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이제 그만 내려오라는데 투수가 마운드에서 버티고 있다. 감독이 판단해서 교체하려는데 오히려 선수가 달려나와 감독에게 항의를 한다. 아마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팀이 있고 선수가 있는 것인데 아무리 스타플레이어라고 감독의 지시를 거부해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에이스니까.


에이스란 한 마디로 책임지는 사람일 것이다. 팀이 연패에 빠졌다. 그렇다면 당연히 에이스가 마운드에 올라가서 그 연패를 끝내줘야 한다. 거꾸로 팀이 연승을 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역시 에이스가 마운드에 올라가서 연승을 이어가야 한다. 하다못해 운이 따르지 않아 결국 지게 되더라도 불펜이라도 쉴 수 있게 이닝이라도 많이 먹어줘야 한다. 최소의 실점으로 에이스의 패배가 아닌 팀의 패배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에이스까지 무너지면 더이상 기댈 곳이 없다.


팀이 지고 있다면 그라운드에 선 동료들의 눈은 자연스럽게 당장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에게로 모이게 된다. 이 사람이 공만 잡을 수 있다면.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이 사람에게 공만 넘기면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고 골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같은 모두의 기대를 현실로 만들어줄 때 그를 에이스를 넘어 리더라 일컫게 된다. 굳이 일일이 말로 지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를 중심으로 생각과 말과 행동들이 모이게 된다. 그를 중심으로 모든 플레이가 이루어진다. 그가 있기에 희망이 생기고 그가 없으므로 모두가 절망하게 된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포르투갈팀의 주장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대해 그리 비판해 왔었다. 너무 욕심이 많다. 지나치게 이기적인 플레이를 한다. 하지만 그는 데뷔초반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기간을 자신이 소속된 팀의 에이스로 군림해 왔었다. 호날도 자신이 돌파구를 열어야 했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의 수비를 뚫고 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끌었어야 했다. 양보하는 에이스는 에이스가 아니다. 내가 아니어도 된다고 여기는 에이스 역시 에이스가 아니다. 누구도 그런 에이스에게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못해도 단 한 사람 내 몫까지 모두 대신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에이스라 부른다. 보통의 경우라면 욕심이 많은 것이지만 에이스라면 그것은 책임감이 강한 것이다. 


다리가 완전히 꺾였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심각한 부상으로 보였었다. 몇 번이고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와 경기를 계속하려 했지만 절뚝거리는 다리로는 장기인 헤딩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더이상 팀에 도움은 커녕 오히려 짐만 될 것이기에 교체되어 나가면서도 그는 울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그라운드에서 팀의 승리를 이끌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고 분노였다.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몫이다. 설사 더이상 뛸 수 없게 되었어도 그는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한다. 감독의 자리마저 꿰차고 극성스러울 정도로 팀을 독려한다. 분명한 것은 호날두가 부상으로 교체되고 프랑스팀은 집중력을 잃은 반면 포르투갈팀은 이전보다 더욱 집중해서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같은 의지가 자연스럽게 동료들을 감화시키고 그의 의지에 자신을 동화시키게 만든다. 더이상 호날두는 그라운드에서 함께 뛸 수 없지만 이미 그는 자신들과 함께였다.


최소한 책임있는 자리에 있어 양보란 미덕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비겁이다. 무책임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해야만 한다. 어떤 욕을 듣더라도. 어떤 비난을 듣더라도. 욕심쟁이라 비아냥을 듣더라도. 그래서 결국 모든 책임을 자신이 다 져야 하는 상황에서도. 동료의 공까지 빼앗아 자신이 본 그 자리로 공을 몰아 힘껏 슛을 날린다. 이기는 것이야 말로 에이스에게 지워진 책임이며 의무다. 뒤가 없다. 오로지 앞만이 있다. 모두가 패배를 두려워할 때도 자신만은 승리를 믿는다. 자신이 모두를 승리하게 만들 것을 믿는다. 에이스의, 리더의 탐욕은 그래서 미덕이고, 리더의 집요함은 모두의 든든한 신뢰이자 기대가 된다.


