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공성전은 대부분 내부의 배신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높고 단단한 성벽을 부수고 넘는다고 하는 자체가 대포가 발명되기 전에는 너무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굳게 지키기만 하면 10배, 그 이상의 병력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이라는 물건이었다. 당태종이 멍청해서 안시성에서 막히고, 제갈량이 무능에서 진창에서 돌아간 것이 아니란 뜻이다. 유라시아대륙을 거의 석권하다시피 했던 몽골군도 양양성을 넘는데는 무려 40년이란 세월이 걸렸었다. 그래서 손자병법에서도 공성전은 최하책이라며 일단 직접 공격하기보다 포위부터 할 것을 주문하고 있기도 했었다. 결국 공성전에서 최선은 말려죽이는 것이고, 그러면 알아서 안에서 배반하여 문을 여는 이가 나오게 된다.

 

윤석열의 관저를 지키는 성벽이란 곧 아직 국민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라고 하는 법적인 지위와 권위, 그리고 그가 가지는 정치적인 상징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경찰이 들어가서 체포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그림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를 지켜서 명분을 쌓아가며 문제가 없도록 엄정하게 체포를 진행해야만 한다. 그것이 경호처의 총기사용 가능성에 놀라서 체포 직전 포기하고 물러나야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마 만일 거기서 무리하게 힘으로 체포를 시도하려 했다면 그로 인해 보수가 더 결집하면서 공수처와 경찰에도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었을 것이다. MBC와 JTBC를 제외한 다른 언론들은 절대 내란에 비판적이지 않다. 오히려 윤석열의 입장을 대변할 때가 더 많다. 그러면 어떻게 그 정치적인 명분의 성벽을 넘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오히려 처음 체포시도가 실패한 것이 윤석열 입장에서는 독이 되었을 것이었다. 관저를 지키기 위한 경호처의 계획을 모두 까발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윤석열은 아마도 그 한 번의 승리에 크게 고무되었을 테지만 일단 한 번 포위가 이루어지면 성에 갇힌 입장에서 새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반면 포위한 입장에서는 그 모든 가능성들을 차단할 수 있다. 그래서 차라리 바로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보다 밖에서 하나씩 내부의 결속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작업들을 그동안 민주당이 앞장서서 주도적으로 해 왔던 것이었다. 체포를 방해하는 주체들을 특정하고, 그에 대한 처벌가능성을 명시하고, 또한 그러면서도 공수처를 압박하면서 체포에 대한 의지를 보다 강하게 다진다. 이미 윤석열 탄핵이 기정사실인 것을 확인시켜주고 그에 동조하는 이들을 공범으로 처벌할 것을 확실하게 하면서 체포에 저항하는 이들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당사자들의 심리적 불안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자칫 자신의 가족이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족들마저 나서면서 그들은 더 이상 처음같은 일치된 단합력 같은 것은 보여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나 포위전에서 흔히 쓰이는 심리전인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법과 원칙에 따른 사실들이었기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것이다. 아마 체포영장이 다시 발부되었을 때 바로 밀고 들어갔으면 처음처럼 더 격렬한 저항 앞에 꽤나 어려운 상황을 겪어야 했을 테지만 오히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전력을 강화하여 지속적으로 압박한 탓에 심리적으로 더이상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내몰린 것이었다. 이것을 이전에 어디서 썼느냐면 한총련사태 당시 연세대에 모였던 대학생들을 체포할 때도 쓰고 있던 전략이었다. 그때도 한총련 대학생들을 연세대에 몰아넣고 전경들로 포위한 뒤 여러 날 동안 모든 언론과 가족들을 동원해서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더이상 저항할 수 없는 지경까지 내몰고 있었다. 한총련사태 이후 대학가의 운동권이 거의 일소되다시피 한 이유가 바로 그런 영향인 것이다. 확실히 공수처장의 말이 맞다. 이런 작전은 오히려 경찰이 검찰이나 공수처따위보다 훨씬 더 낫다. 해 본 가닥이 있으니 이런 때도 잘 써먹는다.

 

공성전이 오래 이어지면 몸도 고단하고 마음도 피로해지면서 정신적으로 먼저 와해되기 시작한다. 차라리 죽어라 공격할 때는 못 느끼다가 잠시의 간격에 그런 것들이 더 크게 느껴지면서 그런 와중에 누군가 더이상 못견디고 성문부터 열고 마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 대단하다는 조인마저 번성을 버리고 도망칠 생각까지 했었겠는가. 그렇다고 성문을 열고 나가 싸우기에는 이미 포위된 상황부터가 싸워서 실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스스로 포위망을 뚫지 못하면 밖에서 같이 뚫어 주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할 만한 놈이 하필 전광훈 같은 부류다. 민주당이 언론의 압박에도 국민의힘과 타협하지 않는다면 안에서 윤석열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이미 예정된 결과를 향해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흘러가는 것 뿐.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대로 같이 죽을 것인가? 아니면 나라도 살 것인가? 아니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차라리 배신자가 된다면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민주당을 믿고 아무말도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굳이 무리해서 저들에게 빌미를 줄 필요따윈 없다. 어차피 공수처장은 그런 정치적인 부담을 기꺼이 짊어지고 행동에 나설만한 깜냥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넓고 크게 본다. 전장을 크게 쓸 줄 안다. 그리고 그 결과 윤석열은 관저라는 성벽 안에서 스스로 알아서 말라죽어가는 것이다. 윤석열이 하다못해 학소나 조인 정도만 되었어도 어떻게 버텨볼만했을 텐데 역경에 갇힌 공손찬보다도 못한 주제라 결과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아마도 역대 가장 강한 민주당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저쪽 지지자들이 이재명만 아니었으면 하는 것일 테고. 이재명만 아니면 민주당은 다시 이전처럼 사분오열되고 말 것이다. 과연... 아무튼 이제 끝이 보이는 것 같다. 거의 끝났다. 마무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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