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미국 드라마 등에서 배심원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룬 탓에 나 역시 배심원제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못했었다.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다고 얼마나 전문적인 사법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그보다는 재판만을 전문으로 담당해 온 판사들이 오롯이 법과 양심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OJ심슨 사건은 그런 배심원제의 모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첫째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는 부분에서부터 판사라고 해봐야 남들 먹고 사느라 열심히 일할 때 출세해 보겠다고 법공부한 게 전부인 놈들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돈과 지위와 권력과 명성을 얻기 위해서 다른 것 다 희생해가며 법공부만 했던 아주 독한 놈들이다. 그들이 공부한 동기란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 오르거나 혹은 이미 누리는 것들을 계속해서 누리고 싶은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런 놈들이 법공부를 통해 쌓았을 훈련이라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설사 소수 양심적인 판사가 있다 해도, 아주 소수의 비양심적인 판사에게 걸리면 되도 않는 판결의 희생자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판사 한 두 놈에게 판결을 맡긴다?

 

어째서 배심원제인가? 어차피 판사도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욕망도 있고, 선입견과 편견도 가지고 있고, 의도를 가지고 왜곡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다양한 성향과 지향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서로 논쟁하게 함으로써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쪽이 낫지 않겠는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논쟁을 통해 내린 결론이라면 판사 혼자서 내린 결론보다 오류는 덜할 것이다. 무엇보다 판단의 근거가 명확해진다. 판사 혼자서 머릿속으로 판단해서 내린 결론보다 배심원들이 서로 토의를 통해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최소한 배심원이라는 다수에게 공개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가? 어째서 그런 결론을 내렸는가?

 

법원이 지금 아예 풀발기중이다. 경찰 수사 결과 피해자라 자처하는 쪽에서 제공한 핸드폰 등에서 이렇다 할 성추행을 특정할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었다. 즉 법원에도 피해자라 자처하는 여성의 주장 말고 증거는 제시된 바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재판이 아닌데 사실관계를 명확히 단정하는 것부터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럴 여지가 충분하다는 정도의 표현으로도 충분히 개연성을 설명할 수 있는데 피해자라 자처하는 여성의 주장만을 받아들여 사실로 단정지어 기사거리로 제공한다. 무슨 의도이겠는가.

 

코로나19 확산시키라고 광화문집회를 허락하고, 전광훈을 풀어주고, 신천지의 방역방해에 면죄부를 주고, 윤석열을 풀어주고, 피고에 유리한 증언은 모두 위증으로 단정짓고, 심지어 재판에서 나온 증언마저 왜곡해 판단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김명수의 사법독립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보여준다. 법원과 검찰은 한 몸이다. 판사들의 이해를 위해 판결을 이용하겠다. 그런데도 여전히 판사에게만 재판을 맡겨야 하는가.

 

배심원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배심원제에 대해 딱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굳이 그런 게 우리나라에 필요하긴 한가. 그런데 필요하다. 판사놈들 재판하는 꼬라지 보니까 더욱 필요하다. 판사에게 재판을 맡길 수 없다. 양형은 몰라도 유무죄의 판단까지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위험요소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와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사법부가 적폐다. 좋은 판사는 법복을 벗은 판사들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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