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과 소득주도성장은 결국 함께 갈 수밖에 없다. 당연한 것이 저녁을 자기 시간으로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당장 추가수당 받던 노동자들도 저녁까지 일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만큼 노동자의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를 벌충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정책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장 최저임금이 오른 결과 그만큼 적은 시간을 일하고도 전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각종 복지 및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지원까지 받게 되면 가처분소득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다만 문제라면 그럼에도 전처럼 더 많은 시간을 일했다면 비례해서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실상 수입이 더 늘었거나 최소한 비슷한 수준인데도 더 많이 벌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차피 근로시간단축과 임금상승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정책들이란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주 6일 근무에서 주 5일로 바뀌고 나서 당장 어떤 것들이 달라졌는가? 금요일 저녁이면 벌써 캐리어 끌고 출근하는 직원들이 있다. 퇴근하면 바로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려는 사람들이다. 주 6일로는 어림도 없다. 가족끼리 캠핑을 가든, 아니면 집이나 음식점에서 오붓한 식시시간을 가지든, 아니면 가까운 놀이동산이라도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마저도 주말까지 일하느라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주 52시간 덕분에 자기만의 주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이 바로 소비와 관계된 것들이다.

 

벌써 학원이나 헬스장 등 퇴근 후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업장들에서 등록회원이 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익히 경험한 바다. 전에 다니던 직장이 망하고 새로 일자리를 구한 뒤 근무시간이 줄어들며 매일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덕분에 겨울에도 감기 한 번 걸리는 일 없이 몸도 제법 건강해진 상태다. 혼자서 하는가면 그만큼 개인들이 돈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돈은 아니더라도 남는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하려면 지출을 해야 하니 그 모든 것이 소비로 이어진다. 그래서 위에서도 그럴 수 있도록 소득을 보전해주는 소득주도성장을 이야기한 것이다. 경기는 나쁘다는데 오히려 내수는 성장세를 보이는 그 자체가 바로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오랜 시간 일하느라 건강이 나빠지면 그마저도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오게 된다. 갑자기 가장을 잃은 가정이나, 혹은 숙련된 노동력을 잃게 된 사업장이나, 혹은 만성질병의 경우 그 치료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 등은 모두 사회에 부담이 된다. 육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챙겨야 할 텐데 그러자면 역시 시간적 정서적 여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모든 것도 결국 근로시간단축과 궤를 같이 한다. 장시간노동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최소화하고 늘어난 여가를 통해 내수를 증가시켜 경제의 체력을 키우자.

 

더이상 수출에만 의존하기에는 국제환경이 많이 안좋아졌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먼저 국내시장부터 키울 필요가 있다. 새로운 도전은 충분한 시장이 뒷받침될 때 더 활발해질 수 있다. 미국과 중국에서 새로운 도전들이 줄을 잇고 성공한 사례까지 적잖이 나오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아무거라도 아주 가능성이 없지 않으면 최소한의 수입은 보장된다. 그래서 도전하고, 그래서 망하더라도 다시 도전하여 마침내 성공한 사례를 만들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혁신이 부족한 이유는 믿고 기댈 내수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혁신성장은 역시 내수가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먼저 국내시장에서 검증된 다음 세계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

 

이 모든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역시 첫째는 개인의 소비여력을 늘려야 하고, 그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것만이 아닌 시간적, 정서적, 관념적인 모든 여유를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소득을 높여주고 노동시간을 줄인다. 그러니까 자신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라. 그것이 곧 국가와 사회를 더욱 성장시키는 방법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손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기는 원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좋은 정책이란 원래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변화의 과도기에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부작용도 감수해야 한다. 내가 그 대상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길 뿐. 지출이 너무 많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이다. 돈을 너무 많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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