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도 촉한의 사정만 보면 유선만한 병신새끼도 또 없다. 아니 아버지가 그렇게 힘들게 세우고 제갈공명이 그렇게 어렵게 지켜낸 나라를 그리 홀랑 항복해서 내 줄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더구나 환관 황호를 옆에 끼고 간신들에게 둘러싸여 나라를 그따위로 다스린 것을 보면 죽음을 앞두고서까지 그리 절절하게 나라걱정을 하던 제갈량이 다 불쌍할 지경이다. 그래서 서진의 사마염도 저런 놈이 황제였으니 제갈량이 옆에 있었어도 촉한이 그리 패망했다 까기도 했었는데...

 

그런데 정작 유선과 같은 시기에 황제자리에 있었던 면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희석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비가 유선보다 조금 먼저 즉위했고, 그리고 조비에 이어 조예가 즉위했다가, 조방에 이어 조모와 조환이 차례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었다. 심지어 저 조환으로부터 황제자리를 물려받아 서진을 세운 놈이 또 하필 사마염이다. 사마염 사후 서진을 작살낸 팔왕의 난이 사실상 사마염 자신이 싸놓은 똥들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평가 자체가 의미없다 할 수준이다. 그러면 오는 어떨까? 손권이 조금 더 오래 재위했지만 이 인간 살아생전 싸놓은 똥도 만만치 않은데다, 그 뒤를 이은 황제란 것들은 뭐 말이 필요 없는 수준이다. 그에 비하면 유선 재위시절 옥사가 크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강유나 제갈첨같은 인재들도 충실히 지켜주었었고, 특히 이 가운데 강유는 주위에서 참소가 상당했었음에도 끝까지 한중의 군권을 잃지 않고 북벌을 위해 전념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었었다. 이렇게 보면 뭔가 좀 달라 보이지 않나? 유선이 무능한 것은 무능하다 치더라도 다른 나라의 황제들도 딱히 유선보다 나은 놈이 보이지 않는다.

 

조선의 선조도 그렇다. 나도 어릴 적에는 선조를 무척 싫어했었다. 그런데 선조와 비슷하게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망할 위기에 놓였을 때 다른 나라 군주들이 보인 행보를 보니 어쩐지 선조를 다시 보게 되었다. 특히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그렇다. 선조는 그래도 이순신을 살려는 주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숭정제는 원숭환을 아예 죽여 버림으로써 그를 따르던 일선의 무장들이 이탈하게끔 만들었다. 이자성의 반란군이 바로 북경까지 쳐들어오는 와중에 혹시라도 태자가 황위를 찬탈할까 걱정해서 피난을 늦게 보낸 탓에 그만 반란군에 붙잡혀 죽게 만들기도 했다. 선조는 전쟁이 나자마자 바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그로 하여금 분조를 이끌게 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교가 되는 장면은 바로 열심히 튀어서 일본군에 잡히지 않고 왕조를 지켜냈던 선조에 비해 도망도 못치고 알아서 목매달아 뒈지는 바람에 후계도 없이 명의 남은 여력조차 지리멸렬 흩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마 조선도 만에 하나 선조가 일본군에 붙잡혔다면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광해군이 아무리 세자로 책봉되어 분조를 이끌고 있다 하더라도 임해군도 왕자이니 다른 생각을 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렇더라도 명분이 확실한 이상 어찌되었거나 광해군이 이후 조정을 이끌면서 일본과의 전쟁을 지휘하게 되었을 것이다. 진짜 비교가 되지 않는가?

 

전쟁이 끝나고 의병들도 적절히 챙겨줬고, 공신들에 대한 예우 또한 논란이야 있어도 크게 무리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서 백성들을 되찾아온 것도 바로 선조 때의 일이었다. 동의보감도 선조 때 왕명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었었고, 전후복구도 나라사정이 어렵다고 창덕궁 하나 간소하게 지었을 뿐 큰 토목공사 없이 적당히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히려 광해군보다 낫다. 아직 전쟁이 끝난지 몇 십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궁궐을 더 짓겠다고 백성들을 노역으로 내몰다가 반정으로 폐위되고 동정도 받지 못했었다. 인조는 뭐... 이 새끼는 진짜 광해군 덕분에 왕이 된 놈이라 말할 가치도 없다. 아니다. 인조야 말로 선조를 재평가하는데 필요한 아주 훌륭한 비교대상일 것이다. 그러니까 도망치는 것도 못해서 식량도 없이 남한산성에 쳐박혀 있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항복하는 병신과 비교하기에는 선조가 너무 불쌍하다. 전쟁 이후 전후처리만 보더라도 씨발 이 새끼는 멀쩡한 지 자식과 손자들까지 죄다 죽여버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크게 역할도 못했던 김자점같은 놈들을 옆에 끼고서 나라꼴 아주 작살내고 있었고.

 

비교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 아니 사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군주제가 폐지디고 민주정이 들어서게 된 이유일 것이다. 정도전이 제대로 군주제의 허점을 보았다. 핏줄만으로 왕위를 이으면 결국 이런 병신들이 더 다수를 이루게 된다. 그런 병신들로 인해 멀쩡한 나라도 한순간에 망하고 만다. 중국 명나라의 황제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데도 나라가 안 망했다는 사실에서 중국이라는 대륙이 가진 저력을 실감케 된다. 북송이나 청이나 다를 것 없이 황제라는 것들 수준을 보면 진짜 애저녁에 망했어야 하는 나라가 꾸역꾸역 잘도 버티고 있었다는 새삼스런 깨달음 같은 걸 얻게 된다. 그에 비하면... 이전이나 이후의 조선왕들과 비교하면 선조보다 낫다고 할 인간이 진짜 몇 되지 않는다. 태종과 세종, 그리고... 영조와 정조? 아, 숙종도 포함. 그 밖에는? 

 

그래서 역사는 여러가지 각도로 더 폭넓게 다양한 대상을 통해 비교해가며 이해해야 한다. 왕으로서 선조가 불만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러나 당시 전근대시대의 군주 가운데 그 정도면 꽤나 무난하다. 무난한 것을 넘어 충분히 유능하다 할 수 있다. 진짜 동아시아, 아니 세계의 역사를 보더라도 유선만도 못한 놈들이 왕이랍시고 너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놈들이 더 많다. 그래서 군주제가 역사에서 사라져간 것이다. 남은 곳들도 몇몇을 제외하고 왕은 단지 상징적인 존재로만 남아 있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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