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이다. 20세기가 끝나가던 어느 무렵 외제차 타고 다닌다고 여성운전자에게 다짜고짜 따귀부터 올려붙인 노친네가 있었다. 그 전에는 양담배 핀다고 역시 여성흡연자를 보자마자 싸대기부터 올린 노친네 이야기가 뉴스를 타고 있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여성혐오란 단어가 등장한 이유가 다른 게 아니란 것이다. 어째서 키크고 건장한, 혹은 사회적으로 한 자리 하는 나이 많은 이들도 양담배에 외제차 몰고다니고 했을 텐데 항상 응징의 대상은 여성들 뿐이었을까?

 

왕실에서 중국에서 수입한 값비싸고 화려한 도자기를 쓴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상민이 청화가 그려진 백자를 쓰기만 해도 물고가 날 수 있는 것이다. 양반의 자제가 통량갓에 호박갓끈 달고 비싼 중국산 빈으로 옷을 해입고 돌아다닌다 누가 뭐라겠는가? 백정이 그랬다가는 그날로 송장 하나 치는 것이다. 백정은 갓도 쓸 수 없고, 도포도 입을 수 없고, 쪽도 질 수 없다. 신분을 넘어서는 차림을 하면 그 자체로 반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회적 금기라는 것이 법으로 명문화되어 있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반상의 법도라는 것이다. 경국대전상에 조선의 신분은 양인과 천인 둘로만 구분되어 있었다. 중인도 상민도 모두 양반과 같은 양인이다. 양반도 3대에 걸처 급제자가 나오지 않으면 다시 양인으로 떨어지고, 일반 농민이나 중인도 과거에 급제만 하면 양반의 신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양반과 중인과 상민과 천민의 구분이 명확했던 것이 조선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중인 이하에서는 큰 갓을 쓸 수도 없었고, 긴 곰방대를 쓸 수도 없었으며, 하여튼 복식을 비롯한 일상의 거의 전부분에서 신분에 따른 차별이 강요되고 있었다. 양반이 한다고 중인 이하에서 하면 그것도 죄가 된다.

 

국민의힘은 그래도 된다. 부동산투기를 해도 되고, 직권을 이용해서 부당한 이익을 취해도 상관없고, 자식 입시와 관련해서 부정이나 비리를 저질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신분이니까. 하지만 민주당은 2억짜리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어도 죄가 된다. 자칭 진보들이 그토록 도덕성을 검증하겠다며 조국이며 민주당 인사들을 물어뜯던 것과 달리 박형준과 오세훈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면서 오히려 그 검증 자체를 부정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시장이란 직위를 이용해서 부동산투기를 했어도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실망감에 오세훈을 찍겠다는 자칭진보가 절반이다. 박원순에 대한 반감으로 오세훈을 찍겠다는 놈들이 김학의를 출국금지시킨 사실에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노리고 있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항살 그래왔었다. 이명박이 저지른 명백한 범죄에는 안타까운 감정을 애처롭도록 드러내면서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단지 검찰수사를 받는다는 이유로 죽으라 등을 떠밀고 있었다. 죽은 뒤에는 그 죽음까지 모욕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데 노무현 전대통령을 소환하는 행위는 얼마나 저열하고 끔찍한 행동인가. 하긴 노회찬을 그리 아쉬워하면서 노회찬을 모욕한 오세훈을 지지하겠다는 것이 지금 정의당이기도 한 것이다.

 

수구는 그래도 된다. 민주는 그러면 안된다. 수구는 차별발언이나 행동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철수가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오세훈이 장애인과 비강남인을 차별해도 저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민주당과 민주정부 관련인사들 뿐이다. 그러니까 국민의힘이 노동존중의 정당인 것이겠지. 박형준과 오세훈을 검증하는 것은 민주당의 반성을 모르는 태도인 것이고.

 

신분사회에 사는 것이다. 자칭 진보와 오세훈이 어쩌면 너무 잘 어울린다 여긴 이유이기도 하다. 강남과 비강남을, 있는 집 자제들과 없는 집 아이들을 차별하는 그 의식구조가 자칭 진보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다. 하긴 신분과 계급이 명확해야 혁명은 일어나는 것이다. 무산자 계급의 편에 서야 하는 민주당은 그러므로 무산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뇌가 썩은 것일까? 원래 뇌가 없었던 것일까? 보궐선거로 더 명확해진다. 벌레는 벌레다. 존엄도 이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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