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연오랑 설화란 것이 나온다. 어부 연오랑이 바위를 타고 일본까지 가서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아내 세오녀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다가 역시 바위를 타고 일본에 가서 왕비가 된다. 그냥 신화인가 싶었더니 90년대 일본까지 고무보트 타고 갔다 온 사람이 있었다. 원래 일본 가려던 게 아니었는데 잠시 한눈 파는 사이 고무보트가 해류를 타고 그만 일본 영해까지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갈라파고스 같은 외딴 군도에 그리 많은 생물들이 사는 것이다. 인력 말고 다른 공력원이 없던 원시시대에도 사람들은 해류를 타고 태평양 외딴 이스터섬까지 진출했었다.

 

아마 80년대 귀순자 가운데도 그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는데 당시 정부발표나 이후 드라마로 재연한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쪽배 하나에 의지해서 해류를 타고 남한으로 목숨걸고 내려온 경우였었다. 사실 목숨까지 걸 필요가 없는 것이 그래봐야 몇 십 킬로미터라는 것이다. 해류의 속도가 생각보다 매우 빠르다. 그래서 위의 경우도 고무보트 띄워 놓고 놀다가 잠시 한 눈 판 사이 해류를 타고 밀항 아닌 밀항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참고로 그냥 돌아온 게 아니라 일본 영해인 것을 알고 지나가는 어선에 신고해서 한국 대사관을 통해 귀국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밀항과 밀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겠다는 너스레까지 떨고 있었다.

 

역시 과거 북한에서 넘어오는 귀순자가 귀순동기로 이야기하던 것 가운데 하나로 한국에서 해류를 타고 넘어간 상품포장들이 있었다고 했었다. 그냥 여러가지 경로로 바다로 휩쓸려 간 것들이었을 텐데 해류가 남에서 북으로 흐르면 북한 해안까지 가 닿고 했었던 것이다. 거꾸로 해류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흐르면 반대 상황도 벌어진다. 그래서 문제, 과연 당시 공무원이 발견되었다는 해역에서 해류는 어디서 어디로 흐르고 있었을까? 부유물을 잡고 있었다는 정황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구명조끼까지 입은 채 부유물까지 옆에 끼고 있었다. 당시 해력의 해류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담당 공무원이기도 하다.

 

굳이 헤엄쳐서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남으로 귀순해 올 때도 굳이 헤엄같은 건 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아무거라도 뜰 만한 것만 있으면 해류에 맡겨 몸만 실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류를 타고 태평양도 대서양도 마음대로 횡단하는데 고박 수 십 킬로미터 정도야. 이래서 사람이 반공교육을 잘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에 바다에 놀러가려면 안전교육 잘 받아야 한다. 아니면 진짜 바닷가에서 헤엄치며 놀다가 북한으로 넘어갈 수 있다. 북한 뿐만 아니라 재수없으면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면 어째서 가족은 그런 주장을 하는가? 첫째는 아마도 과거 월북자의 가족에게 가해지던 연좌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이유일 테고, 둘째는 아무래도 자신월북이라고 하면 정부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해서 적국인 북한으로 넘어간 이상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을 버린 배신자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논란이 생각보다 그렇게 크게 번지지 않을 것이란 이유이기도 하다. 보수층에서 오히려 더 이런 월북자들에 대해 엄격하고 가혹하다. 표류한 것이 되어야 그래도 죽음에 대해 정부에 책임을 묻고 얼마간 보상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남기고 간 빚이 1억이라는데 유족 입장에서 그 돈을 어찌 감당해야 하는 걱정도 있을 수 있다.

 

결론은 북한이 개짓거리 한 건 맞는데 언론이 떠드는 소리란 하나같이 북한이나 크게 다름없는 개짓거리란 것이다. 2세기 전에나 의미있을 미개한 짓거리를 한 것이 맞는데 그렇다고 해류가 뭔지도 모르던 선사시대의 논리를 꺼내 올 것은 없지 않은가. 한겨울도 아니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죄다 바로 저체온증으로 정신 잃고 목숨까지 잃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바다에 빠지면 생존가능성을 계산해서 상당한 시간 동안 수색도 하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되도 않는 헛소리로 소리만 시끄럽다. 언론은 답이 없다. 뇌를 파내고 팔다리를 자르고 장기를 도려내면 기자가 된다. 벌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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