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다. 정사 '삼국지'에서 저자인 진수가 제갈량더러 임기응변의 지략이 장점이 아니라 한 것은 제갈량이 보인 여러 장점들에 대한 상대적 평가인 것이다. 제갈량이 이만한 뛰어난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매년 군사를 일으키고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결국 그의 군사적 재능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부족한 군사적 재능으로 장합과 왕쌍을 죽이고 노성에서 사마의까지 패퇴시키고 있었다.


제갈량이 무려 8년 동안 5차례에 걸쳐 위를 정벌하기 위한 군사를 일으키고서도 정작 한참 미치지 못하는 소국인 촉의 내정이 안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전사자가 적었던 때문이었다. 군에 징집된 병사들도 결국 돌아가면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력이 되고, 한 가족의 가장이거나 누군가의 아들이 된다. 전사자가 나오는 만큼 생산력은 떨어지고 사회는 불안해지고 동요하게 된다. 당이 여러차례 원정에 성공하고 주위의 이민족들을 힘으로 누르며 청 이전 가장 거대한 영토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안에서부터 무너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전쟁에는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에 동원된 병사들의 손실이 곧 생산의 상실로 이어지고 사회의 동요로 이어지게 되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제갈량은 최대한 병사들을 보존하여 퇴각함으로써 바로 이같은 생산의 손실과 동요를 최소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 군 전체를 통솔하는 최고지휘관이라면 정치에 대해서도 결코 무심해서는 안된다.


