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어려서 이순신 전기를 읽으면 침략해 온 일본군보다 오히려 이순신을 훼방놓고 함정에 빠뜨린 조선조정과 조선의 장수들을 더 비난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잔인하기는 하지만 일본군 장수들은 유능했고, 조선의 국왕이나 관리, 장수들은 무능하고 비겁하기만 했다. 그런 가운데 오로지 이순신 혼자서만 개인의 역량으로 일본군을 막아내고 조선을 지켜냈던 것이었다. 차라리 이순신이 반란을 일으켜 그런 모두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으면. 심지어 더 나아가 아예 조선이 그때 일본에 멸망당해 조선이 일본군의 장수가 되어 대륙을 정벌했으면 어땠을까? 실제 있었던 반응들이다.

 

어째서 그런가면 처음으로 이순신의 일대기를 전기로 정리해서 연재한 이가 친일파 이광수였다는 것이다. 박은식이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구국의 영웅인 이순신의 전기를 썼다면 이광수의 목적은 식민지가 된 조선의 현실과 자신의 선택에 대한 합리화였다. 조선 조정은 얼마나 무능했었나. 조선의 국왕부터 백성까지 일본의 뛰어난 장수들에 비해 얼마나 비겁하고 나약했었는가. 그러니까 이순신 뿐이었다. 어쩌면 이광수는 이순신전기를 쓰면서 조선 조정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고초까지 겪었던 영웅 이순신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과연 그나마 조선이 망해 버린 지금 자신과 같은 지식인이 조선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걸고 강대한 일본과 맞서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조선이 망한 것은 당연했고, 일본은 당시부터도 조선을 멸망시킬 만큼 강했으며,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인물이 없었다면 조선은 그때 이미 망해 일본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지금은 이순신도 없고, 설사 이순신이 있더라도 목숨을 바쳐가며 지켜야 할 조선이라는 나라도 없다. 최소한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진 일제강점기에 이순신의 역할은 망해 마땅한 나라 조선과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냥 그럼에도 조선에도 일본 전체와 맞설 수 있었던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러니 일본도 자신들을 함부로 낮추어 보아서는 안된다. 한 마디로 일본의 지배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되 대우는 제대로 받고 싶다는 식민지 지식인 나름의 민족의식이었을 것이다. 아예 식민지 조선인들도 일본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흔히 발견하게 되는 변종민족주의일 것이다.

 

얼마전 친일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사퇴한 어느 기업 경영자에 대해 해당 기업 사원이 변명하는 글이 문득 인상에 남았었다. 사실 그때 썼어야 했었다. 그런데 귀찮음과 게으르니늠 때문에 예전에 더 상세하게 원문을 인용해가며 썼다고 여겼던 글을 찾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 지금 와서 그때처럼 일일이 자료를 찾아 인용해가며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노동이다. 어째서 이순신을 존경한다면서 일방적으로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며 오히려 한국인과 한국 정부를 경멸하고 모욕하는 친일적인 모습을 보이는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원래 그런 의도로 쓰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방 이후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이광수의 이순신전기는 레퍼런스가 되어 다양하게 변형되어 대중에 읽히고 있었다는 것이다. 과연 지금이라고 이순신 전기를 읽으면 조선을 욕하는 사람이 더 많을까? 일본을 욕하는 사람이 더 많을까?

 

임진왜란 전후로 조선 조정이 어떤 노력들을 기울였고 어떻게 일본군에 대응해 싸우고 있었는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런 건 이후 나온 여러 연구들을 - 아니 이미 나온 수많은 대중서적들을 찾아 읽으면 넘치도록 알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어째서 그런 조선조정의 노력과 조선의 여러 장수들과 병사들, 백성들의 치열한 투쟁의 역사는 지금껏 대중들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인가. 알려지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일부러 알리지 않은 것이다. 그래야만 했던 그들의 목적과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조선과 조선적인 모든 것을 경멸하고 부정하던 친일파들이 오히려 해방이 되고 이순신을 숭배하며 자신들이 민족주의자인 증거로 내세우고는 했었다. 그 이면을 보자는 것이다.

 

아이러니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순신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구해낸 영웅을 오히려 조선을 부정하며 일본의 편에 선 자신들을 변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조선을 부정하고, 조선의 백성과 조선의 문화 조선적인 모든 것들까지 부정하던 그들이 그럼에도 민족주의자로 남을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준다. 조선이 무능해서고 조선이 비겁해서고 조선이 한심해서이며 그렇기 때문에 조선을 일본으로 바꾸고자 했던 것이었다. 오히려 조선을 위해 조선의 모함과 시기를 한 몸에 받았던 이순신처럼. 역겹지 않을 수 있을까.

 

변명 아닌 변명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 기업 회장은 분명 이순신을 존경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조선을 경멸하고 혐오했을 것이다. 조선 국왕과 조선의 관리들과 조선의 수많은 장수들과 병사들과 나아가 나약하고 비겁했던 백성들까지. 그래서 조선을 개조해야 했었다. 조선을 일본처럼 만들어야 했었다. 일본의 도움을 받아 일본의 돈과 기술에 힘입어 자신들도 지금의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조선 - 아니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본을 거슬러서는 안된다. 일본에 맞서서는 안된다. 저들의 애국주의다. 저들의 민족주의이기도 하다. 그냥 명백한 사실이다. 한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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