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국사시간에 배웠던 내용 가운데 화백제도가 민주주의의 시초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수정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맥락으로 보며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래 의회라는 자체가 한 집단을 대표할만한 유력자들의 협의기구에서 출발했었으니까.

 

당장 로마의 원로원부터 그랬을 것이다. 원로원을 이루는 대다수는 결국 로마를 이루는 여러 집단들에 대한 태표성을 가지는 유력가문의 인물들이었다. 로마의 시민들이 투표해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원래 태생이 그러하니 자연스럽게 그같은 지위를 부여받는 것이었다. 이후 등장한 여러 나라들의 의회도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의 삼부회도 결국 귀족과 성직자, 그리고 부유한 상공인들에 의한 자기들만의 리그였고,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아예 제후와 도시의 대표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의회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영국에서도 제한된 선거권과 피선거권에 의해 어차피 될 사람만 되는 자리가 바로 의회의원이란 것이었다. 비슷하게 지금 일본 자민당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이다. 누구의 아들이라서, 누구의 사위라서, 어디의 영주이고 시장이라서, 얼마만한 땅과 자본이 있어서, 그리고 그들에 의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입법과 행정감시가 이루어지는 곳이 의회라는 공간이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같은 소수의 기득권이 독점하고 있던 의회의 권한을 시민들이 조금씩 빼앗아오는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부유한 도시의 부르주아들이, 그보다는 가난했던 더 많은 중산층 부르주아들이, 그리고 도시의 노동자와 농민들과 마침내는 여성들까지. 그러면서 더 많은 참정권을 가진 유권자들에 의해 그들의 요구에 맞는 인물들이 선출되는 과정으로 선거라는 제도도 바뀌어갔었다. 일정한 재산이 없어도, 타고난 신분이 없어도, 남다른 지위에 오르지 않고서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같은 시민들에 의해 선택받을 수 있다. 그렇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을까.

 

군사독재시절에도 국회는 있었다. 대통령도 어찌되었거나 간선제나마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민주주의라 부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주권자로서 시민의 참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고, 시민들의 정치적인 의사 역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87년 6월 거리로 쏟아져나왔던 시민들이 요구한 것도 대통령 직선제로 바꾸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뒤집은 것에 대한 항거였었다. 내가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겠다. 내가 내 손으로 주권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겠다. 그를 위해 우리 선배들을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려가며 독재정권과 싸웠던 것이었다. 내가 지금 86그룹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그렇게 싸웠던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전에도 말한 것처럼 원래 민주당의 역사는 토호의 역사였다. 지역유지들이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만든 것이 민주당의 전신인 한민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이승만도 뛰쳐나가 자유당을 만들어야 했었다. 그런 것을 용납 못하겠다고 조봉암과 함께 나가서 진보당을 만들었던 젊은 정치인들도 나왔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민주당의 주류는 그런 지방의 유력자인 지주와 자본가들이었고, 그들이 선택한 후보들 역시 조봉암이나 장면, 윤보선 같은 자기들과 같은 부류들이었다. 괜히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심지어 진보적인 인사들까지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아니었다. 이후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중앙의 강력한 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의 그러한 경향은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지 않았었다. 김대중과 김영삼도 결국은 그러한 토호들과의 결탁을 통해 군사독재와 싸울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인물들이었다. 어째서 김영삼의 선택에 부산경남이 한 번에 넘어가고, 김대중과 호남이 운명을 같이하다시피 했는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여기에 민주화에 지분이 있는 인사들까지 더해졌다. 내가 민주당에 지분이 있고 민주화에 지분이 있으니 민주당은 내 당이다.

 

이른바 수박의 뿌리인 것이다. 예전에는 안개모라 불렸다. 안정적인 개혁을 위한 모임의 준말이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을 고비마다 막아서고 나섰던 이들이다. 결국에는 나중에 민주당과의 재합당을 주도하고 당권파가 되어 민주당의 분열을 야기하던 놈들이다. 나 아니면 당도 없다. 내가 아니면 민주당도 없다. 사실상 기득권을 지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보수정당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민주당의 토호와 같은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단지 민주화에 지분이 있다는 이유로 자기 영역을 보장받은 이른바 86그룹들이 더해졌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내 당이다. 어느 순간 지지자를 개좆으로 알기 시작한 게 아니라 원래 처음부터 민주당에 있어 지지자란 개좆이었다는 것이다. 민주화에 자기들이 공이 있는데 감히 다른 정당을 찍을 수 있겠는가. 자기들 아닌 보수정당에 표를 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원래 자기들 것이라 당연하게 여기고 그저 공천만 받으면 된다고 쉽게 여겼던 것이었다.