2012년의 문재인은 분명 그같은 리더의 조건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었다. 무엇보다 대선에서 과연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는가 의심스러운 모습들을 많이 보이고 있었다. 애초에 대통령후보로 선거에 나온 것부터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위에서 그를 떠밀었기에 나왔던 것이었다. 그랬던 만큼 내가 안되면 다른 사람도 못되는 것이라는 각오로 독하게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주어진대로 생긴대로 성실하게 선거운동에 임하는 모습만을 보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길 수만 있다면 발을 진흙탕에 담그고 손을 오물에 더럽히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그런 과감함이나 지독한 모습이 없었다. 인간적으로는 신뢰할 수 있지만 과연 정치인으로서 그를 기대해도 좋은 것인가.


인상이 바뀐 것은 작년 당시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경선에 출마하면서부터였다. 물론 그때도 여전히 그는 올곧았고 올바랐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 오로지 자신이어야만 한다. 당대표가 되기 위해 신념을 꺾고 박정희 묘소에 참배하겠다는 공약까지 내세웠다. 2012년 선거에서 문재인이 직접 박정희의 무덤과 생가를 찾아 화해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당대표가 되고 바로 치러진 재보선에서 참패한 이후 당내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흔들었을 때도 그는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쉽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관철시켜야 할 혁신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혁신안만 제대로 자리잡으면 더민주는 달라질 수 있다. 전처럼 지리멸렬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바로 자신이 해야 한다. 그리고 약속대로 당대표에서 물러난 뒤에도 아무런 당직도 없는 몸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총선의 승리를 위한 지원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홀로 빈 역사에 허탈하게 앉은 모습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그렇기때문에 문재인을 중심으로 벌써 모여든 사람이 한가득이다. 문재인 자신이 진흙탕에 발담그기를 꺼려하기에 누군가는 직접 기꺼이 진흙탕으로 들어가려 한다. 참여정부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참여정부에서는 노무현이 언론과의 싸움까지 모두 도맡아 했어야 했었다. 이번에는 손혜원이 그 역할을 맡는다. 손혜원은 정면에서 야당을 부당하게 공격하는 언론과 맞서 싸우고, 표창원은 야당에 적대적인 종편에 출연하여 야당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아마 이 가운데 일부는 필요하다면 기꺼이 악역도 맡아 줄 것이다. 결국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이 모든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자신들에게 있어 자존이며 명예이며 긍지다. 그만한 신뢰를 심어줄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람을 움직여 자기가 의도한 바를 이룰 수 있다.


안철수는 아니라 여기는 이유다. 유승민도 결국 자격을 잃고 말았다. 지난 총선에서 탈당까지의 과정에서 그는 단 한 번도 당의 승리를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이 승리해서 당도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었어야 한다. 단지 유승민 개인의 승리였다. 그것도 당의 패배를 전제한 승리였다. 새누리당 골수지지자들이 유승민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마찬가지로 안철수는 야권지지자들로부터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패배를 이야기하며 자신이 원래 속했던 정당을 위기로 몰았다.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으려 했었다.


말 그대로 지금 문재인은 제 1야당 더민주의 에이스다. 당대표경선을 하는데 정작 문재인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이들마저 하나같이 문재인의 눈치를 보며 그와의 관계를 앞세우고 있다. 당내 최대계파의 수장으로 당대표는 물론 앞으로 당의 행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다만 이를 자각하는가. 그리고 이를 얼마나 어떻게 활용하는가. 때로 독단적일 정도로 당을 움직이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필요도 있다.


아무튼 새삼 펠레와 마라도나가 메시와 호날두에 대해 했던 대화들을 떠올려보게 되는 계기였을 것이다. 메시에게는 없고 호날두에게는 있는 그것. 바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척 불편하게만 여겨지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당신들이 못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해주지 않으니 안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리더십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내 탓인 이유는 내가 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럴만한 충분한 실력과 자격이 있다. 야당대표일 때는 잘만 하더니. 우스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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