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이란 말 그대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 살아는 있는데 그렇다고 살아있다고 하기에는 숨만 쉬고 있을 뿐 시체나 다름없다. 그래서 관용적으로도 연명이란 단어를 쓸 때는 '겨우' 등과 붙여서 상당히 부정적인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겨우 연명만 하고 있다. 연명이나 할 뿐이다. 죽지 않았으니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연명치료라는 것도 그와 같다. 아직 숨이 붙어 있으니 어찌되었든 그 숨을 계속 쉴 수 있도록 돕는다. 심장이 뛰고 있으니 심장이 계속 뛸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다고 멀쩡히 다시 건강해져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연명이다. 완치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단지 죽음을 미루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환자와 환자의 가족 가운데 단지 환자의 고통만 연장시킬 뿐인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더이상 고통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고통주지 않고 죽어야 할 때 깨끗하게 세상을 떠나겠다.
의사 자신이 연명치료라 말한 자체가 회복이나 호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신장투석을 해도 어차피 살 가능성은 없었고 단지 죽음만 늦출 뿐이었다. 혹시 모른다 정말 죽음만 몇일 늦췄더니 기적이 일어나서 환자가 살아났다. 그럴 가능성은 '기적'이라는 말 그대로 매우 희박하다. 그런데도 연명치료를 중단하지 않았다면 지금 죽지는 않았을 테니 죽음의 원인이 환자 보호자에게 있다. 의사가 맞는가?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한국 보수의 수준은 너무 저열해서 때로 인간같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딸을 잃은 아버지의 이혼여부가 뭐가 그리 중요하던가. 이혼하고 취미생활이 무엇이었는지 뭐가 그렇게 중요하게 따질 사안이던가. 오랜 병에 효자 없다. 입원치로 1년 가까이 되면 보호자부터 지쳐버리고 만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치료와 간호는 병원에 맡기고 보호자는 일상으로 돌아가 여유를 즐기라 권하기도 한다. 더구나 1년 가까이 생사의 경계에 있다 보면 무덤덤해지기도 한다. 호상이란 그런 것이다. 죽음이 새삼 슬프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때 돌아가시는 것을 말한다. 아니아니 설사 아주 불효막심한 자식이어서 위독한 부모를 두고 놀러갔었다고 죽음의 의미가 달라지기는 하는가.
고작 그런 것으로 시비를 걸어 논점을 돌려야 할 정도로 말이 군색하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런데도 그런 것들이 먹힌다. 인간의 지성이라는 것에 회의를 가지게 된다.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개인이 희생되었는가의 여부를 따지는데 정작 죽은 사람의 가족을 두고 시비를 걸고 있다. 그에 더 관심을 보이며 피해자의 가족을 희생양으로 삼아 물어뜯는다. 이것이 개인지 붕어인지 아니면 사람새끼들인 것인지.
배웠다는 놈들이 그러고 있다. 심지어 의사라면서 연명치료를 거부한 것이 죽음의 원인이었다 말하는 사람마저 있다. 사고로 수술까지 하고 그럼에도 의식이 깨어나지 않아서 치료하다 합병증까지 와서 사망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회복의 가능성도 없이 그저 숨만 붙여놓는 연명치료를 거부했다고 그것이 사망원인이 되는가. 한국 의사들은 그렇게 배우는 것인가. 이제부터 연명치료를 거부하면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한다. 살 수 있는 사람을 죽였다.
좋게 생각하려 한다. 그래도 같은 국민이니까. 한 사회에 사는 같은 구성원이니까. 그저 생각이 다를 뿐이니까. 하지만 역시 세월호를 계기로 결국 그런 종자들이구나 포기하게 된다. 무고한 학살들에 대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서마저 그래야만 했었다. 그러니 잘했다. 그 딸마저 잘할 것이다.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너무 가볍다. 그 인간들에게는. 무려 절반에 가까운 무늬만 인간들에게는.
어차피 그런 것들은 주변에 불과하다. 어떻게 사고를 당했고 그로 인해 어떤 과정을 거쳐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치료 도중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이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이라면 의사가 잘못한 것이다. 충분히 살 수 있는데 치료를 잘못해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의사가 그리 말하고 있다. 처음 수술하게 된 사고는 원인이 아니었다. 대단하다. 대단한 의사의 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