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일본의 무역수지가 100억 달러 적자였는데 무역외수지와 이전수지를 더한 경상수지는 1700억 달러라는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해도 벌써 몇 달 째 무역수지는 적자인 가운데 경상수지만 계속해서 큰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 국민 스스로 생산해서 판매한 상품수지는 적자인데 대부분 일본 기업과 은행이 보유한 해외자산들로부터 벌어들인 수입이 그 몇 십 배에 이르고 있다. 어떻게 지금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1990년대 초반 버블이 꺼지고 일본 경제가 긴 불황에 빠져들면서 일본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란 정권에 상관없이 항상 일관되었었다. 기업이 돈을 벌게 하자. 당장 돈을 풀어 기업이 돈을 벌게 함으로써 일자리도 늘리고 국민들의 소득도 늘려보자. 딱 이명박의 4대강이 그것을 그대로 가져다 베낀 정책이었다. 거의 무지막지한 돈을 의미도 없는 토목공사에 말 그대로 쏟아부었었다. 왜 무엇을 위해 공사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돈부터 풀어 공사부터 시작했었다. 그 결과가 일본 국민들도 조롱거리로 삼는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와 다리들이었을 것이다. 흉물스럽게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풍경들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다고 일자리가 늘거나 소득이 늘어나는 기미는 전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돈만 썼을 뿐 가계소득이나 소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후퇴하고 있었다.

 

아베노믹스로 인해 수출이 늘고 기업들의 실적이 호전되었다고 하는 최근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총리인 아베가 직접 나서서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도록 독려했음에도 정규직 일자리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비정규직 일자리만 계속 늘며 명목소득마저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수출이 늘고 실적이 좋아져서 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이 그러면 도대체 어디로 다 흘러갔는가 하는 것이다. 하긴 일본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 당장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역시 남아도는 돈을 주체하지 못한 자본가들이 아무데라도 투자할 곳을 찾다가 그런 사단을 일으켰던 것이었다. 기왕에 벌어들인 돈 굳이 노동자에게 나눠줄 필요 없이 기업과 은행이 독점하여 더 큰 이익을 위해 다른 투자처를 찾아 나선다. 물론 그렇게 해외에 투자한 자본이나 기술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일본 국민 개인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직접 일해서 벌어들인 소득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자본이, 투자한 자본으로부터 비롯한 기술과 자산들이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그렇게 벌어들인 이익이 일본 국민이 생산한 상품을 판매한 이익보다 수 십 배에 이른다.

 

결국은 경제를 살려보겠다고 일본 정부가 막대한 빚을 져가며 국채를 발행하고 돈을 찍어내서 기업들에 푼 돈은 대부분 노동자인 일본 국민 개인에게가 아닌 기업과 은행에 의해 해외에 투자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어떻게든 기업들을 살려보겠다고 법인세와 소득세를 줄여주고 국민의 소비에 세금을 매겨 부족한 세수를 벌충해 왔는데 정작 노동자의 임금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가운데 기업과 은행들만 해외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결과가 무려 수 천 조가 넘는 돈을 찍어내어 시장에 풀었음에도 전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 물가일 것이다. 노골적인 엔저정책으로 수입물가까지 오르는 가운데 노동자의 소득이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있으니 전체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누군가 이마저 아베노믹스가 성공한 증거라 하더라. 더이상 내수만으로는 감당이 안되어 수출의존 경제로 바뀌고 그 결과 대외요인에 휘둘리게 된 지금의 일본 상황이.

 

대부분 한국 보수언론들이 주장하는 경제정책의 결과인 것이다. 저들이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하는 이유이고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들고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서 돈을 써야 한다면 과연 누구에게 써야 하는 것인가. 보수언론들이 주장하는 것은 그 돈을 기업들에게 풀라는 것이고, 소득주도성장은 그 돈을 실제 소비하는 노동자 개인에게 풀겠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그 돈을 모두 사용자에게만 부담시킬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굳이 최저임금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복지와 재정지원등을 통해 노동자에게 직접 돈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노동자의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소비 역시 늘린다. 그래야 경제가 발전한다. 반면 한국 보수언론들이 주장하는 것은 기업에 돈을 풀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해야 일자리도 늘고 임금도 오르게 된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 십 년 간 해 온 결과 지금 일본 경제의 상황이 어떠한가.

 

그러니까 한국 보수언론들도 일본의 경제를 과장하며 결점을 감추고 장점만 드러내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작년 무려 두 번이나 일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어느 언론도 보도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당장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일본의 편에 서는 것도 가톨릭 신앙의 자유를 위해 차라리 프랑스의 침략을 바랐던 황사영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일본이 경제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한국 정부도 일본의 경제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차라리 일본에 철저히 경제정치외교적으로 굴복함으로써 일본의 영향 아래 일본과 같은 경제정책을 펴야 하는 상황으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이며 이데올로기다. 하지만 그 결과 일본 기업들은 더이상 내수만으로 버티지 못하고 해외에서 더욱 치열하게 경쟁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한국 기업들은 벌써 전부터 그래오고 있었으니 일본 기업들과 사정이 다를 것이다.

 

기업들에게 돈을 풀어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게 보장해 준다면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늘고 임금도 오르게 될 것이다. 굳이 최저임금인상을 강제할 필요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정책을 통해 강요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고 그럴 필요가 생기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일할 사람이 없어 폐업하는 사업장도 속출하는 가운데 정작 노동자의 임금은 오르지 않는 일본의 현실을 보며 그런 소리를 한다. 오히려 30년 전보다 소비수준이 낮아져 버린, 그래서 월급을 받아도 저축할 여력조차 없어진 일본의 노동자들을 보면서도 그런 주장들을 한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아예 돈을 쓰지 않으면 모를까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면 그 돈은 우선적으로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겠는가.

 

소득주도성장의 진짜 정체인 것이다. 재정정책이면서 통화정책이다. 아무튼 시장에 돈을 더 많이 풀어 소비를 늘리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시도인 것이다. 생산자위주의 정책은 그동안 오히려 넘쳐나고 있었기에 반면교사로써 정반대의 정책을 시도해 본다.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져도 오히려 소득이 줄어들며 소비마저 위축된 일본 경제를 보면서. 이제는 오히려 우리가 싼 맛에 일본으로 여행도 더 많이 가고 있다. 소비도 더 많이 하고 있다.

 

어찌보면 격세지감일 것이다. 예전 일본으로 여행하려면 물가며 환율이며 어지간히 여유가 있지 않고서는 거의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제는 오히려 한국인 관광객들이 큰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상시로 드나드는 그런 여행지가 되었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여행자제가 일본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정도다. 불과 수 년 사이의 변화다. 10년 전까지도 어림도 없었다. 누가 누구를 본받아야 하겠는가. 일본은 옳다. 일본은 똥도 향기롭다. 바뀌지 않는다. 벌써 늙은 꼰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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