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시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주장만 할 것이라면 굳이 모여서 시끄럽게 구호를 외칠 필요가 없다. 직접 문서로 전달해도 되고, 보다 공개적으로 하려면 대자보라는 수단도 있다. 언론을 통해 보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데 어째서 굳이 그렇게 번거롭게 모여서 다른 사람들 불편하게 시위라는 것을 하는가. 그러니까 불편하지 않으려면 자기들 주장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바로 자신들이 불편하고 불쾌한 그 자체가 시위라는 것을 하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시뻘겋게 물든 생리대를 보는 것이 불편하고 불쾌하다. 그러면 어디에 그것을 하소연해야겠는가. 그래서 연대라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저들은 자신과 같다. 저들은 자신들과 같은 처지다. 정부에 대해서, 그리고 기업에 대해서 국민으로서, 소비자로서 같은 입장에 있다. 그러므로 저들의 주장이 정당하다면 그 책임은 오로지 정부와 기업에 돌아가야 한다. 지금과 같은 불편하고 불쾌한 상황을 끝내려면 그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워낙에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자격이나 자세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까. 단지 자기가 불편한 것만 생각하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굳이 고려하지 않느다. 정부와 기업에 무언가를 요구할 때도 공손하게 얌전하게 질서있게. 자기가 불편하거나 불쾌하지 않게. 그렇다고 과연 조용히 얌전하게 아무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시위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가.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그래도 뭐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하려면 욕이라도 먹어야 한다. 그것이 시위가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인을 대상화한다. 자기 아닌 타인을 객관화한다. 완전함을 요구한다. 한국사회의 이기주의는 그래서 더 고약하다. 완전무결한 시위를 위해서. 완전무결한 사회를 위해서. 우연히 생리대시위에 대한 반응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인터넷에서만 시끄러운 이른바 야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내가 편할 때 권리고 내가 편할 때만 자유다. 나를 편하게 할 의무이고 책임이다. 대중은 권력이다. 꼭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