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금 직장을 고른 것은 순전히 우연이고 충동이었었다. 이력서 쓰는 것도 면접 보는 것도 다 귀찮아서 그냥 몸쓰는 일이나 하려 했었다. 노가다는 출퇴근이 너무 길고 번거로워 - 그렇다고 숙식제공은 집에 보살펴야 하는 부양가족이 하나 있는 탓에 도저히 아니라서 결국 대상은 물류로 좁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군포 cj에 지원하여 출근하기로 한 당일 조금 더 조건이 좋은 것 같은 곳이 우연히 눈에 띄여 이력서를 넣고 계약직까지 되었다. 2개월짜리 시한부 인생이었다. 그래도 적당히 되는 동안 버티다가 안되면 다른 곳 찾아가도 괜찮지 않겠는가.

 

2018년 이래 정규직 신규채용이 없었다 했었다. 그래서 정규직 채용도 더이상 없는데 뭣하러 기간제 들어와 고생하느냐는 말까지 들었었다. 늦기 전에 더 좋은 일자리 찾아 떠나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조건도 나쁘지 않고 일도 감당할만해서 버티고 있는데 노조가 생난리를 편 결과라며 느닷없이 정규직 채용 공고가 떴었다. 정확히는 무기계약직이다. 물론 무기계약직도 정년 동안 고용이 보장되기에 정규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정부가 추진중인 정규직화의 대부분은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이다. 그리고 운좋게도 나이와 근속기간에서 무기직 전환 대상에 딱 포함될 수 있었다. 나보다 늦게 계약직이 된 사람들은 서류심사조차 거의 통과하지 못했었다. 당연하게 면접 결과 무기직 채용 결정.

 

몇 년 만이냐? 그동안 계약직을 전전해 온 세월이 20년을 넘어간다. 매번 과연 내년에도 지금 직장에서 같은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던 세월이 그 정도란 것이다. 그런데 정규직 되어 보겠다 그리 아등바등할 때는 냉정하게 잘리더니 그냥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하고 안되면 다른 길 찾아보겠다 하니까 운좋게 딱 걸리게 기회가 찾아온다. 복권 사는 것도 중단했다. 내일을 알 수 없어 사는 것이 복권인데 60세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생겼으니 복권은 의미가 없다. 나는 나 자신만 믿고 내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만 가치를 부여한다.

 

물론 자칭 진보 새끼들 정규직이라고 내가 하게 될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떻게 표정이 바뀔 지 안봐도 눈에 선하다. 내가 자칭 진보가 주장하는 선의나 진정성에 대해 전혀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아주 오래전 그래도 자칭 진보 새끼들이라고 마음놓고 하는 일 밝혔다가 그 사실이 어떻게 이용되었는가 기억이 선명하다. 저들이 노동자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인 것이다. 여성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류호정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정의당의 입장처럼 저들에게 노동자란 동등한 주체가 아닌 것이다. 그냥 대상일 뿐이지. 나 자신은 그다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도 가끔 여기저기서 이름이 보이는 자칭 진보새끼들의 태도가 더 모멸감을 주었다. 나는 과연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는 것인가.

 

아무튼 세상 일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될 일은 어떻게 해도 되고 안 될 일은 어떻게 해도 안 된다.  안정적인 일자리 갖고 싶다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별로 생각 없다 해서 안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안 될 것이라 생각했고 계약기간 끝나면 어디서 일할까 구인사이트 뒤지고 있었다. 앞으로 구인사이트는 더이상 볼 일이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일이다. 지금 정부를 더욱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지금 일을 더 오래 아무일없이 하려면 정규직 채용을 더 늘려야 하기에. 이낙연이든 이재명이든 상관없다. 민주당이 희망이다. 더욱 절실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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