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서로를 죽이며 정쟁을 하는 와중에도 일정한 선은 지키고 있었다. 이를테면 왕족은 고문을 하지 않는다. 벌주면 벌주는 거고 고문하면 고문하는 거지 어디 감히 존귀한 왕족의 몸에 형틀을 갖다 대는가. 마찬가지로 일정한 위치에 이른 명사라면 육체적인 고통을 주기보다 최대한 명예를 지켜주는 정도에서 형벌을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배는 그런 점에서 사대부들에게 훈장과 같았다. 직언을 하다가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유배를 살았다. 죽이더라도 시신은 보전할 수 있도록 사약을 내리거나 아니면 교형에 처했다. 조선후기에 가면 조선 전기 사화의 경우와 달리 연좌로 가문까지 적몰하는 경우는 피하려는 경우가 늘게 된다. 왜? 자신들은 같은 사대부니까.

 

조선만 그런가 하면 세계가 거의 비슷했다. 조선과 달리 유럽에서는 참수는 귀족들만 받을 수 있는 고귀한 형벌이었다. 한순간에 목이 잘려 숨이 끊어지는 것이기에 교살보다 훨씬 고통이 적고 깔끔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요틴이 단두대를 발명한 것이었다. 혁명정신에 따라 귀족만이 아닌 모든 시민에게 참수형을 허락하자. 일본에서는 사무라이에게 마지막으로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자살을 명령하고 허락했다. 신센구미의 국장 곤도 이사미가 참수를 당한 것도 그가 무사출신이 아니었고 끝까지 무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조정군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전쟁이 끝나고 상황이 일단락되자 조정군에 끝까지 대항했던 막부군 인사 가운데 유력자들은 거의 복권되어 새로운 조정군에서 일하고 있었고, 심지어 아이즈번주였던 마츠다이라 다카모리는 텐노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후견역까지 맡을 뻔했었다.

 

신분에는 신분에 어울리는 형벌이 있다. 신분에는 신분에 어울리는 예우가 있다. 그런 예를 잘 지키는 자가 신분에 어울리는 자격을 갖춘 자다. 아무리 그래도 전직 대통령인데 최종판결까지 받고 형을 모두 살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래도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들인데 지지자들을 생각해서도 일찌감치 풀려나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어딜 감히 선출직 나부랭이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검찰총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것도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를 징계하는가. 같은 사법고시 출신으로 검찰의 수장이 징계받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 말했잖은가. 저들이 민주당을, 그 가운데서도 친노친문을 혐오하는 것은 신분에 대한 차별과 유사하다고.

 

자기들은 서울대 출신이다. 최소 내세울만한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들이다. 그만큼 노력도 했고 실력도 있고 남들보다 나은 점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와 이 사회를 위한다면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다. 아니 외부의 부정하고 부당한 개입만 없으면 자기들이 이 나라와 이 사회를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어째서 사대부인가. 어째서 사대부만의 관리를 하고 조정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니까 사대부와 같이 유교적 소양을 입증해서 자격을 허락받아야 하는 것이 과거제의 목적인 것이다. 그래서 대학입시가 과거가 되고 사법과 행정, 외무 등 고시가 또다른 과거가 되는 것이다. 자신들은 이 나라를 지배하고 다스릴 자격이 있다. 자칭 진보가, 정치인과 언론인을 막론하고 명문대 출신의 사법엘리트들에게 관대한 것을 넘어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인 것이다. 자신들은 엘리트다. 정당한 실력과 자격이 있다. 자, 여기서 이낙연에 해당하는 것이 몇 개나 될까?

 

박수현이 고백했다. 이명박근혜는 반드시 사면되어야 한다. 이번 정권 안에서 반드시 사면되어야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기에. 정당하게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이들이기에. 그런 대우를 다하는 것이야 말로 지배신분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이낙연의 선의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을 사면해야 하고 내가 그 책임을 덜어주겠다. 문재인을 지지한다는 이낙연 지지자 버러지 새끼들도 새기들이다. 이낙연 자신도 청와대와 상의한 적이 없다 말하고 있는데 굳이 문재인을 끌어들여 책임을 지우려 한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외쳐 보라. 문재인이 이명박근혜 사면하려는데 민주당 국회의원과 지지자들이 막아섰다. 저 새끼들 좀 심판해 달라. 문재인 대통령의 뜻대로 사면할 수 있게 도와달라. 정신병원 끌려가지 않으면 다행이다.