제갈량과 흔히 비견되는 남조 소양의 장군 진경지만 하더라도 몇 번이나 북위를 상대로 모험적인 원정을 시도하며 많은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그만큼 전멸당할 뻔한 위기마저 몇 차례나 겪어야 했었다. 그나마 북위의 대응이 시원치 않았으니 다행이지 제갈량이 상대해야 했던 조진이나 사마의처럼 노련하게 대처했다면 진경지의 승리는 거기서 끝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진경지가 이끌던 원정군은 소양이 보유한 군대의 일부에 불과했지만 크기도 작고 인구도 적었던 촉한에 있어 제갈량이 이끌고 나온 군대는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진경지의 군대가 전멸했어도 치명적이기는 해도 결정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제갈량의 군대가 전멸했다면 촉한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저 내가 잘 싸워서 승리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은 일선 지휘관, 최대로 쳐봐야 사단장까지만 허락될 수 있는 것이다. 군사령부 이상이 되면 전장 그 너머까지도 볼 수 있어야 한다. 헤아려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제갈량이 진경지가 그랬던 것처럼, 바로 전세대에 조조가 보여준 그것처럼 빠르고 적확한 기동으로 상대의 핵심을 타격하는 놀라운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촉한이 가진 한계 - 즉 군의 구성에 있었다. 진경지가 북위를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둔 비결은 바로 흰 갑옷으로 무장한 3천의 기병에 있었다. 군의 기동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에게 유리한 전장을 선택하는 데 있어 한 발 앞서있다는 것을 뜻한다. 상대보다 더 빨리 자신이 원하는 전장에 도착하여 유리한 조건에서 싸움을 강요할 수 있다. 제갈량의 유지를 이어받은 강유가 매번 북벌을 시도할 때마다 고전하고 끝내 단곡에서 참패하고 만 이유였다. 상대적으로 다수의 기병을 보유하여 기동력에서 우위였던 조위군에 비해 말을 기르기도, 기른 말을 전장까지 수송하기도 어려웠던 촉한군은 보병위주로 속도에서 한참 열세에 있었다. 단곡에서도 그래서 퇴각하는 도중 뒤를 잡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던 것인데, 보병이 기병을 상대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도망치는 것을 뒤쫓는 것도, 뒤쫓아오는 것을 뿌리치고 도망치는 것도 하나같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제갈량이 조진과 사마의를 상대로 단지 싸움을 걸어오도록 유도할 뿐 먼저 나서서 싸움을 걸지는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몇 차례 조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서도 그 승리를 적극적으로 확대하지 못한 이유 또한 같았다. 말을 기르기도, 기른 말을 험한 잔도를 지나 중원으로 데려오기도 어려웠기에 촉군의 구성은 거의 보병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탁월한 군사운용으로 기병까지 다수 보유한 조위군을 상대로 몇 차례 승리를 거두더라도 퇴각하는 조위군을 쫓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먼저 싸움을 걸려 해도 보병의 기동력으로는 자칫 기동하던 도중 조위군에 포착당해 곤란을 겪을 수 있었다. 그 점을 이용하여 한 차례 기만기동으로 조위군을 유인하려 한 적도 있었지만 그마저 곽회가 간파하면서 실패한 바 있었다. 그저 묵묵히 조위군이 인내심의 한계에 이르러 싸움을 걸어오면 그것을 부수고 기세를 올려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제갈량이 처한 상황이었다. 그것을 장완도 비의도 알았기에 다른 대안을 찾았고 그마저 불가능하다 여겼을 때는 강유의 북벌을 말리는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건 너무 불리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에서 사마의는 단 한 번도 제갈량을 상대로 정면으로 승부를 걸려 하지 않았었다. 딱 한 번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사마의는 처참히 패하고 있었다. 노획한 갑옷만 무려 5천 벌에, 수급이 3천이었다. 최소 만 단위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이다. 사마의가 승리한 경우도 있지만 그마저 장합이 전사한 그 뒤에 이어진 추격전에서였다. 널리 알려진대로 이엄의 태업으로 군량보급이 끊기며 급히 퇴각하는 제갈량의 뒤를 쫓은 것인데, 기록대로 1만이 전사했다면 당시 촉군의 규모가 8만도 안되었으니 사실상 괴멸된 것이나 다름없다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작 지휘관인 제갈량은 건재하고 이엄만 정해진대로 처벌받고 있었다. 과연 사마의가 승리했는가 여부도 의심스럽고 설사 승리했더라도 기록된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또한 제갈량과 정면으로 싸운 승리가 아니므로 역시 제갈량의 군재에 대한 평가근거로는 적절치 않다 할 수 있다. 오히려 퇴각도중 추격당해 피해를 입었음에도 군을 유지하며 퇴각하는데 성공했다면 전술적으로도 제갈량의 승리라 보아야 할 것이다. 최소한 제갈량이 살아있는 동안 사마의가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지 못한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제갈량이 죽고 나서야 겨우 공세에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도 과연 제갈량의 군재가 사마의에 미치지 못하거나, 혹은 수준이하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참고로 그러면 어떻게 제갈량은 보병위주의, 그것도 숫적으로 열세인 촉군을 이끌고 위군을 상대로 공세적인 전투를 펼칠 수 있었는가. 원래 제갈량이 창안했다는 팔진도는 제갈량 혼자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팔진도가 만들어진 이유는 바로 북방의 이민족을 상대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기존의 중국의 전술로는 기병위주의 북방 이민족들과 맞서기에 그다지 효율이 좋지 못했다. 이민족들처럼 기병을 늘리거나, 아니면 기존의 병구성으로도 전술을 달리해야만 했다. 그래서 기병이 가지는 압도적인 기동성과 유연성을 상대하기 위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진의 구성과 운용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 결과가 팔진도였고, 그리고 그 팔진도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제갈량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먼저 이동해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어렵지만 상대가 공격하기를 기다려 그를 격퇴하는 것은 가능하다. 팔진도는 이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전술에 큰 영향을 주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임기응변이야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어렵더라도 정공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만 하다.


가정에서 마속이 패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크게 패한 적이 없었고, 패하더라도 병사를 많이 잃지 않았으며, 직접 지휘하며 나선 전투에서는 한 번도 패하지 않았었다. 사마의마저 압도적인 우세에도 공세를 펼치기보다 수세로 일관했고, 단지 현실의 한계로 인해 더이상 나가지 못하고 진중에서 명이 다한 것 뿐이다. 제갈량의 기만에 사마의가 넘어왔으면 되는 것을 하필 곽회가 알아챈 것도 불운이라면 불운이다. 임기응변에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럴만한 조건이 되지 못했다. 그랬음에도 압도적인 우위에도 조위는 오히려 북벌 내내 제갈량에 끌려다녀야만 했다. 제갈량이 전쟁을 주도했다.


원래 당시나 그 전이나 그 뒤나 중국에서 지휘관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얼마나 많이 크게 이겼는가의 여부가 아니다. 조운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도 바로 기산에서 패한 뒤 퇴각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진서정연하고 일사불란한 지휘 때문이었다. 항상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싸워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승리는 그 다음에 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성패는 하늘에 달렸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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