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가족 가운데 누군가 죽었다. 그런데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누구인지 가르쳐주지 않는 상황을 떠올려 보라. 멀리 살던 사촌이 죽었는데 그냥 사촌 죽은 것만 알고 추모만 하라면 과연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들의 명단을 대중에 공개하는 이유는 그것이 공적인 죽음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로서 함께 추모해야 할 죽음이기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존재를 알리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개개인의 사적인 부분들은 배제한 채 오로지 공적인 존재로써 공동체의 구성원인 그들을 추모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인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공적인 죽음들에 대해 자격을 따지기 시작했다. 희생자들은 선량한가? 남은 유가족들은 한 점 흠결없이 순수한가? 세월호 참사 이후 그 유가족들에 대해 가해진 끔찍할 정도의 인신공격들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를 이유로 이제는 공적인 죽음에 대한 명단공개조차 개인의 영역으로 축소시키려 한다. 참사조차도 개인의 죽음이지 공적인 죽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죽음 자체만 추모해야지 추모의 대상까지 알 필요는 없다.

 

그래서 개인의 잘못으로 일어난 죽음이었는가? 피해자 자신의 잘못으로 그런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 것이었는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죽음을 개인의 영역으로, 그를 위해서 익명으로 몰아가려는 것이다. 정부의 책임과 지자체의 책임을 지우고 오로지 죽음 그 자체만 남기기 위해서.

 

그것이 바로 2찍의 정서이기도 할 터다. 공동체를 부정한다. 공동체를 철저히 배제하려 한다. 개인만을 남긴다. 권력을 가진 개인과 가지지 못한 개인이다. 그 위에 자유를 덧씌운다.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아무튼 별 해괴한 논쟁을 다 보게 된다. 이런 논쟁이 가능하다는 자체가 바로 한국 사회의 비루한 민낯이기도 할 것이다. 공적인 죽음을 공적으로 추모하는 것조차 이리 힘들다. 한국인이 정이 많다? 내가 가장 개소리라 여기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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