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에는 돈이 넘쳐나고 있다. 당장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돈을 찍어내고, 여기에 일본에서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으로 무제한적인 발권이 이루어지고 있다. 벌써 십 수 년 전부터 이미 실물가치보다 몇 배 더 많은 화폐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며 우려하는 주장들이 나오고는 했었다. 그래서 갈 곳을 잃은 돈들이 가서는 안 될 곳으로 몰려갔다가 터진 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였었다. 그리고 그 혼란을 수습하느라고 미국은 다시 미친 듯 돈을 찍어내고 있었다.

 

어째서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5천조가 넘는 돈을 새로 찍어 풀었음에도 일본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시장에 유통되는 화폐의 양이 늘어나면 물가도 따라서 오른다는 상식과 달리 화폐의 양은 늘어나는데 물가는 오르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하긴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기는 하다. 물가의 정체는 어쩌면 전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장에 유통되는 돈의 양은 늘어났지만 정작 소비하는 대중의 수입까지 늘지는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다른 이유로 마르크스가 예언했던 이윤율의 하락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지금 돈이 넘쳐나는 것은 소비하는 대중이 아니라 생산하는 기업들이다. 일본 역시 기업들의 실적은 아베노믹스 이후 더 나아지고 있지만 정작 일본 국민들의 소득 자체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중이다. 기업들은 돈이 남아돌고, 국민들은 오히려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고, 그런데 기업들은 무엇이든 제품을 생산해서 국민을 상대로 팔아야 한다. 그래서 국내 유통업계에서도 제정신이 아닌 듯한 적자경영이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를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경쟁자들을 죽이기 위해서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그래서 차라리 막대한 출혈을 감수하면서 경쟁자를 죽이고 자기만 살아남고자 한다. 그럴 수 있게 또 기업들에 투자되는 자본들이 꽤나 막강하다.

 

원래 기업의 목적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을 생산했다면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최고의 가격으로 팔고자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는 돈이 없고 기업들은 돈이 넘쳐나다 보니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차라리 다른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인이 생겨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적자를 보더라도 상당기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된다. 중국 역시 그럴 수 있도록 생산자를 중심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풀고 있는 중이고, 미국 역시 금리 등을 통해 기업들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늘어나는 것이 좀비기업들이다. 당장 대출한 돈을 회수하면 망할 기업들이지만 어차피 돈은 남아돌고 있으니 굳이 그럴 이유를 찾지 못해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들이 시장에서 물가로 반영된다.

 

덕분에 죽어나는 것은 오프라인의 수많은 자영업자들일 것이다. 정말 비명소리가 나올 것이다. 대부분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는 그같은 출혈경쟁을 지속할 체력 같은 것은 없다. 자본도 열악하고 적자도 감당하지 못한다. 대기업들처럼 부채로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대자본 유통업체들은 그런 중소자영업자들의 사정과 아랑곳없이 출혈경쟁으로 가격하락을 유도한다. 소득주도성장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 잘난 전문가들이 경고했음에도 오히려 물가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구조적인 것이라 답은 없다. 과연 소비자에게 현금을 쥐어준다고 지금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인가.

 

물가하락과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그렇게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어째서 물가는 낮아졌다는데 식당의 음식가격은 더 비싸지고 있는가. 시장의 물가는 그런 주장들과 아랑곳없이 여전히 비싸기만 한가. 지금 물가의 하락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이들 대자본들이기 때문이다. 언제 이 치킨게임이 끝날 지 알 수 없다. 그만큼 시장에는 돈이 너무 많고 여전히 그들이 피흘리며 감당할 수 있는 적자의 크기도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과연 소비자에게도 좋을 지 알 수 없는 저물가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저물가가 소비를 충분히 유도하지 못한다면 경기는 곧 불황으로 빠지게 된다.

 

생산해도 이익이 남지 않는다. 생산해서 팔아도 오히려 손해만 보게 된다. 그럼에도 손해를 보고 생산하고 이익이 없음에도 팔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쟁자가 시장을 독점하고 혼자만 살아남을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한국을 죽여야 일본이 산다. 따라서 한국 역시 일본을 죽여야 한국이 산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황혼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신들의 황혼처럼 중국과 미국이라는 생산과 소비의 중심이 싸우며 전세계 경제를 끝없는 수렁으로 몰아간다. 두 거인이 싸움이 세계를 파멸로 몰아간다.

 

얼핏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토록 많은 돈을 찍어내는데 일본에서 오히려 인플레이션은 커녕 디플레이션의 심화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시장에 그토록 많은 돈이 풀렸는데도 정작 소비는 늘지 않고 물가 역시 오르지 않는다. 그 돈이 누구에게 갔는가 하는 것이다. 생산에 참여한 것은 대부분 노동자일 대중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그만큼의 충분한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이익이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된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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