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그저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뿐인데 바로 총부터 꺼내 쏘고 보는 어느 미국 도시의 상황과 비슷하다 봐야 할 것이다. 경찰이 그렇게 무고한 시민을 살해했는데도 정작 재판에서는 무죄가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품안이나 허리 뒷춤에 권총을 숨기고 다니기에 오해할만한 행동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정당방위가 될 수 있다.

 

당사자는 장난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들고 기분나쁘게 웃으며 노려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고 사소한 몸짓에도 과잉반응하게 된다. 자칫 선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상대의 위협에 자칫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처구니없는 오해로 실제 목숨을 잃거나 아예 나라간에 큰 전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역사에서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입장에서 단순히 경고고 위협이라 여겼던 조치들은 정작 한국 경제의 핵심이랄 수 있는 반도체 기업들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었다. 자칫 일본의 의도대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피해가 가면 한국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것은 한국 경제를 노리는 행동이다. 아니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을 포함한 한국이란 나라 전체를 노리는 행동이다. 일본 정부의 의도에 부응한 한국 보수언론과 정치권의 반응이 그같은 우려를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다. 어쩌면 지금 일본의 조치로 인해 한국 경제와 한국이란 나라가 아예 망하게 될 지도 모른다. 어찌해야 할까?

 

이낙연 총리의 말이 옳다. 기왕 칼을 뽑았으면 아예 상대의 목을 베어 숨통을 끊거나, 아니면 칼집에 칼을 넣어 둔 채 여지를 남기고 위협을 해도 해야 한다. 일단 칼을 뽑고 나면 타협의 여지는 사라진다. 죽거나, 아니면 항복하거나, 그도 아니면 먼저 내가 상대를 죽이거나. 그래서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것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그리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베 정부는 처음부터 상황을 이렇게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지금처럼 크게 키울 생각도 없었다. 자신들이 칼을 뽑으면 한국 정부가 알아서 굽히고 들어오겠거니. 한국 정부가 버티더라도 한국 국민들이 압박해서 굽히고 들어오도록 만들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거꾸로 한국 국민들이 단결해서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당황했을 것이다. 그동안도 여러차례 일본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그런 정황이 드러나고 있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지나치게 과잉대응하고 있다. 단지 수출관리를 위한 조치에 불과한데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수출금지라며 소란을 키우고 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전혀 엉뚱하게 잘못알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들이 오해하도록 선동한 탓에 상황이 이렇게 흐르고 만 것이다. 뭔 말이냐면 지금 상황이 일본 정부가 애초 계획한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다. 무엇 때문이겠는가.

 

부모가 자식 잘되라고 회초리를 드는데 그것이 공사장에서 가져온 각목이다. 선생이 어긋난 학생을 바로잡으려 체벌을 하려는데 그 손에 망치가 들려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먼저 칼부터 꺼내들었으면 당장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의 적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칼을 내려놓은 다음에는 다시 친구로 돌아가더라도 칼을 들고 있는 동안에는 적으로 여기고 최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할 수 있으면 보다 과격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상대의 의도를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단순한 원리를 모른다. 아마 좋은 집안에서 어려움없이 자란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저 칼을 들어 보이며 어르면 알아서 겁먹고 항복하겠지? 하지만 칼이기 때문이다. 항복해도 안전하지 못할 지 모른다. 오히려 이대로 손들고 무릎꿇으면 상대가 휘두른 칼에 아무 저항도 못하고 그대로 당하게 될 지도 모른다. 차라리 주먹이나 몽둥이였으면 몇 대 맞고 아프고 말면 그 뿐이라 마음놓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칼이란 위험한 흉기란 것이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하다못해 찍소리라도 내보고 죽어야겠다. 그렇다고 한국을 아예 죽일 정도도 못되면서 괜한 경각심만 일깨우고 말았다. 일본이 자신들을 위협한다. 일본이 자신들의 적으로 돌아섰다. 그래서 평소 일본에 우호적이던 젊은층들이 더 적극적으로 일본과 적대하며 나서고 있다. 도대체 먼저 칼을 꺼내 흔들어 놓고는 국민들끼리는 우호적으로 잘 지내보자는 소리가 어디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심지어 그런 행동을 잘한다 지지까지 하고 있다.

 

사회생활하면서 한 번 쯤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위협이나 협박이 자칫 지나치게 상대의 공포심을 자극해서는 안된다. 두렵게 하는 것을 넘어 아예 적의를 가지도록 지나치게 몰아세워서는 안된다. 그런데 딜레마다. 그렇다고 적당한 수준의 수단을 선택해서는 필요한 만큼 위협을 가하지 못할 지 모른다. 그게 기술이다. 그러니까 위협을 하면서도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어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럴 것이면 아예 전쟁을 해야 한다.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기까지 멈추지 말고 어떤 피해에도 몰아붙일 각오를 해야만 한다. 어느것도 아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본을 치밀하고 집요하고 정교하다 추켜세우는 것인지.

 

오히려 일본의 한계만 보여주었을 것이다. 정작 일본이 앞세운 수단은 한국에 분명 위협적이지만 시간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대신 한국인들의 선제적인 대응으로 뭔가 해보기도 전에 자신들이 먼저 피해를 입고 말았다. 아무리 자민당 일당독재라도 분명 국내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불매운동으로 국내기업의 매출이 줄고 관광자제로 지자체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진짜 일본 정부는 아직 한국 정부를 상대로 실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한국 정부를 모욕한 것 말고는.

 

아무튼 일본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오판이 만들어낸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한국을 아예 죽일 각오조차 못한 어설픔이 오히려 한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일본에 위협으로 돌려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아니 일본이란 나라가 얻을 이익이 무엇인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모두에게 피해다. 하지만 피해를 각오하지 않았다. 한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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