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이 한신에게 물었다. 나는 얼마의 병사를 거느릴 수 있는가. 한신이 대답했다. 10만이면 충분합니다. 다시 유방이 물었다. 그러면 그대는 얼마의 병사를 거느릴 수 있는가. 역시 한신이 대답했다. 많을수록 좋습니다. 다다익선의 고사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첫번째 북벌을 시작했을 때 위연이 의견을 냈다. 내게 5천의 병사만 주면 자오곡을 통해 장안을 바로 급습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5천이었을까? 그리 자오곡으로 가로지르는 것이 빠르고 기습의 효과도 크다면 그냥 촉군 전체가 자오곡을 통해 장안으로 들이치면 되는 것이다. 

 

역사상 소수의 병력으로 신출귀몰하며 종횡무진 수많은 전공을 쌓아 온 영웅이 정작 대군을 이끌고 야전에 나서서는 어이없이 패하고 마는 경우가 역사에는 매우 흔하다. 당연하다.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유격전을 벌이는 것과 대군을 이끌고 야전을 치르는 것은 비슷해 보여도 성격이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병력이 적으면 그만큼 지휘에 따른 부담도 적다. 보급이야 민가 몇 개만 약탈해도 먹을 것 정도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고,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주둔지나 기동로에 따른 제약도 그리 크지 않다. 심지어 지형을 이용해서 아예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병력을 감추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지휘관의 역량에 따라 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취약한 지점으로 직접 기동하여 공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병력이 많으면 그만큼 보급이며, 주둔이며, 기동에 있어 많은 제약이 따르고, 무엇보다 적에게 훤히 노출될 것을 감안하고 작전을 펴지 않으면 안된다. 난이도가 다른 것이다. 그저 얼굴도 이름도 성격까지 다 아는 몇몇이서 대군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은밀한 경로를 이용해서 적의 약점을 급습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과 단지 숫자에 지나지 않는 수많은 대군을 이끌고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경루 가운데 선택하여 적의 의도 아래에서 야전을 치르고 승리를 거두는 것이 절대 같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둘 중 더 어렵고 더 힘든 것이 바로 후자일 것이다. 소수의 병력으로 유격전을 치르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바로 대군을 이끌고 회전을 하는 것이다.

 

바로 이재명과 이낙연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은 혼자다. 경기도 도정의 수장은 도지사의 자리에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중앙정치에 경기도의 자원을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중앙정치에서 이재명이 무슨 꼴을 당하든 경기도가 직접 영향을 받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냥 별개다. 경기도정은 도정, 중앙정치는 정치, 대선후보경선에서 떨어지더라도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여전히 경기도지사로 있을 것이고, 대선후보경선에서 승리하면 더이상 경기도지사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혼자서 싸워야 한다. 배경이 되어 줄만한 세력도 없지만 그런 만큼 책임져야 하는 대상도 없다. 그러니까 마음껏 말로 떠들어도 된다. 더구나 자기 혼자 떠든다고 실제 이루어질 것도 아니기에 더욱 결과에 대한 부담 없이 자기 옳은 소리만 한다고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낙연은 아니다.

 

이낙연은 어쨌거나 현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였다. 이낙연의 행보는 당연히 현정부의 입장과도 이어지게 된다. 더구나 당대표다. 이낙연의 말 한 마디는 이낙연 개인의 주장이 아닌 당 전체의 입장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리고 무려 180석에 가까운 거대여당의 대표로써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가 실제 현실의 정책으로까지 - 혹은 그럴 수 있다는 예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말도 행동도 그만큼 조심스러워야 한다. 대신 조심스러운 만큼 고심끝에 내뱉은 말 한 마디 선택한 행동 하나는 큰 파급력을 가지게 된다. 그에 어울리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 과연 거대여당의 대표로써 전직 국무총리로써 얼마나 자신의 책임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가. 

 

그래서 이재명과 이낙연의 역할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재명은 밖에서 이런저런 주장들을 자유롭게 펼침으로써 장차 국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아젠다를 만들고, 이낙연은 원내에서 압도적인 다수의 의석을 가지고 야당과 언론과 기득권들의 저항을 누르고 현실적인 개혁을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재명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실질은 없지만 명분을 위한 유격적인 것이고, 이낙연은 명분보다는 실질을 이루기 위한 야전이고 회전인 것이다. 그래서 이재명의 발걸음은 빨라야 하고, 이낙연의 발걸음은 무거워야 한다. 이재명의 말과 행동은 가벼울수록 좋지만 이낙연의 말과 행동은 답답할 정도로 느린 것이 더 최선이다. 오히려 책임이 있는 위치에서는 인내가 곧 실력이고 용기고 의지가 되는 때가 있다. 다만 그렇다고 너무 느리고 무거우면 때를 잃게 된다.

 

그래서 한 편으로 이재명이 조심해야 하는 것은 그 빠르고 가벼운 행보 가운데 덜컥 누군가에게 발목을 잡히는 상황일 것이다. 밑을 보지 못한다. 아니 봐서는 안된다. 그러면 느려진다. 무거워진다. 이재명이 이낙연처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기보다 실익이 없다. 자유로운 위치를 마음껏 이용하며 즐겨야 한다. 이낙연은 그래서 반대로 너무 신중한 나머지 때를 놓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성급해서도 안되지만 너무 신중해서도 안된다. 이번 공수처설치가 차기 대선주자로서 이낙연에게 매우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는 이유인 것이다. 바로 대군이 나서야 할 상황이다. 170석이 넘는 거대여당을 이끌고 과연 어떻게 공수처설치라는 정부와 당의 개혁과제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자잘한 논쟁에 굳이 휘말릴 필요가 없다. 성급하게 자기 입장을 밝힐 필요도 없다. 그런 건 보다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이재명에게 맡기면 된다. 이낙연은 큰 싸움만 하면 된다. 굵고 큰 싸움만 전담해 맡으면 된다. 그러라고 있는 당대표다. 더구나 어느때보다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당대표인 것이다. 역대 어느 당대표도 이렇게 대권을 예정해두고 있지 못했다. 실수만 하지 않아도 현정부의 성공은 고스란히 정권의 재창출로 이어진다. 그 중심에 이낙연 자신이 있다. 그 위치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굳이 조언할 필요 없이 이낙연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대처하고 있는 듯하다. 무겁지만 둔하지 않고, 신중하지만 느리지 않다. 따박따박 차근차근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새 돌아보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서 있다.

 

어느때보다 행복한 시절이란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둘 다 민주당 소속이다. 민주당의 가치를 대변하는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라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는 민주당 정권은 계속 이어진다. 더구나 각자 자신의 위치에 맞은 역할을 알아서 잘 찾아서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누가 더 잘났고 못하고보다는 그냥 서로 놓인 위치와 처지가 다른 것이다. 다만 과연 이재명이 유격전을 마치고 중앙무대에서 이낙연과 격돌했을 때 정규전에서도 얼마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미지수다. 빠르고 날카로운데 단단함은 부족하다.

 

우열을 따질 때가 아니란 것이다. 이재명에게는 이재명의 장점이 있고 이낙연에게는 이낙연의 강점이 있다. 그 모든 것이 지금 민주당의 자산이란 것이다. 차기 대권을 약속하는 무기다. 기뻐해야 한다. 당연히 즐기는 중이다. 100년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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