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IT업계의 경우 서른 넘어서 현직에 있기가 무척 힘들다. 실력이 문제가 아니다. 물론 막 배우고 들어온 젊은 신입들에 비해 최신기술에 대한 지식이나 적응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만큼 경험도 있으니 조금만 노력하면 따라잡는 것이야 그리 어렵지 않다. 그보다 문제는 인건비다. 경험이 많은 만큼 신입보다 더 많은 연봉을 줘야 한다.

규모가 있는 기업들은 모르겠지만 작고 영세한 기업에서야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지시를 내릴 경력자 한 명과 지시한 내용대로 실행할 수 있는 신입이 몇 명 있으면 대충 하나의 팀을 꾸릴 수 있다. 굳이 대우해주어야 하는 경력자 몇 명보다 이쪽이 더 비용도 적게 들고 효율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이도 있고 경험도 있으면 오히려 일을 구하기가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프로그래머가 나이를 먹으니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더라는 말이 인터넷에서 밈처럼 쓰이겠는가.

어쩌면 노조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맞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단순반복작업이다. 수공예품도 아니고 수 십 년 일한다고 이제 갓 입사한 사람에 비해 생산성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난다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 어째서 경력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연봉만 그렇게 많이 받는 것인가.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보다, 같은 일을 하는 신입직원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심지어 귀족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돈을 받고 있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자기가 한 일 만큼 정규직이든 경력자든 똑같은 임금을 받는 것이 옳다. 그런데 왜 안되는가? 바로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경력자들은 장년 이상들이다.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는 가장들이다. 월급 받아서 혼자 쓰는 것이 아닌 가족까지 부양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갓 입사에서 자기 한 몸 건사하면 그만인 신입들과 같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과연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긴 그래서 비정규직이 늘어나며 장래가 불안해진 청년층 가운데 아예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도 하다. 어차피 이 일 계속 해봐야 가족까지 부양하기란 불가능하고 차라리 죽을 때까지 혼자 사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중장년 이상의 경력직들이란 그만큼 받아야 겨우 생활이 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묻는다. 당장 기업의 입장에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직원을 해고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누가 대상이 되겠는가. 아직 연봉도 적은 신입일까? 경력은 있지만 연봉도 많은 중장년층일까?

굳이 상상력까지 동원할 필요 없이 그동안 구조조정이란 그렇게 이루어져 왔었다. 가장 먼저 잘려나가는 것은 경력 만큼이나 연봉도 많이 받는 숙련된 중장년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래서 저항도 더 거셌던 것이었다. 해고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에는 때로 가족까지 함께 나서기도 했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아서, 내쫓기게 된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그렇게 알량한 퇴직금 받아들고 한창 나이에 직장을 나서게 된 사람들이 달리 할 만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동안 다니던 직장에서도 월급 너무 많다고 잘렸는데 다른 직장에서는 경력자라고 우대하며 써주겠는가. 그래서 IMF이후 자영업자의 수가 비약적으로 늘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그래머가 나이를 먹으면 전혀 생뚱맞게 닭이나 튀기듯 직장인들도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해 본 적 없는 자영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래서 또한 한국사회에서 성업중인 것이 창업의 노하우를 빌려주는 프랜차이즈 산업이다.

기업과 언론이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고용유연화의 진실인 것이다. 고용을 유연화한다는 것은 곧 쉽게 해고하고 쉽게 채용해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쉽게 채용해서 쓰기 위해서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자. 모르는 게 아니다. 알면서 지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존의 중장년 경력노동자들이 해고되면 그 자리에 자신이 혹은 주위의 누군가 대신 들어갈 것을 기대하면서. 장차 해고될 경력노동자가 자신이 될 것은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해고된 경력노동자가 어떻게 될 지도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있다는 것이다. 3, 40대 고용률이 떨어지는 걸 걱정하면서 한 편으로 바로 그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용유연화는 지지한다. 양극화와 영세자영업자의 문제를 그리 걱정하면서 한 편으로 그렇게 쉽게 해고된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사회안전망을 위한 복지정책도 단지 내 돈이 들어가는 것 같아 반대한다. 무엇하자는 것일까.

더욱 자영업자의 경우는 그렇게 퇴직금 받아들고 무작정 시장으로 떠밀려나온 그들이야 말로 새로운 경쟁자일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자영업에 나서지 않아도 되도록. 굳이 해 본 적 없는 장사 하느라 기껏 벌어놓은 돈 까먹으며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그럼애도 다시 쉽게 다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새로 구한 일자리에서도 전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그러면 해고된 노동자는 영세자영업자들의 경쟁자가 아닌 든든한 소비자로 존재하게 된다. 무슨 말이냐면 한가하다고 너무 신문과 방송을 오래 본다는 뜻이다. 설마 장사하기 어렵다는 사람 입에서 고용유연화라니. 고용유연화로 기업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니. 그 말이 진짜 무슨 뜻인지 모르고 하는 말일까?

물론 나의 경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극 지지하는 편이다. 하는 일이 같으면 받는 임금도 같아야 한다. 필요한 돈은 복지로 대신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그래서 가장 이상에 가까운 노동정책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나이가 몇이든 경력이 얼마든 임금은 똑같이 받음으로써 재취업의 문턱을 낮추고 그만큼 늘어난 지출은 정부의 재정에서 감당한다.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기타등등등당... 출산률도 낮은데 아이 낳으면 나라에서 대신 키워주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은가.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래서 또 문제다. 나라 곳간은 곧 내 주머니다.

장하성이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정부에서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 것은 어쩌면 관료로 잔뼈가 굵은 김동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기재부 하는 것을 보니 의심은 확신이 된다.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 나라빚보다 무서운 것이 경기의 침체다. 자칫 되돌릴 수 없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해 오던 것이 있으니. 그건 또 다음 기회에.

아무튼 고용유연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누구에게 좋고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인지. 단지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그 영향이 자신에게 어떻기 미칠지. 언론이 좋다 떠든다고 다 좋은 건 아니란 뜻이다. 4월 경상수지가 적자가 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외국인 주주들에게 송금한 배당금 때문이었다고 한다. 기업이 이익을 내면 그 돈은 주주의 배당금으로 돌아간다. 그냥 기업이 좋으면 내게도 좋다. 신화는 깨지라 있는 것이다. 먼 이야기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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