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에게 무슨 대단한 배후가 있어서 저 지랄을 하는 것이란 일각의 음모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종인과 야합하고, 윤석열과 결탁해서 현정부의 개혁을 좌절시키고 수구의 복권을 이루고자 계획을 꾸미는 중이라는 식의 주장들에 대해 솔깃하긴 한데 현실성은 떨어진다. 그냥 멍청한 것이다. 

 

정치와 행정은 다르다. 리더와 참모의 역할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는 스스로 길을 찾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리더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때로 시행착오도 겪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원망과 비난을 들어야 할 수도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의 무게에 버거워 지레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그에 반해 행정이란 이미 있는 길을 어떻게하면 위험없이 문제없이 효과적으로 잘 갈 수 있는가 그 방법을 찾는 것이다. 길을 찾는 게 어렵지 길이 있으면 방법을 찾는 건 이미 기술의 영역이다. 참모의 역할이란 것도 그런 것이다. 지휘관이 어떤 길을 가고자 하면 그 방법을 찾아 시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지 자기가 알아서 길까지 찾는 것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이낙연도 전남도라는 한 지자체의 장으로써 리더의 책임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남도정에 대한 평가에서도 볼 수 있듯 리더로서는 썩 그다지 훌륭한 인물은 아니었던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향을 정하고 총리로써 내정에 대한 책임을 부여했을 때는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었다. 그 사실까지 부정해서는 안된다. 총리로써 이낙연은 분명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총리를 그만두고 그가 맡은 역할이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원내의석을 가진 입법부를 장악한 거대여당의 대표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조차 이런 거대여당의 대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시하거나 요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책임지면 안되는, 그것도 그 책임이 권한만큼이나 무거운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낙연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엄중'은 그런 자신의 책임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런 때 사람들은 대개 주위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갈 때,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을 해야만 할 때,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책임을 져야만 할 때, 그런 때 사람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조언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과 불안이 클수록 더욱 익숙한 대상에게서 그 도움을 바라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낯선 현재의 상황이 두려운데 낯선 새로운 사람들에 기대하기에는 현실의 무게가 너무 버거운 탓이다. 그래서 기대게 되는 것이 누구인가.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낙연이 원래 친하던 동교동계인 것이고, 이낙연에게 익숙한 언론인 것이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나 과중한 책임의 무게에 망설이고 있는데 하필 눈치를 보는 대상들이 그 모양이니 그들의 바람대로 더욱 소극적이고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아마 이낙연 주위에서 이재명 지사의 지지율이 이낙연을 추월한 것이나 윤석열의 지지율이 여권 후보들을 넘어선 것에 대해 그리 조언했을 것이다. 보아라. 이재명이나 윤석열이나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보수층과 중도층을 끌어들여 이낙연의 지지율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대통령의 후광에 기대서는 지지율이 정체될 뿐이니 저들처럼 보수층과 중도층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낙연 주위의 조언과 달리 이재명의 지지율이 이낙연을 추월하게 된 것은 이재명의 홍남기와 기재부에 대한 공격을 대통령이 아닌 행정부 내의 적폐라 할 수 있는 기재부 관료들에 대한 강한 개혁의지라 이해한 지지자들의 판단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정작 개혁법안들에 대해 소극적이기만 한 이낙연과 달리 적극적으로 홍남기와 기재부등을 공격하며 더 강한 적폐청산과 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핵심지지층을 움직이게 만들며 이재명의 지지율이 이낙연을 넘어서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차별화를 시도하여 중도층과 보수층의 마음을 얻은 때문이라 이해하며 오판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낙연 자신도 중도층과 보수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그래서 고른 것이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위해 결정했다는 전직대통령들의 사면이었다.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이 갇혀 있는 동부구치소에 코로나 감염이 확산되며 언론을 통해 조금씩 동정여론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문제다. 언론. 박근혜를 동정하는 태극기세력이 과대표되고 있는 상황에 이명박이 갇혀 있는 동부구치소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으니 이쯤에서 이명박근혜 사면을 말하는 것도 국민통합이라는 차기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아젠다를 위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여기서 스텝이 꼬인 것이 발언이 보도된 순간 당원과 지지자들의 반발이 거센 것을 봤으면 대충 원론적인 입장을 말한 것이라고 한 벌 물러섰으면 좋았을 것을 이낙연 자신이 워낙 태생이 엘리트였다는 것이다. 괜한 자존심에 큰 자충수를 두고 만다. 전직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신념이다. 반드시 관철시키고 말겠다. 도로 무를 수도 없다. 그래서 끝내는 대통령까지 팔고 만다.

