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란 거다. 김종인이 어느날 제정신이 돌아와서 '대한민국 망해라!' 외치고 갑자기 사퇴한다면 사람들은 무어라 말하겠는가. 김종인이 물러나고는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 국민의힘에서 비대위를 구성하고 다른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 새끼들 꼬리자르기 하는구나.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직함에 '대표'자가 붙는 사람의 한 마디는 그냥 개인의 의견일 수 없는 것이다. 당사자만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있는 정당이고 정치인이라면 발언한 자신이 직접 사과하든 다른 만회할 대책을 내놓든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문재인 대통령 이전 민주당이 선거결과와는 상관없이 평소 지지율이 바닥을 치던 이유였었다. 뭐만 하면 대표를 교체한다. 말이든 행동이든 정책이든 법안이든 하여튼 문제만 생겼다 하면 기존의 대표를 몰아내고 새로 비대위를 꾸려서는 전혀 다른 말들을 내뱉고 있다. 아니 그런 정도를 넘어서 어차피 당헌당규에 따라 선출된 대표라 해도 존중하는 문화 자체가 없다 보니 언제든지 몰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들이 더 크게 새 나온다. 당대표가 한 마디 하면 최고위원 누가 한 마디 하고, 중진 가운데 또 다른 소리를 하고, 그래서 당차원의 일관된 메시지가 전달이 되지 않는다.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신뢰할 수 없는 정당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니 어제 한 말도 오늘 씹고, 바로 직전에 나온 말도 다른 소리가 덮어 버리는데 누가 그런 정당을 믿고 지지를 보내겠는가.

 

실수를 하면 실수한대로, 잘못했으면 잘못한대로, 그럼에도 여전히 대표로써 그리고 그를 대표로 선출한 정당으로써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며 그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까지 함께 한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 이후 민주당이 근본적으로 바뀐 부분일 것이다. 요식이든 어쨌든 당헌당규를 근거로 당원들의 의견을 물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원칙과 규범에 따라 모든 결정들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설사 민주당에 반감을 가지고 그를 비판하는 입장에서조차 일관된 방향을 가지고 비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민주당에서 공식적으로 나온 발언은 의미가 있다. 충분히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지지율도 다시 크게 뛰어 오를 수 있다.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한결같은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당장 뭔 짓을 해도 결국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김종인이 기존의 국민의힘과 다른 어떤 말과 행동을 보이든 지지자들의 지지는 한결같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신뢰의 문제다. 공당으로서 이미 한 번, 더구나 정당하게 선출된 당대표의 입에서 공식적으로 나온 발언이면 당대표를 내쫓을 것이 아니라 당차원에서 그를 수습하고 만회하기 위한 노력까지 함께 유권자들에게 내보일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 정도 무게감은 있어야 공당으로서 그 말과 행동에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래서 이낙연을 잘라내면 이낙연의 발언이 사라지는가? 이낙연의 행동이 지워지는가? 그 이낙연을 당대표로 선출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원들 자신이란 것이다. 이낙연만 지우고 나면 그런 당원들의 책임은 사라지는 것인가. 마지막까지 당원으로서 지지자로서 당대표를 견제하고 감시하며 비판을 통해 바른 길로 나가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이 정치적 동지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게 바로 당원이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내가 지금도 크게 후회하는 일이다. 탈당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리고 둘째 공당으로서 신뢰의 문제도 문제지만 이제 곧 보궐선거도 앞두고 있는데 이미 있는 당대표가 사퇴하면 이후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하는 것도 큰 문제인 것이다. 정당하게 선출된 당대표를 단지 그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원들이 움직여 내쫓고는 새로운 대표를 선출하려 한다. 문재인 대통령 이전 민주당에서 어째서 그토록 계파정치가 극성이었는지 기억하는가. 바로 당대표도 마음대로 내쫓고는 비대위 꾸려서 다시 지도부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계파가 크게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쪽과 그 기득권을 빼앗으려는 쪽 사이에서 원칙도 규범도 없이 힘겨루기를 하려니 서로 세를 키우는데 집중하게 되고 계파정치가 민주당을 온통 혼란으로 몰아갔던 것이었다. 아무리 당원들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원칙을 무시하고 당대표를 내쫓고 비대위를 꾸리려는데 쫓겨나는 쪽과 그를 대신하려는 쪽 사이에, 더구나 그를 대신하려 경쟁하는 입장에서 과연 공적인 규범이나 원칙이 얼마나 의미를 가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당대표를 지키려는 입장에서는 당원들조차 적대하려 할 테고, 새로 당권을 차지하고 싶은 쪽에서는 경쟁자를 밀어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혼란을 겪고도 보궐선거에서 당력을 모아서 선거를 치를 수 있을 것인가.

 

박시영이 괜히 당대표 교체론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 아니다. 민주당을 가장 오래 지켜봐 온 사람인 것이다. 바로 지금 일부 당원과 지지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동안 민주당을 한심하게 만들었던 그 짓거리였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항상 자기들끼리 싸운다.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일관된 메시지 관리조차 되지 않는다. 뭔 소리를 하는지, 뭘 하겠다는 것인지 항상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다. 민주당은 무능하다는 말에는 공당으로서 믿을 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그 시절로 당원들에 의해 돌아가자는 것인가.

 

소속 정치인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지금 이낙연이 사퇴하고 비대위 꾸리려면 어떤 혼란이 있고 그것이 장차 민주당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냥 안고 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낙연은 나름대로 열심히 잘 수습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민생이슈로 넘어간다. 정책이슈로 빠르게 전환하려 한다. 아마 검찰개혁도 덕분에 더 속도를 내게 되지 않을까. 이낙연이 다시 일어나려면 그만한 두드러진 성과가 필요하다. 그런 게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지 사퇴? 물러나면 끝나나? 당대표 내던지면 없던 일 되나?

 

당대표로서 이낙연을 믿지 못하겠다면 자유다. 더이상 차기 대권주자로서 이낙연을 지지하지 못하겠다면 그 역시 자유다. 문재인 대통령에 반대할 수 있다. 대통령 자격이 없다 주장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헌법이 바뀌더라도 이번 임기에서 5년은 대통령으로서 법이 정한 임기와 예우는 지켜져야 한다. 잘못 대통령을 뽑았더라도 그 책임까지 모든 국민이 함께 진다. 그래서 대통령 탄핵이 그리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냥 무심코 말실수로 표현상의 오류로 내뱉을 말이 아니란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가? 심지어 당원인가? 무엇이 민주당을 위한 것인가?

 

이낙연 욕하다가 이낙연에게 이런저런 조언도 하고 기대도 다시 가져보는 이유인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당원이 선출한 대표다. 정당하게 선출되어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공당의 대표인 것이다. 주호영이 말을 배설하고 원내대표직 그만둔 뒤 튀어 버리면 쫓아가서 국민의힘과 같이 욕할 것이다. 그게 대표라는 직함이 가지는 무게인 것이다. 이낙연 사라진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현실적인 이유에서도 지금 당대표를 교체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 그냥 감정의 배설일 뿐이다. 그마저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당대표로서 이낙연의 책임이겠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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