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자들이 박원순을 공격해서 얻은 성과라고는 국민의힘에 서울시장 자리를 안겨준 것 말고 아예 없다 할 정도다. 아니 오히려 손해가 크다. 두 거대정당 가운데 그나마 여성주의에 우호적이던 민주당에서 여성주의에 대한 비토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으니. 여성주의자들이 느닷없이 조국을 걸고 넘어지며 미쳐 날뛰는 이유인 것이다.

 

박원순은 이전까지 민주진영에서 남성 가운데 가장 손꼽히는 여성주의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박주민도 제법 한 여성주의 하지만 박원순 정도는 아니었었다. 그런데 그런 박원순이 성추행범이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박원순이 성추행범으로 몰려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으니 젊은 남성들이 기성세대의 여성주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여기겠는가. 민주당의 여성주의는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본받고 따를 가치가 아닌 자기들도 지키지 못하는 입바른 주장일 뿐이다. 이제 남성 가운데 여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도 젊은 세대는 박원순을 들먹이며 조롱하기까지 한다. 

 

그 뿐만 아니다. 박원순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같은 여성이 보기에도 이렇게는 아니다. 성추행 고발 한 번에 한 인간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고 과거의 인연까지 모두 한순간에 단절해 버린다. 자기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그러기를 강요한다.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까지 비난하고 조롱하며, 한 때 동지이고 친구였기에 조문하겠다는 것마저 윽박지르며 공격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그래도 사람이 죽었으면 애도라도 한 마디 할 법 하건만 그럴 자격도 없다는 양 아예 죽은 이를 아예 난도질하기 바빴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정작 국민의힘 원내대표 주호영의 성추행 고발이 있었고, 소속 국회의원의 성폭행 의혹이 불거졌어도 누구 하나 그런 수준으로 비판하는 이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학의같은 파렴치한 범죄자를 출국금지시켰다고 대통령 퇴임만 하면 두고보자며 벼르는 놈들이 태반이다. 이런 상황을 민주당 지지자로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나마 양대 정당 가운데 여성주의에 훨씬 더 우호적이었던 것이 민주당이었고, 당연히 여성주의에 더 온정적이었던 것이 민주당 지지자였다. 여기도 보면 예전 글들 가운데 반페미들이 달려들어 물어뜯을만한 것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지금 민주당에서 앞장서서 여성주의와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야말로 원래 여성주의에 우호적이던 4050들이라는 것이다. 남성이 대다수지만 여성도 적지 않다. 하긴 이번 선거결과에도 여성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었다. 지지자들이 여성주의와 거리를 두라는데 민주당 정치인이라고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그래서 민주당마저 여성주의와 거리를 두면 국민의힘은 여성주의의 손을 잡아줄까?

 

여성주의자들이 안다. 그나마 민주당이나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고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여성주의따위 안중에 없었다. 그래서 민주당이 페미정당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성주의자들은 자신들에 우호적인 민주당을 공격하며 별 관심도 없는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여성주의 정책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 같은 여성후보인 박영선이 아닌 아예 젠더특보까지 폐지한 남성후보 오세훈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대가를 치를 때가 온 것이다. 과연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하긴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여성주의자들에게 여성주의를 지지한다며 남성이 한 마디 해 보라. 바로 돌아오는 대답은 여성주의는 너희들의 동의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확히 힘있는 남성들의 동의와 지지만이 자신들에게 필요하다. 같은 여성인 진혜원과 서지현을 징계하기 위해 남성인 윤석열의 도움을 구하던 당시 모습처럼.

 

위기라 여긴다면 뇌가 구더기라는 인증인 것이다. 이런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을까? 박원순을 제물로 삼음으로써 여성주의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지고, 민주당을 적대함으로써 가장 큰 우군을 잃을 수 있다. 아마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첫째는 같은 여성대통령이던 박근혜를 구해야 하고, 둘째는 더 힘있는 남성에 기대야 진정한 여성주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주의의 여성은 스스로 홀로서는 존재가 아닌 더 강력한 남성에 기대어 그 힘을 빌리는 존재다.

 

아무튼 민주당 안에서도 여성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고 있는 것이 무척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적이다. 당연히 남성과 남성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여성들에게도 적인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이 선택했고 그 대가를 돌려받아야 한다. 이번 선거의 최대 성과다. 밀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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