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2020년이었던가? 당시 임대차 3법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전세제도를 비판하는 여러 발언들이 민주당 내부에서 들려오자 아주 오만 곳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나마 서민이 어렵게 모은 목돈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는 유리한 제도인데 그를 부정하려 하는가? 그렇게 목돈을 모아 어떻게든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이 서민이 가진 유일한 희망인데 비싼 월세 내가며 그런 기회마저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2찍 진보야 당연하고 보수며 자칭 중도층이며 그런 발언을 하고 법안을 입법한 민주당을 성토하느라 거의 대단합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그 발언의 취지에 동의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있기는 했었다. 나도 아마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전세란 얼마나 불합리한 제도인가? 세상에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적인 선의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은 나름대로 자기를 위한 계산을 하고 이익이 있을 때 그를 동기로 행동에 옮긴다. 전세란 그렇다면 반드시 세입자에게만 유리한 제도인가? 그러면 임대인들이 굳이 전세라는 세입자들을 위해서만 유리한 제도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임대인들에게 전세라는 제도가 가지는 이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세입자가 어렵게 모은 목돈이 한 번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 목돈을 굴려 자산을 증식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오래전에는 은행이자가 꽤 높은 편이었기에 전세금을 받으면 그 이자만으로 어느 정도 월세를 벌충할 수 있었다. 90년대 초반 아마 연이율이 13%인가 그랬었는데 전세가 2천이면 연 260만원의 이자를 기대할 수 있다. 월세로 치면 대략 22만원 조금 안되는 정도다. 더구나 목돈을 돌려받는 것은 세입자 뿐만 아니라 집주인도 마찬가지라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면 전세금 만큼을 다시 그 자리에 채워 넣으면 손실도 전혀 없다. 나쁘지 않다.

 

은행 이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는 집값이 오르고 있었다. 올해 1억이던 집값이 전세금을 돌려주어야 하는 2년 뒤에는 1억 2천이 되어 있다면 그 사이 2천이라는 시세차익이 생기는 것이다. 당연히 집값이 오르는 만큼 전세금도 올려받을 수 있으니 다음 세입자로부터 그 만큼의 수익을 더 보전받게 된다. 기존의 세입자가 계속해서 살고 싶어 한다면 그만큼 돈을 더 모아서 전세금을 올려주면 된다. 2년 동안 2천만 원의 전세금을 올려주려면 1년에 천만 원, 매달 100만원 조금 안되게 돈을 모아야 한다. 그래도 다시 돈을 돌려 받으면 1억 2천이 고스란히 남으니 돈을 집주인에게 맡겨 두었다 여기면 손해는 아니다. 그래도 매달 전세금 올려주기 위해 모아야 하는 돈이 월세와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다면 과연 그마저도 세입자를 위해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시세차익을 노리고 전세금을 받아서 주택구매에 투자하는 경우마저 언론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본금 없이 아파트를 수 십, 아니 수 백 채까지 소유하게 된 것을 무슨 대단한 재테크의 방법인 양 공중파까지 나서서 홍보한 것이 불과 십 수 년 전이다. 집을 사서 전세를 놓고, 그 전세금으로 아파트를 계약해서 계약한 아파트로 다시 대출을 받아 집값을 벌충한다. 그렇게 일단 집을 계속 사 놓으면 결국에 아파트값이 오르고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므로 앉아서 큰 돈 들이지 않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월세 사는 2030 남성들이 임대차 3법과 종부세에 입에 거품을 물고 분노를 드러낸 이유였다. 자기도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는데 정부가 그것을 막아 버렸다. 그래서 나온 말이 벼락거지다. 집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자기만 그로부터 소외되었으니 그게 다 정부와 여당 탓이다. 그런데 집값이라는 게 그렇게 한정없이 오르기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를테면 나같은 경우 집값이 일정 이상 오르면 차라리 조금 외진 곳으로 가서 싸게 월세 내며 사는 쪽이 훨씬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정없이 오르는 집값을 실제 감당할 수 있는 경우란 결국 제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받아서 과연 그런 비싼 집값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임차인들이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하는 것도 월세 내는 것 자체가 알량한 수입에서 꽤나 부담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 집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수입이야 뻔한데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한정된 수요 안에서 집에 대한 기대수익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를 해결하고자 나온 정책이 전세대출이고, 사회적으로는 부모의 지원이었을 것이다. 부모의 지원 없이 전세조차 얻지 못하고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또한 결혼과 출산이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또 하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했다. 대출 없이는 전세조차 살 수 없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가는데 과연 언제까지 집값은 지금처럼 가파르게 오를 수 있을 것인가. 선진국들처럼 집값이 어느 순간 안정화될 경우 그때도 전세라는 제도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전세라는 제도는 언젠가는 사라져야 하는 제도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당시에는 모두로부터 얻어맞던 민주당 내부의 의견들이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현실로써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집주인들이 돌려주던 전세금이란 결국 다음 세입자들이 똑같이 어렵게 모은 목돈이었던 것이다. 집주인 자신의 돈이 아니라 누군가가 어렵게 모은 돈으로 이전 세입자는 전세금을 돌려받고 다시 다른 전세를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입자들마저 지나치게 오른 집값에 따른 전세금의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더이상 비싼 전세를 구할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 집값이 너무 오르고 따라서 전세금도 너무 오르니 차라리 더 싼 다른 수단을 알아보느라 전세라는 제도가 존재할 기반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전세금을 낮춰 받자니 오히려 그동안 받은 전세금에 자기 돈까지 더해서 돌려줘야 한다. 그런데 그 자기돈도 결국 다른 아파트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다. 남의 돈으로 돌려가며 유지하던 전세라는 제도의 바닥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 남의 돈이 없을 때 원금이라도 보전받을 수 있다는 전세의 신화는 사라지게 된다. 내가 일찌감치 전세를 포기하고 월세를 살게 된 이유다. 차라리 싼 월세가 애매한 전세보다 더 안전하다.

 

어차피 전세라는 것도 내가 어렵게 모은 돈에 이자비용과 그 돈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가치 등 실제 상당한 비용을 지속해서 지불해야 하는 점까지 고려하면 절대 원금 그대로 돌려받는 유리하기만 한 제도가 아닌 것이다. 차라리 전세금 더 마련할 돈으로 고기를 한 번 더 먹고 여행을 한 번 더 가는 것이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해서도 더 나을 수 있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내가 낸 돈을 고스란히 돌려받기만 하는 제도는 없다. 그런 사실을 적확하게 알렸어야 하는 언론마저 그 책임을 방기했다. 그런 현실을 알고 지적했어야 하는 2찍 진보들 역시 전세라는 기득권을 위해 자신의 양심을 저버렸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이다. 언젠가는 드러날 사실들이었음에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전세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져야 하는 제도인 것이고. 옳은 말을 하고서도 욕먹는 것은 민주당에 몸담은 정치인들의 숙명일 테지만. 같은 여성비하에 대해서도 여성단체들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절대 어떤 비판도 하지 못한다. 오히려 여성주의에 적대적인 이준석을 추앙하며 그와 손잡으려는 것이 여성주의의 실체이기도 하다. 모르는 놈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놈들 뿐이다. 이낙연 같은 놈들. 아마 그때부터 민주당 내부에서 수박들이 증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언론의 눈치를 보며 언론을 배경으로 삼는다. 여성주의와 손잡고 노동계와 결탁한다. 진보와 수구를 아우르는 이 사회의 기득권들인 것이다. 역겨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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