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서 수출의존도가 높다는 말은 한 마디로 외부요인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그저 농사지으면서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자급자족 경제에서야 날씨 좋고 자기만 열심히 일하면 그저 아무일없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상품을 팔아 이문을 남겨야 겨우 먹고 사는 상인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사정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왜구가 바닷길을 틀어막고, 중요한 상품의 산지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혹은 갑작스럽게 조정에서 사치를 금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회를 노려 더 큰 부를 쌓는 상인도 있기는 하다.

 

땅이 척박하다. 그렇지 않아도 사방이 산에 온통 돌투성이라 농사를 지어도 노력한 만큼 거두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본에서 왜구가 들끓었던 것이었다. 그리스인들도 일찌감치 올리브와 포도주를 들고 지중해로 나가 곳곳에 식민도시를 세웠던 것이었다. 밀은 바다 너머 이집트에 있었다. 자신들의 땅에서 나는 것만으로 부족할 때는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겨 가거나, 아니면 스스로 도적이 되고 상인이 되어야 했었다. 한국이 수출주도성장정책을 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자원도, 기술도, 그동안 쌓아 놓은 부도 없이 거의 맨손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야 했었다. 당장 군사력으로 쳐들어가 빼앗아 올 수 있는 대상이 없으니 결국에 상인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입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모두 아끼며 있는대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세상을 떠도는 상인이 되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장사란 자체가 경기를 무척 타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주변의 사정이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요동칠 수 있는 것이 바로 경기란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미세먼지가 크게 이슈가 되더니 길을 오가는 사람이 줄어들어 노점상의 매출이 크게 떨어지기도 한다. 메르스로 인해 사람이 모이는 곳을 꺼리게 된 결과 역시 많은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기도 했었다. 그저 앞바다에 배가 가라앉은 것 뿐인데 멀쩡히 장사하던 식당의 매출이 떨어지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일식집을 하면 잘 될 것 같아 막 문을 열었는데 느닷없이 일본과의 경제전쟁으로 인해 불매운동의 여파가 일식집에까지 미치게 된다. 과연 일본상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상인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지금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더 많은 매출과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작년 미중무역전쟁이 시작되고 우리나라처럼 수출의존도가 높았던 독일경제가 박살이 나고 있었다. 작년 1% 성장도 기록하지 못했었다. 그동안 탄탄한 내수시장을 자랑하던 일본 역시 긴 경기침체와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내수가 위축되며 수출에 많이 기대게 된 결과 역시 1%에도 못미치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었다. 반면 내수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프랑스의 경제는 큰 타격없이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미중무역전쟁의 영향으로부터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이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나라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작년 반도체 경기가 얼마나 비정상이었는가. 반도체가 아니었으면 작년 한국 경제가 어떤 모양이었을지.

 

미중무역전쟁은 필연적으로 국제무역 자체를 위축시킨다. 더구나 일본과 직접 경제전쟁을 치르면서 한국경제에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무역의 위축으로 수출이 감소하며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 이 두 가지 악재가 겹치면 그때는 세상 누가 와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당장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수출을 못하는데? 수출을 하고 싶어도 원자재의 공급이 차단된다는데? 그러면 그 모든 것이 정부의 잘못일까? 결국 그리 주장하고픈 이유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한국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고 여기고 싶어서일 것이다. 아예 대놓고 아베에게 죄송하다 울부짖는 시위대까지 나왔을 정도면 이게 과연 제대로 된 나라인지.

 

한국 안에서 잘해봐야 소용업다. 한국 안에서 아무리 잘 팔고 많이 팔아봐야 결국 한국 전체의 경제를 결정하는 것은 수출인 것이다. 얼마나 많이 팔고 많이 벌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알맹이없는 쭉정이가 되고 만다. 그래서 그런 것 좀 바꿔보겠다고 소득주도성장을 펼치는 것이다. 일본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절반은 되는 인구를 바탕으로 한국도 외부요인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내수기반의 경제를 만들어 보자. 내수를 통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들을 키우고 그들을 통해 다시 신성장동력을 찾는다. 내수가 없는데 벤처가 있을 리 없다. 내수가 탄탄하지 않은데 해외에서 기술로 경쟁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많아질 리 없다. 무엇보다 당장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여도 최소한 버틸 수 있는 근거라도 한국 경제 안에 만들어두자.

 

어쩌면 이번 아베의 경제도발이 그래서 한국 경제에 기회가 되어 줄 것이다. 마음놓고 시장에 돈을 풀 명분이 되어 주었다. 자유한국당이 추경안을 얼마간 깎기는 해도 끝내 거부하지는 못했었다. 무엇보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그리고 기술을 앞세운 벤처기업에 더 많은 재원과 정책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노동자 개인에 대한 재정지원을 계속하는 가운데 기업에도 혁신성장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무튼 재미있는 것이다. 수출만이 살 길이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마저 제약하고 임금도 줄여야만 한다. 기업만을 살려야 한다. 그런데 수출길이 막혔다. 아예 국제무역 자체가 위축되고 있다. 이미 전부터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상품 자체가 팔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수출만을 외치며 내수는 외면한다. 어차피 안 될 것이다. 바람인 것일까? 아니면 믿음인 것일까? 더욱 요즘처럼 대외여건이 안 좋은 때애. 그렇다면 지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단의 대책들이 필요한가? 단지 과거의 성공에 갇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한다. 답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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