 

한겨레와 경향 등 자칭 진보들이 민주당의 개혁에 부정적인 이유도 바로 그런 까닭에서라고 보면 된다. 아마 한 번 썼을 것이다. 어째서 저들은 민주당이 당원 중심의 정당이 되는 것에 저토록 적대적인 것인가. 자기들에게도 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지분을 자기들도 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에 있어 당원과 지지자란 그런 자신들을 위해 표를 주는 대상이자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당원과 지지자들이 아예 당의 주인행세를 하려 한다. 자기들을 배제한 채 자기들 뜻대로 당을 움직이려 한다.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노무현 때부터 저들은 노무현과 유시민이 주장했던 상향식 민주주의에 대해 적대적이었었다. 저들이 아직도 노무현과 유시민, 그리고 문재인에 이어 이재명까지 원수처럼 증오하는 이유일 것이다. 저놈들이 자기들의 민주당을 빼앗아가려 한다.

 

말하자면 원래 민주당이 당원의 것이었다가 수박들에 의해 빼앗긴 것이 아니라 원래 수박들의 것이었던 것을 당원들이 빼앗아 가져오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지역 유지인 누구의 아들이란 이유로 당연하게 의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무지렁이 노동자 농민들이 자기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다른 사람을 공천해서 당선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이 지역의 의원 자리는 자기들 집안의, 혹은 자기들과 동류의 것이었는데 엉뚱한 사람이 와서 빼앗아가려 한다. 당연하게 피가 흘렀다. 수도 없이 죽고 죄인이 되어 쫓겨 다녀야 했었다. 전쟁도 일어났었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권자로서 자신이 지지할 정당에 대해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하기에 정당이 자신이 의도하는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실력을 행사해야겠다. 그 결과 정당은 유권자인 당원과 지지자의 것이 된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빼앗기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한 혼란이었던 것이다. 노무현부터 시작된 20년 넘는 민주당 내부의 투쟁은. 

 

유시민이 민주당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말한 이유였었다. 문재인의 혁신을 위해 수 만의 당원들이 민주당으로 몰려가야 했던 이유였었다. 그래서 수박들은 당원들이 직접 자신의 정당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대의원제라는 제도를 고집했던 것이었다. 아직 민주당은 자신들의 것이다. 자신들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지지자는 개딸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여 배제하려 한다. 당원이 당을 마음대로 하려는 것을 당원독재라며 낙인찍어 거부하려 한다. 그것에 동참한 2찍 진보라는 것도 같은 무리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진보라 주장하는 정의당에 어디 상향식 민주주의가 있던가. 지난 총선에서도 드러났다. 정의당에 있는 것은 소수의 패거리정치 뿐이다. 그것을 민주당에도 바란다. 민주당의 수박들도 고집한다. 그래서 기나긴 싸움이 있었고 마침내 일정부분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공천의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당원에 의해 공천의 여부가 다수 결정되었다. 당원을 거스른 오히려 주류인사들이 당연하게 공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아주 발작을 한다. 당원에 의해 배제된 인사들에 대해 오히려 반대편에서 아깝다고 안타까워하는 중이다. 그로 인해 피가 흘렀다. 배제되고 도태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러면 그 결과는 무엇일 것인가. 앞서 굳이 길게 역사 이야기를 한 것이다. 소수의 유력자들에 의해 독점되던 의회권력이 시민 다수에게 개방되었던 것처럼 진정으로 공당인 민주당이 지지자의 것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혁명이라는 이유다. 피를 어쨌든 흘렸으니 유혈혁명이다. 문제삼는 놈들이야 원래 프랑스혁명도 마음에 안들어 하던 귀족놈들이 넘쳐났었으니. 그렇게 적아를 구분하면 된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병신짓은 하지 말자. 당연한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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