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뗑깡이 아니었다. 이낙연이 위험하다. 이재명은 지금 더 크고 더 멀리 보고 걸음을 내딛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김대중 정부 이후 민주정부들이 겪어 온 과정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공약한 개혁정책들조차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었는가. 첫째가 언론이고 둘째가 바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명령과 지시를 따라야 할 공무원들의 기만과 반항이었다. 

 

오죽하면 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이 관료들에 포위되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서도 김대중 전대통령의 경우를 경고하며 관료집단을 조심하라는 조언이 쏟아졌지만 결국 관료집단의 농간에 많은 정책들이 후퇴하고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경우마저 있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김동연이 언론과 손잡고 소득주도성장이란 정책기주에 큰 상처를 남겼고, 홍남기 역시 재난지원금과 관련해서 건전재정이라는 재경부 관료들의 논리를 언론과 손잡고 앞세운 바 있었다. 현정부가 추진하려 하는 많은 정책들이 정작 재정을 틀어쥔 재경부에 의해 대부분 수정되고 심지어 좌초될 상황에 놓이고 만 것이다. 그러면 어찌해야겠는가. 바로 이재명이 정부 관료들을 상대로 싸움을 거는 이유인 것이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행정부 관료들을 상대로 싸움을 걸고 있으니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고 있다며 흥분하는 모양이지만 가만 하는 말을 보면 이재명 지사는 단 한 번도 대통령이나 여당인 민주당을 비판한 적이 없었다. 비판하는 것은 항상 홍남기 부총리와 조세연 등 특히 재경부 관료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낙연이 재경부 관료들의 편에 서는 것처럼 보이면서 두 사람이 싸움을 벌이는 모양새가 되었을 뿐.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혹시라도 이재명의 노림수가 성공해서 재경부를 비롯한 행정부 관료들이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을 때 그 관료들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 온 이낙연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낙연을 노리지 않아도 이낙연이 이재명을 의식해서 관료들의 편을 드는 순간 여론은 바로 뒤집히고 마는 것이다.

 

벌써부터 여권 일각에서 특히 재경부 관료들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여당의 정책기조를 보자면 마땅히 그리 해야 하는 방향들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딴지를 걸며 때로 보수언론마저 이용하는 모습이 불편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열린민주당 지지로 돌아선 이들이나 이낙연 지지에서 이재명 지지로 돌아선 이들이 바로 그런 경우들인 것이다. 검찰개혁도 중요하지만 관료조직 역시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들과 타협하려는 이낙연은 어쩌면 차기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이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광화문집회나 의사진료거부나 모든 관심이 대통령과 여당에 집중되어 있기에 일개 지사가 한 마디 한다고 대단하게 주목을 받기란 어려운 것이다. 반면 신천지 사태나 재난지원금 등 아직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경기도라는 거대 지자체의 장으로서 한 마디 하는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번 4차 추경과 관련해서도 의도적으로 논점을 흐리며 재경부의 관료주의를 타겟으로 삼아 자신의 존재감을 보다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관료와 친화적인 이낙연과 관료와 적대하는 이재명.

 

더구나 설사 이재명이 대선후보가 되지 못하더라도 의미가 있다는 것은 비로소 민주당 안에서 관료조직을 타겟으로 삼는 유력인사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낙연도 이 쯤 되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끝까지 이재명과 대립하며 관료들의 편을 들 것인가? 아니면 이재명과 경쟁하면서 관료들과 거리두기에 나설 것인가? 결론은 검찰개혁 다음은 관료개혁이라는 것이다. 행정부 개혁이 필요하다. 그 사실을 각인시켜 준다.

 

정부를 상대로 싸움거는 것이 아니다. 아니 덕분에 문재인 대통령도 관료조직을 통제하기가 더 쉬워졌다. 이재명 쯤 되는 여당의 유력대선후보가 행정부를 연일 때리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중간에서 관료들을 격려하고 있다. 양보를 요구하기도 쉬워진다. 원래 참여정부 당시에도 이재명과 같이 밖에서 싸워주는 존재가 있었어야 했다. 대통령이 아닌 외부에서 관료들과 싸우고 대통령은 관료들을 달래며 함께 가야 한다. 잘하고 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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