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말이겠지만 단지 개인이 싸움을 잘한다고 난세에 군웅의 하나로 대우받기란 어렵다. 하북을 장악한 원소마저 이각에게 패해 도망쳐 온 여포를 제거하기 위해 고심을 해야 했었고, 서주학살소식을 듣고 조조를 배반하기로 결심한 장막과 진궁 역시 다시 원소에게서도 도망친 여포를 맞아들이고 있었다. 고작 조표가 내응했을 뿐임에도 서주자사를 물려받은 유비도 하비를 차지한 여포에 맞서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어째서?


주군 여포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기꺼이 죽음을 맞았던 고순에게 어쩌면 그 단서가 있지 않을까. 고순은 여포에게 한결같은 충성심을 보였지만 그러나 정작 여포는 그런 고순을 그다지 탐탁치않게 여기고 있었다. 특히 고순이 이끌던 부하들이 성을 공격하면 반드시 함락한다 해서 함진영이라 불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포는 어떻게 정원을 배반하고 동탁의 심복이 될 수 있었으며 나중에 동탁마저 배반하게 되었을까.


원래 황제를 멋대로 바꾸려는 동탁에 저항하다 죽임을 당한 정원은 도성을 수비하는 중앙군인 북군의 수장인 집금오의 관직에 있었다. 대장군 하진이 살해당하고 사실상 낙양의 중앙군을 지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인물이었다. 십상시를 주살하고 황제를 보호하며 낙양으로 입성한 군벌 동탁에게 정면으로 대항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정원이 지휘하던 낙양의 북군을 포함한 중앙군은 이후 정원이 여포에게 살해당하며 모두 동탁에게 귀속된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단지 수장인 정원이 살해당했다고 중앙군이 온전히 동탁에 항복했겠는가 하는 것이다. 정원 살해 이후 동탁휘하에서 여포의 위치나 호로관에서 17로 제후군과 싸운 사실들을 살펴 보면 결국 정원 사후 중앙군의 지휘권은 모두 정원의 휘하이던 여포에게 귀속되었다 보는 것이 옳다. 아마도 정원의 심복이면서 북군의 상층부에 있었을 여포였던 만큼 정원이 죽임을 당하고 난 뒤 북군의 지휘권은 당연히 여포에게 돌아갔을 테고, 동탁의 지원까지 받아 북군을 장악한 여포가 그의 심복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낙양의 중앙군은 동탁에게 모두 귀속되게 되었다. 지난번에도 썼던 17로 제후군을 상대로 일개 지방군벌에 불과한 동탁이 힘으로 맞설 수 있었던 이유였다.


문제는 결국 호로관에서 17로 제후군의 힘에 밀려 낙양까지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하면서부터였다. 병주자사를 역임했지만 원래 동탁의 근거지는 양주, 달리 서량이었다. 장안은 당연히 서량과 가깝다. 그런데 여포가 이끄는 중앙군의 근거지는 자신들이 버리고 온 낙양에 있었다. 서량과 가까워지며 원래 동탁을 따르던 그의 가신들은 더욱 힘을 얻었고, 근거지를 불태우고 도망쳐 온 여포와 중앙군의 위세는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호로관에서 밀려난 것까지 더해지며 동탁의 여포와 중앙군에 대한 신임 역시 전과 같지 않았다. 이전에 비해 여포가 이끄는 중앙군의 가치가 그렇게 절박하지 않았다. 만일 누군가 그 사이에 불씨 하나만 던져주면 제법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은가. 아무리 근거지가 가까운 서량군의 위세가 대단해도 어디까지나 도성을 수비하는 것은 중앙군인 북군의 역할이었다. 여포가 그들보다 동탁과 한 발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동탁을 살해하고 난 뒤 이각의 군사들과 싸우다 장안에서 쫓겨났을 때 여포 혼자서만 도망쳤을까 하는 것이다.


잠시 원소에게 의탁했을 때도 여포에게는 자신만의 사병이 함께하고 있었다. 친구인 장양에게 의탁했을 때도, 이후 장막의 요청을 받고 연주에서 조조와 싸웠을 때도, 그리고 마침내 하비에서 조표의 도움으로 서주를 차지하고 유비를 내쫓았을 때도 그의 주위에는 장료와 고순, 위속, 송헌 등등 심복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다. 죽음까지 함께했을 정도로 고지식하게 여포에게 충성을 바친 고순에 비해 여포는 고순을 그다지 신뢰하지도 신임하지도 않고 있었다. 오히려 다른 부하들과 비교해 홀대하며 그가 이끌던 병력들마저 인척인 위속의 휘하에 들어가도록 명령하고 있었다. 당시 고순이 이끌던 병력이 대략 700명 정도였다는데 그 출신이 어느 정도 짐작가지 않는가. 여포를 자신의 주군으로 여기지만 여포 자신은 그들을 자신의 부하로 인정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장료는 원래 동향사람, 위속은 인척이었다. 진궁도 그래서 여포는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었다. 그러면서도 여포를 주군으로 여기며 평생을 따르고 죽음으로써 신의를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 고순의 정체야 말로 여포가 난세에 군웅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이유를 알게 한다. 어쩌면 후한 마지막 중앙군 지휘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비에서 여포가 패망하며 후한의 중앙군은 영영 사라지게 된다. 고순의 충정이란 원래 죽을 곳을 지키지 못한 데 따른 보상심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고순이 원래 죽어야 했던 곳은 하비가 아니었을 테니.


실제 여포에게 적토마와 방천화극이란 원래 정원이 이끌던 후한의 중앙군인 북군이었을 게다. 체계적으로 훈련되고 조직된 중앙군의 존재는 막 난잡하게 일어나 징집되어 동원되었던 군벌들의 사병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그것이 여포가 가진 힘의 정체였다. 혼자힘으로 원소마저 두렵게 만들고 조조를 위기로 몰았으며 유비를 아래로 볼 수 있었다. 장수로서의 강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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