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자유의지주의의 차이는 한 마디로 자유가 인간을 궁극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있을 것이다. 분명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면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저 자유롭게 내버려두기만 하면 되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미 19세기 극대화된 개인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현실을 통해 증명된 바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나온 대안이 개인이 다른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통해 개입하고 강제하자는 것이었고 이는 곧 사회주의로 이어지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이 처음 외친 구호도 그래서 자유와 민주였다. 더 많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자본가를 억압하려는 것이 공산주의 독재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런 한 편으로 자유주의자들 가운데서도 더 큰 사회적 자유를 위해서는 일정한 사회적 억압과 통제가 필요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지금은 이들을 자유주의자, 혹은 리버럴이라 부른다. 이에 반해 자유의지주의, 좌파 자유의지주의자라 할 수 있는 아나키스트와 대비되는 우파자유의지주의를 달리 리버테리안이라 부른다. 원래 리버테리안이라는 이름도 아나키즘이라는 단어가 금지되어 있던 프랑스에서 자신들을 정의하는 단어로서 대체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유주의가 자유의 사회적 요소, 즉 개인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사회적 역할에 더 관심을 가진다면 자유의지주의는 그마저도 배제한 온전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한다. 자기의 자기소유를 전제하는 개인에 있어 사회의 지분을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않는가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사회에 속한 이상 개인의 소유에 있어서도 사회의 소유를 인정할 것인가, 그렇디 않으면 개인은 오로지 개인의 소유이기만 한 것인가. 굳이 비유하자면 사회자유주의와 개인자유주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 전체의, 구성원 다수의 자유를 위해서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마저 온전히 개인의 책임 아래 둘 것인가. 그래서 전자에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형사가 존재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는 온전히 민사만이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간통죄의 경우만 하더라도 과연 결혼한 개인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사회가 제재할 수 있는가의 여부로 한창 논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지금도 가정과 배우자의 행복을 위해서도 기혼자의 애정은 제한되어야 한다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실 공산주의자들과 가장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자본주의자들이 아닌 아나키스트들이다. 차라리 공산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은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둘 다 기성의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그러나 그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큰 차이를 보인다. 더 강력한 억압과 통제를 통해 그것들을 극복하는가, 아니면 그런 모두를 해체하는 궁극적인 해방을 통해 그를 이룰 것인가.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조차 또다른 억압이고 강제일 뿐이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과 자유의지주의자들 역시 사이가 좋지 못하다. 과연 서로가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가. 진정한 자유주의인가. 심지어 이제는 개인의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는 리버티마저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는 프리덤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그런 자유의지주의자들에게 더 큰 자유를 위해 개인의 자유에 개입하겠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얼마나 모순적으로 들리겠는가.

그러니까 최근 이야기되고 있는 젊은 층의 보수화와 관련해서 그들의 보수화가 과거 권위주의적인 보수와 같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는 것이다. 젊은 보수들이 주장하는 바는 한결같다. 그냥 내버려두라. 복지든 경제민주화든 그냥 상관말고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조차도 개입이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조차도 지나친 정부의 사생활 간섭이다. 그냥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각자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통적 보수의 가치인 권력의 사유화와 맞물린다. 정치권력이든 사회권력이든 자본권력이든 권력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고 그러므로 권력을 소유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 여기서 권력의 사유화에 따른 권리의 침해만 배제하면 사실 자유의지주의는 이들과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이명박근혜가 집권해서 자기들에게 직접 피해가 온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명박의 사자방이든 박근혜의 국정농단이든 그러나 정작 자기들에게 직접 피해를 준 것은 없다시피 하다. 한 마디로 직접 나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어디서 학살을 저지르든, 세금을 모두 횡령해서 떡을 사먹든 상관하지 않겠다. 너는 너, 나는 나. 그런 점에서 차라리 자신의 일상을 위협하는 듯한 페미니즘이 더 큰 문제로 여겨진다. 자신들의 평온한 일상을 자꾸만 건드리는 듯한 현정부의 정책들이 더 거슬리기만 한다. 차라리 현정부가 자기들이 뭘 하든 아무것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더 지지했을지 모른다.

즉 한 편으로 권위주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통해 진보적인 듯 보였던 젊은 세대가 오히려 현정부 들어 보수라기보다는 반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한 이유라 할 수 있다. 달라진 것은 없다. 단지 자신들에게 자신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전에는 자유한국당의 권위주의적인 권력이었고 이제는 민주당의 자유주의적 권력이 되었다. 무엇이든 자신들의 온전한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제약하려는 대상과는 무조건적으로 적대하며 싸우겠다. 다시 자유한국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온전히 자유로우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원래 자유의지주의라는 자체가 기성의 권력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권력이란 단지 억압이고 착취일 뿐이다. 모든 권력은 불의하며 오로지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 그래서 리버테리안이다. 달리 말하면 해방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인습으로부터, 현재의 권력으로부터, 혹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인위적인 억압과 강제로부터,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정의로운 권력이고 정의로운 정책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동의하지 모든 행위들은 부정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무정부주의가 맞겠지만 현실적으로 국가가 없으면 곤란하므로 최소한의 정부만을 추구한다. 어차피 너희들따위 없이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얼마든지 더 잘 할 수 있다. 너희가 오히려 없어야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차피 정부로부터 자기들이 받은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기성사회로부터 자신들이 받은 것따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헬조선이다. 그들에게 지금의 기성사회는 때려부셔야 할 현실의 모순이고 부조리이며 무엇보다 적인 것이다. 때로 유명인들에 보이는 무조건적인 적의는 그들의 내재된 분노의 표출이다. 끊임없이 쌓여 온 좌절과 절망이, 마침내 현실에 대한 불신으로 원망으로, 마침내 분노와 부정으로 이어진다. 어차피 민주당도 자유한국당과 다르지 않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사실 그리 크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무척 소중하다.

자유의지주의 자체가 기성의 부조리한 권력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니까. 기성의 모순된 구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생겨났던 것일 테니까. 그런 점에서 방향성은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현실은 그들에게 가혹했고 따라서 그들의 분노 역시 격렬할 수밖에 없다. 믿었던 권력으로부터 배신당했다. 사람이 아무때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떤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권력은 기존의 권력과 다르지 않았고 좌절과 절망은 커져만 간다. 비례해서 증오도 분노도 커져만 간다. 누구의 잘못일까?

과연 보수화되었는가. 하지만 과연 그것을 보수라 단정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자유주의는 한 편으로 진보이며 한 편으로 보수이기도 하다. 권위주의의 입장에서 진보이고 사회주의 입장에서 보수다. 그보다 더 극단적인 자유주의라 보면 된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이 반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젊은 층의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믿었던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 있겠다. 어쩌겠는가. 더불어민주당의 리버럴과 젊은 층의 자유의지주의는 가고자 하는 길이 너무 다르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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