이래서야 정작 남는 것도 없이 죽쒀서 위안부 자체를 역사에서 지우려던 수구진영만 좋은 일 시키게 생겼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정의연의 숨통이 트이더라도 위안부운동의 맥 자체는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말 뜬금없다. 위안부운동을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던 이용수씨였다. 위안부운동의 전개과정 역시 정대협에 의해 피해자들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며 이용당한 것이라던 이용수씨였을 것이다. 오히려 정대협으로 인해 위안부문제의 해결만 어려워졌다며 그 책임까지 떠넘기고 있었다. 그런 내용을 전혀 아무 검증이나 비판 없이 원래 자기들 생각인 양 고스란히 전하던 것이 바로 이들 자칭 진보언론들이었다. 그런데 태도가 바뀌었다. 수요집회마저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왜이겠는가? 사람은 선의로 해석하기보다 악의로 해석할 때 더 솔직한 그 본모습에 다가갈 수 있다.

 

물론 지금도 내 생각은 같다. 괜한 사람들 헛고생시키지 말고 위안부운동은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죽어서까지 모욕당하는 이 비참한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정의연은 해체하고 윤미향도 사퇴하고 위안부운동도 여기서 모두 끝내야만 한다. 그래서 30년 위안부 운동의 끝에 활동가들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와 보람이 그곳에 있을까? 물론 나는 소인배니까. 그냥 감정과 본능에 휘둘리며 사는 일개 소시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도 굳이 자기 시간과 노력과 돈까지 써가며 위안부운동에 힘쓸 이유가 있는 것인가.

 

나에게 이런 생각까지 가지도록 만든 것이 바로 이용수씨이고 그 주장을 아무 검증이나 비판 없이 고스란히 받아서 보도한 자칭 진보언론이었다. 나아가 수구언론들이 정의연과 위안부운동을 모독하고 부정하기 위해 만든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서 따라갔던 자칭 진보언론과 여전히 그들과 연대하는 자칭 진보지식인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와서 태도를 바꾸려 한다. 위안부운동은 의미가 있었다. 정대협의 활동도 의미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경향일보라는 사실이 더 의심스럽고 역겹기만 하다. 의미가 없다. 차게 식어버린 지 오래다. 화도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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