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 지금 추세만 유지해도 보건, 서비스업의 고용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연한 것이 나이를 먹으면 가장 먼저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근력은 물론 소화력이나 대사능력, 시각과 청각 같은 인지능력, 뿐만 아니라 몸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전과 다른 기능의 저하와 약화가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예전에는 가족이 있어 몸의 기능을 잃은 노인들을 돌봤지만 사회구조가 달라지면서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건강보험 옆에 꼽사리끼듯 노인요양보험이라는 것이 추가되어 징수되고 있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까?

 

지금도 길을 가다 보면 상가건물 한가운데 '요양병원'이라고 쓰인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방문요양시설은 그보다 더 흔하다. 혼자 힘으로는 정상적으로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설들이다. 그리고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사업체들이다. 당연하게 그곳에는 자격증을 가진 요양보호사와 간호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앞으로 고령화가 지속되면 노인인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몸을 가누지 못하는 고령자의 인구도 더 늘어나게 될 텐데, 그러면 이와 같은 시설들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당장 그 수와 규모가 더 커지게 되지 않을까.

 

당연히 사설업체 뿐만 아니라 국가단위에서도 이들 고령자들에 대한 배려와 대우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데도,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데도, 따라서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실버산업이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란 것이다. 요양보험 말고도 상당한 재정이 투입되겠지만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에 회피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보건서비스 일자리는 나쁜 일자리이고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서 만드는 일자리 역시 나쁜 일자리이므로 정부는 그냥 손놓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출산과 육아 역시 마찬가지다. 임신한 여성들이 자유롭게 출산 및 육아휴직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그 기간동안 자유롭게 임시직 노동자를 고용해서 쓸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계약직 노동자란 이런 경우를 위해 만든 제도이지만 이제는 아예 정규직보다 싸게 아무렇게나 부리다가 해고할 수 있는 편리한 노동자로 여기고 쓰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계약직 노동자에 대한 다양한 규제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출산 및 육아휴직을 위한 임시직 노동자의 고용에 대한 지원과 출산과 육아를 직접 보조하는 인력들을 감안한다면 역시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한 고용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 모두는 아마 보건 서비스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면 이마저도 정부의 재정으로 고용하는 것이니 그냥 손놓고 사기업의 선의에만 맡겨야 한다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출산 및 육아휴직의 경우 대체인력을 임시로 고용하는 것에 대한 지원은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걱정없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를 수 있다.

 

고용통계에서 보건의료서비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추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고령자의 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고, 출산률을 높이기 위해 임신과 육아에 대한 지원 역시 강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각종 복지정책들이 정부에 의해 설계되고 직접 집행되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재정을 충분히 투입하지 않은 탓에 기존 인력들의 부담만 늘어날 뿐 충분히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일 정도다. 그런데도 제조업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고 보건의료서비스 일자리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한 일자리니 의미가 없다. 어떻게든 정부가 이루어낸 성과들을 깎아내리고 싶은 간절함일 것이다. 언론사를 막론하고 이 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석해주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복지정책의 강화를 주장하는 진보언론조차 여기서는 입을 다무는 경우가 더 많다.

 

갈수록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아니 더 늘어나야만 한다. 그만큼 대우도 좋아져야 하고 그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출도 확대되어야 한다. 사회가 이미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공격적으로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로써 그런 것들을 계획하고 집행할 책임이 있다. 오히려 언론이 그를 반대한다. 여론이 그를 거부한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대부분 자기는 사는 데 걱정 없는 경우가 많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앞으로 늙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세금으로 그런 데 허투루 쓰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언론이 바로 그렇게 선동한다.

 

물론 그냥 돈먹는 하마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재정을 투입한다고 돈이 낭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라도 고용이 늘면 그만큼 소비도 늘어난다. 무엇보다 고령자와 혹은 임산부와 아이들을 위한 산업 역시 지금보다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보다 더 여유롭게 지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이란 단순히 최저임금만을 올리는 것이 아닌 재정투입을 통해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것까지 포함한다. 복지란 소비가 아닌 또다른 생산일 수 있다. 더구나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그것은 필수불가결의 선택이다. 언론만 저항한다. 그게 문제다. 언론만 뒤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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