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월세의 경우 싼 것은 보증금이 천만 원도 안하는 곳이 아직도 제법 많다. 월세 조금 더 준다고 하면 일단 보증금에 대한 부담은 없다고 보면 된다. 지금 최저임금 수준으로도 혼자서 열심히 아끼며 모으면 어떻게 제법 그럴 싸한 집을 구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하는데 몇 년 걸리지 않는다. 둘이라면 더 빠르다. 그런데 전세는 아니다. 어지간하면 거의 1억 가까이서 노는 전세금을 과연 지금 최저임금 기준으로 얼마나 아끼며 모아야 과연 마련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일단 월세 보증금이라는 것부터 거의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제도라는 것이다. 사실 법적으로도 월세 밀렸다고 보증금에서 까는 것은 아마 안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월세는 월세, 보증금은 보증금이다. 그런데 굳이 따로 보증금을, 그것도 몇 배 이상 받는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 한 번에 목돈을 들여야만 월세를 얻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것도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당장 일본만 해도 몇 달 치 월세만 선불로 내면 얼마든지 바로 월세로 들어가 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월세가 밀리면 바로 경찰을 동원해서 내쫓을 수 있는 대신 보증금이라는 것이 따로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결혼해서 살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에게 당장 다가올 현실적인 부담에 대해서.

 

전세가 없다면 모르지만 월세로 들어가서 다달이 월세를 내면서 사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수입이 알량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꽤나 부담일 터다. 거의 대부분 최저임금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받는 수준일 텐데, 거기서 월세라고 매달 수 십만 원씩 내고 나면 저축까지 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울 것이다. 반면 전세는 어찌되었거나 계약기간이 끝나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으니 돈을 고스란히 아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전세금을 돌려받고 올려주면서 돈을 모으다 보면 어떻게 집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면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당장 전세집부터 알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 돈이 만만치 않다. 집에 손을 벌리지 않고서는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딛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니 그냥 결혼하기를 포기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이 가장 크지 않을까. 당장 살기 어려운 것도 있는데 장래를 위해서도 함께 살 집을 구하는 것조차 현실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다. 그렇다고 보증금이 싼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구차하게도 느껴진다. 번듯하게 신혼답게 결혼생활을 시작하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 되는 집을 구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월세조차도 너무 부담이다. 하물며 집을 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그렇게 시작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까지 하고 싶어도 현실의 문턱 앞에 주저앉고 마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 이유일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체념하고 그런 기회 자체를 거부해버리는 이들마저 있다. 결혼하고 나서도 아이를 갖는 것은 감히 언감생심일 테고.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위해서도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그건 더 난이도가 높다. 주변의 환경과 학교까지 고려해서 집을 구하려면 진짜 그때는 없는 돈도 끌어와야 할 지 모른다. 결국에 전세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합리성을 가지는 이유일 것이다. 전세가 너무 많은 것들을 왜곡하고 또한 망가뜨리고 있다.

 

그냥 사는 만큼 내며 살 수 있는 만큼 쓰면서 함께 지금만 살아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지 않고 딱 자기 수준에 맞게만 살 수 있으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기조차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바로 우리가 만들어온 이 사회의 현실인 것이고. 문득 든 생각이다. 여러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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