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와 착취의 효율화란 같은 의미다. 원래 유럽의 근대란 자체가 유럽의 국가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더 쉽게 더 빨리 더 많이 자국의 국민을 동원하고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고안되고 발전한 것이었다. 그래서 국민이었다. 이전까지 그저 필요한 세금을 거둘 수 있으면 되던 대상에서 군주가 책임져야 할 국가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물론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국가에 대한 책임 또한 강조되었다. 국가를 위해 스스로 전장으로 나가 기꺼이 죽어줄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국민교육이라는 것도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아프리카의 산유국에 놓인 송유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송유관을 관리하기 위한 도로나 건물들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을까? 물론 그 과정에서 현지에서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노동자도 얼마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를 통해 원래 자원이 가진 가치보다 훨씬 터무니없는 싼 값에 일방적으로 자본을 투자한 강대국들이 이익을 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돕는 것은 강대국의 자본에 매수된 정치권력자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권력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에 정당한 상거래였다. 납득이 되는가?

 

내가 한국 좌파들을 지금도 한국 수구들과 비슷한 정도로 혐오하고 증오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자원수탈과 착취에 대해서는 동정적이면서 정작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탈민족을 이유로 철저히 일본의 편에서 이야기한다. 물론 자신들은 그것을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의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합리적 사고의 결과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강간범과 피해자 사이에 중립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살인범과 살해당한 피해자 사이에 중립이란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인가. 명백한 가해와 피해 사이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서 그들의 입장을 일부 대변한다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민족이란 민족을 벗어나고 한국이라는 국가를 벗어나야 하기에 한민족을 배반해야 하고 한국을 배반해야 한다. 안병직이나 이영훈 등 뉴라이트의 브레인들이 원래 골수좌파 출신이었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자칭 좌파지식인이라는 것들이 이영훈을 어찌나 물고 빨아대는지 과연 서울대라는 학벌이 좋기는 좋구나.

 

보다 싼값에 식민지 조선에서 생산한 식량을 일본으로 실어나르기 위해 토지를 조사하고 - 심지어 여기에 대해 이영훈조차 원래 근대적인 토지조사는 대한제국시절에 이미 완료되었다 인정한 바 있었다. 워낙 철저하게 조사가 이루어진 탓에 오히려 일본 본토보다 토지관리가 더 수월했다고 했을 정도이니 이마저 일본의 덕이라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보다 효율적으로 조선인들을 관리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더욱 치밀하고 정교하게 정비한다. 일본의 사법제도가 식민지 조선에 적용된 것은 식민지 조선인들의 근대적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정부로 하여금 더욱 효율적으로 조선의 인민들을 관리하고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그리 되었던 것이었다. 하긴 그러고보면 그렇게 만들어진 식민지 조선의 통치시스템은 이후 이승만과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그대로 한국 국민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구조로써 작용하고 있었다. 과연 존엄한, 주권을 가진 자국의 국민들을 국민의 공복인 경찰과 검찰이 아무렇게나 잡아다가 모욕주고 고문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정작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무고한 자국 국민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이같은 가혹한 경찰통치나 군대에 의한 학살 역시 근대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다. 말했지 않은가. 근대란 국가에 의한 국민에 대한 보다 효율적인 수취와 동원을 위한 수단으로 발달해 왔다고. 그래서 엄격하고 정교한 법체계는 가혹한 경찰통치로, 국가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대상에게는 무자비한 학살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외국인 뿐만 아니라 자국민 가운데서도 비국민을 설정해서 그들을 차별하고 탄압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근대화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근대를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국민을 때려서 길들여야 할 개돼지 쯤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주체로서가 아니 철저히 객체로써 국가가 관리하고 통제하며 수취하고 동원해야 할 대상으로나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지배는 정당했고 따라서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도 잘못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있게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주는 식민지 조선의 경제상황은 어떠했는가. 당장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회사령이 내려지며 많은 민족자본이 문을 닫고 있었다. 3.1운동 당시 상당수 자산가들이 만세운동에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란 것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나니 양반이고 자본가고 노동자고 죄 상관없이 일본의 밑으로 들어가 그들에 의해 차별받고 탄압당하는 현실을 보고 비로소 조선인이란 하나의 정체성으로 뭉치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과연 당시 조선에서 생산된 쌀이나 목재, 혹은 금과 같은 지하자원들을 제 값을 받고 팔았다면 조선의 경제가 그 정도 성장하고 말았었겠는가. 지금도 회자되는 함경도 운산의 금광은 당시 세계의 금시세를 움직일 정도의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금광을 개발해서 당장 조선인 자신들에 돌아온 이익은 과연 얼마였었는가. 그렇게 조선의 경제가 일본 덕분에 발전해서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되자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남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아니었어도 한국은 일본과는 전혀 다른 그저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에 지나지 않았었다.

 

문맹률도 오히려 식민지를 거치면서 높아졌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을 무렵 이미 조선에는 전국에 2만 개가 넘는 서당이 운영되고 있었다. 민족자본에 의해 세워진 학교들 역시 적지 않은 수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가운데서도 다시 대부분 학교와 서당들이 문을 닫고 일본에 의해 세워진 학교들이란 것도 그다지 식민지 조선인들을 가르쳐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해방이 되고 한국인에 의해 세워진 정부에 의해 교육정책이 시행되자 처참한 수준을 보이던 문맹률이 극적으로 개선되었다는 보도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아마 일제강점기에 성장기를 보냈던 어르신 가운데 문맹률이 매우 높다는 정도는 대부분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기껏 일제에 의해 근대화되었다는데 나라는 가난해, 문맹률은 높아, 일본인들이 말하는대로 민도도 낮아, 정치수준까지 형편없던 당시의 한반도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일본이 한반도에 무엇을 그리 많이 해주었다는 것인지.

 

그러니까 내가 미국 만만세를 외치는 것이다. 첫째는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이고 - 그럼에도 일제강점기 동안 부모들이 교육에 등한했던 것 역시 식민지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전과 끝난 뒤의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과 그 사이의 그것과의 차이는 눈에 보일 정도다. 그리고 둘째가 미국의 지원이다. 미국이 일부러라도 한국의 상품을 사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번영은 없었을 것이다. 일본을 거쳐 들어온 자본과 기술마저 미국의 영향 아래 전해진 것들이었다. 그마저도 미국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주의의 가치가 한국을 오랜 군사독재마저 극복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마저 쟁취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숫자를 가지고 거짓말한다. 1배럴에 60달러 하는 원유를 20달러에 팔아도 어차피 아무것도 없었으면 성장률은 높을 것이다. 무려 배럴당 40달러의 가치를 강대국이 약탈하는 과정에 고용이 발생하고 각종 인프라가 놓인다면 분명 사회는 발전하고 있는 것일 터다. 그래서 그것이 근대화인가. 근대화는 맞다. 그래서 그것이 과연 일본에 고마워해야 하는 이유인 것인가. 일제강점기를 긍정해야 하는 이유인 것인가.

 

식민지근대화론이 어렵다면 지금 제 3세계에서 강대국에 의해 벌어지는 착취와 약탈을 보면 된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인프라를 건설하며 악착같이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대부분 그런 나라들에게 자국 국민의 권리란 의미가 없다. 이제는 굳이 번거롭게 비용과 수고도 많이 드는 직접지배보다 그와 같은 자본을 통한 지배와 약탈을 더 선호한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에 종속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일본정부와 일본국민들이 새삼 한국 정부에 분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목줄을 벗어던지고 일본과 대등하게 서려 한다. 단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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