 

어째서 저런 주장들이 나오는가. 오래되어서 그렇다. 이낙연이 처음 정치에 입문할 당시만 하더라도 정치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다. 김대중처럼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앞장서서 정치를 하면 국민들은 그저 그를 따르며 표만 던져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같은 민주당 대통령이라도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한 대우가 다른 것이다. 문재인에 대한 대우도 다르다. 이낙연도 그를 의식한 듯하다. 이미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정치를 해 왔고, 박정희와 비교될 정도로 거물로써 민주화진영을 이끌어 왔기에 김대중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부여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될 때도 대부분 보수지지자들조차 한 번 쯤 할 때가 되었다며 인정했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노무현이나 문재인은 저 먼 시골에서 변호사질이나 하던 생뚱맞은 인간들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과연 자격이 있는가 봤더니 영 자신들과 논리도 문법도 다르다. 그야말로 보리문둥이인 것이다.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태도보수라는 말부터 이낙연 자신이 기존의 기득권의 문법에 익숙하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남들의 위에 서는 이로써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남들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런데 그런 것들이 드러나는 말과 행동을 넘어서 생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다음 대통령이 되려는 이로써 이전 대통령들을 어떻게 예우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전 대통령들에 대한 예우를 결정할 때가 되었다.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유시민이 60이 넘으면 머리가 썩는다 했던 것인가. 시대는 바뀌었는데 여전히 예전의 상식을 고집하려 한다. 자신은 선의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상식이 적용되어야 한다.

 

아무튼 논란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진심이다. 단지 계산에 의해 나온 발언이면 발언이 있고 바로 오늘과 같은 정리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국민통합을 위해서 사면이 필요하다 여겼었는데 당원과 지지자들의 의견이 그러하니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 같다. 그랬다면 원래 오래된 사람이라 그런가보다 넘어갔을 텐데 너무 진심을 보여주고 말았다. 다 이어진다. 사법부가 윤석열을 지원하고 나선 것이나, 전광훈을 풀어주었던 것이나, 검찰이 나경원과 박덕흠을 봐주는 것이나, 그런 것을 정의당이 오히려 지지하고 나서는 것이나, 조선과 한겨레가 언론이랍시고 입을 맞추는 현실이나. 그래서 그런 무리들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써 저들의 문법으로 이야기하려는 놈들이 나오기도 하는 것일 테고.

 

물론 나 역시 전직대통령들이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감옥에서 뒈지는 상황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또다른 원한을 만들어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언젠가는 정치적 결단을 해야만 한다. 다만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절차는 거쳐야 하는 것이다. 재판을 통해 유죄판결을 받았고 최소한이나마 충실히 형을 살았다. 사과도 하고 반성도 했다. 아니면 그렇더라도 전직대통령이라는 이유로 국민적인 동정심이 크게 일어나게 되었다. 아마 다음 대통령이 퇴임하기 직전이 아닐까. 그것 또한 이낙연의 목적일 것이다. 지금은 물러나지만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자기가 두 전 대통령을 사면시키겠다. 자신을 지지해달라. 민주당 빨갱이 새끼가.

 

이낙연에게서 느껴왔던 안정감의 정체인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평범한 백성들이 여느 무지렁이들과는 말도 행동도 전혀 다르게 하는 양반님네들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말도 함부로하지 않고 행동도 엄격하고 단정하고. 사극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양반들이 막나갔으면 일찌감치 조선의 사대부지배는 끝장났다. 백성들이 기꺼이 우러를 수 있는 단정하고 예의바른 엄격함을 지킬 수 있어야 사대부 사회에서 사대부로 인정받으며 살 수 있었다. 그래도 정치인으로서 이만하면 품격도 있고 태도 나지 않는가. 사면은 그렇다 치고 이후 개혁입법 과정을 다시 지켜보려 한다. 개혁입법만 잘되면 원래 그런 인간이었으니 잊어 줄 수도 있다. 완전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원하는 것이니까.

 

원래 쌍욕 박으려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글을 쓰는 동안 이낙연이란 인간을 이해해 버렸다. 말했듯 다음 대통령 임기 동안이면 그리 마뜩지는 않지만 정치적으로 두 대통령의 사면을 이야기해봐도 좋겠다는 동의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이번 대통령 임기 안에 굳이 대통령을 압박해가며 이루려 하지 않는다면 그 이상 선을 넘지 않았을 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중요한 건 지금 당대표로써 임박한 개혁법안들에 대한 태도고 행동들일 것이다. 정치인이 자기 욕심을 위해 경쟁자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이려 하는 것이야 원래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으로서 어울리는 인물인가, 아닌가. 지켜본다. 아직 기회는 있다. 그마저 걷어차지 않기를.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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