 

말하자면 괜한 오판에 한 번 크게 질렀다가 지지자들이 반발하니 앗뜨거라 당황한 마음에 더 세게 질렀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의 주지지층인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이반이 커지고 정작 중도층과 보수층의 이입은 미미하다. 여기서 더 나가면 그나마 아직 기대를 가지고 있던 기존의 지지층은 더 이반할 것이고 그들 대부분은 이재명에게로 이동하며 그 지지율만 높여 줄 것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러니까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민주당의 다수 당원과 지지자들이 그동안 이낙연을 지지하고 또 떠나 온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해법 역시 제대로 나올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재명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오히려 당원과 지지자들의 마음이 그리로 쏠렸던 것은 그 대상이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이 오판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홍남기로 대표되는 기재부 관료들이었다는 것이다. 행정부에도 적폐가 있다. 기재부 관료들이야 말로 오랜 적폐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 홍남기를 공격한다. 기재부의 관료주의를 공격하며 그들에 대한 개혁의지를 드러낸다. 그마저도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적폐청산의 일환이며 개혁의지의 표현이라 이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려면 더욱 선명하고 강력한 개혁의지를 드러냈어야 했는데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너무 개혁적이라 보수층과 중도층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 길을 막고 물어보자. 이낙연이 개혁적인 인물이라 여기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더구나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이낙연이 보수적이며 안정적이라 그래도 마음놓을 수 있었던 지지층마저 사면론이라는 돌출성 발언과 그를 고집하며 정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모습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슨 뜬금없는 전직대통령 사면론인가. 정작 코로나로 인해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는 지금 그 해법을 내놓기보다 전직대통령 사면이라는 정치적 이슈에 매몰된 모습에서 과연 국정을 이끌 자격이 있는가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하던대로 엄중히 지켜보면서 해야 할 일들만 해도 중간은 갔을 텐데 괜힌 정치적 한 수에 오히려 그 신뢰마저 금이 간다. 과연 지금대로 이낙연이 계속 자신의 고집을 밀어 붙인다면 이낙연의 계산대로 지지층이 다시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중도층과 보수층에서 이낙연 지지로 돌아서게 될 것인가? 당내경선도 통과하기 어려워 보이는 현시점에서?

 

정당의 대선후보란 당원들의 대표자인 것이다. 최대다수의 당원들의 최대공유점인 것이다.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은 이런 정치적 지향과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이런 정책들을 추구하고 있다. 그를 대표하여 민주당 후보는 선거에 나가서 다른 정당의 후보와 경쟁하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지지층 대부분이 반대하는 사면론을 신념이라며 새해벽두부터 밀어붙이려는 인물이 과연 민주당 대선후보로서 얼마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이재명만 신난 것이 아니다. 정세균도 신났다. 거의 이번 대선을 포기하고 있던 정세균이 갑자기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 박주민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지 않으면 이번 대선을 노리겠다는 뜻이다. 추미애는 이번에 내상이 너무 심해서 어려울 것 같고, 그밖에도 이낙연의 빈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지 않을까. 그만큼 이재명에 대한 당원들의 비토가 크기도 하고.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낙연도 자신의 주위를 한 번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런 조언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놈이 바로 내부의 적이다. 정대철과 한화갑은 거의 확정이다. 굳이 인터뷰를 자청해서 대통령까지 끌어들이며 이낙연을 감싼 이유가 있다.

 

아무튼 그냥 처음 맡아 보는 막중한 책임에 혼자서 어버버하다가 괜히 오버한 끝에 나온 악수에, 그럼에도 엘리트로서의 자존심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해 고집하며 생긴 자해소동에 가까운 것이다. 자기 딴에는 이재명과 윤석열을 칠 한 수라 생각하고 내지른 것인데 그 칼끝이 자기 목을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죽더라도 자기 잘못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엘리트로서의 자존심인 것이다. 그래서 뒈진다면 그게 자기 그릇이구나 할 밖에.

 

사실 이게 더 큰 문제다. 무슨 대단한 정치적 노림수라도 있었다면 능력은 인정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것도 아닌 단지 상황을 오판하고 괜한 고집을 세운 결과가 지금 상황이란 것이다. 일찍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 사람은 자리에 앉혀 봐야 그 진가가 드러난다. 총리로서는 최선인지 몰라도 대통령으로서는 최악이다. 이낙연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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