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기 직전 중소기업을 보면 그런 분위기가 있다. 어차피 매출도 별로고 남는 것도 거의 없다 보니 이대로 좋은가 하는 회의가 들게 된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기에 대부분 회사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일에 정신을 쏟을 때가 많다. 다른 직장을 알아보거나, 아니면 그나마 붙어 있는 동안 뭐라도 더 챙길 수 있는게 없는지 궁리하고 살핀다거나. 그러다가 기회가 오면 알아서 순서대로 능력껏 탈출하게 된다.

 

오와 촉의 차이는 사천분지 자체가 워낙 험준한 지형으로 고립되다시피 한 지역이라 다른 곳으로 뻗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남만까지는 어찌어찌 점령했는데 그 아래로는 말 그대로 밀림지역이라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 아래쪽으로 그나마 문명이라는 것이 들어서게 된 것은 교주까지 밀려났던 월족이 더 서쪽으로 쫓겨가서 베트남에 정착하면서부터였다. 서쪽으로 티베트를 넘어 인도가 있기는 했지만 차라리 거기까지 가는데는 장안에서 서량을 통해 가는 쪽이 더 빠르고 편하다. 그렇게 사방이 막혀있다시피 한데 그나마 땅조차 좁다. 서촉에 조조가 인구를 모두 소개한 한중 정도가 촉이 차지한 영토의 전부다. 그에 비해 위는 중원을 거의 차지하고 있고, 오 또한 영토만 놓고 보면 상당한 넓이에 바다를 통해 외부로의 진출이 가능하다. 인구도 9분의 1에 지나지 않는데 과연 그런 촉이 얼마나 위를 상대로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구한말 조선의 상황을 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여말선초의 왕조교체의 상황과도 유사하다. 어차피 망할 것을 안다. 언제 어떻게 망하느냐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선택해야 한다. 무너져가는 왕조와 운명을 함께 할 것인가, 새로운 왕조을 통해 기회를 노릴 것인가. 그것은 오히려 황제라는 지고의 자리에 있었기에 유선 또한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비의가 강유에게 했던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제갈량 같은 인물도 감히 위를 상대로 정벌에 성공하지 못했는데 과연 남아있는 이들이 위를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상황에 사람들의 선택은 양 극단으로 갈리게 된다. 어차피 현상유지는 불가능하니 나가서 싸우기라도 하자는 강경파와 어차피 희망이란 없으니 차라리 항복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현실파다. 그래도 한을 계승한다는 명분과 촉이라는 체제 아래에서 누리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더해지며 강경파의 의도가 어느 정도 먹히기는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촉한이 처해 있던 한계상황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너무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강유관을 지키던 마막이 등애군의 존재를 알자마자 바로 항복부터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더이상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위군이 후방인 강유관까지 나타난 상황 자체가 촉한의 멸망을 확정지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산을 내려와 진을 친 등애군을 상대로 제갈첨이 성급하게 승부를 걸려 한 것도 그런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볼 수 잇을 것이다. 내면에 잠재해 있던 불안이 현실로 드러나자 자연스럽게 행동도 성급하고 과격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경향은 유선의 항복으로 정점을 찍게 된다. 너무나 허무하게 제갈첨의 패배를 들은 순간 유선은 더이상의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함으로써 변방왕조의 고단한 황제역할을 자기 손으로 끝마치게 된다. 이제는 더이상 언제 나라가 망할까 걱정하며 마음 조이지 않아도 된다. 기왕에 망할 것이면 그냥 이렇게 확실하게 망하는 쪽이 더이상 불안하지 않고 편하다.

 

말하자면 제갈량 사후 촉한이라는 나라는 멸망할 날짜를 받아놓은 시한부 왕조라 할 수 있었다. 어찌어찌 연명은 하지만 그러나 결국 언젠가는 멸망할 것이다. 그것이 유선 자신의 대일 것인가, 아니면 다음의 누군가 때일 것인가. 그렇다고 촉한이 뭔가를 해 보기에 현실은 그저 암담하기만 했다. 동맹이라고 있는 오는 호시탐탐 촉의 영역을 노리는 믿지 못할 놈들이고, 다른 동맹할만한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땅도 좁고, 인구는 적고, 인재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촉한의 황제 유선이 등애에게 항복했을 당시 촉한의 내부에서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위와의 최일선에서 전쟁을 치러왔던 강유와 같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그랬었다. 유선을 딱히 암군이라 여기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다. 암군이라기에는 재위기간이 오히려 손권보다도 더 길었는데 결정적으로 실정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황호를 중용한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국정을 크게 그르치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제갈량과 장완, 동윤, 비의 등이 있을 때는 그들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어 적절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말년에도 주위의 수많은 견제와 모함에도 강유를 끝까지 지켜주고 있었다. 강유가 괜히 목숨까지 내던져가며 촉한의 복위를 시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의 한계란 유선의 내부에 이미 오래전부터 의식과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란 뜻이다.

 

작년 민주당의 지방선거도 그 연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말기 열린우리당이 박살나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어차피 망할 것을 알기에 그 순간 사람들은 선택하게 된다. 기왕에 망할 거라면 그 안에서 자기 이익이라도 찾자. 그 놈들이 그 고집을 포기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의 수박들이다. 이낙연을 따라서 수박들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이재명은 대통령에 떨어질 것이고 민주당은 해체될 것이니 그 안에서 살 길을 찾자던 놈들이 그대로 하던 짓을 이어나가니 수박인 것이다. 망할 것을 알면 자기 살 길부터 찾는다. 언제는 또 안 그랬을까? 박근혜 탄핵될 때 새누리당도 그랬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게 있다. 다만 내 일이면 이해보다는 분노가 우선이다. 유선이 아두인 이유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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