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여성주의자들이 습관처럼 하는 말 가운데 그런 게 있었을 것이다. 직업이나 직책 앞에 여성을 붙이지 마라. 여류작가, 여의사, 여배우, 여선생, 여직원, 여의원 등등등... 그러면서 또 하는 말이 앞에 여자를 붙이지 않는 만큼 하는 일에도 차별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성이 하는 일을 남성도 하고, 남성이 하는 일을 여성도 한다. 그러면 과연 비서의 일이란 무엇일까?

비서란 말 그대로 보좌하는 일일 것이다. 하는 일도 많고 책임도 무거운 사람들이 보다 자기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소한 일들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이다. 주말이든 새벽이든 자기가 보좌하는 이가 중요한 행사에 참석하거나 하면 동반해야 할 때도 있고, 잠시 분주한 일과 가운데 잠시 짬을 내서 눈을 붙이거나 하면 때맞춰 깨워주기도 해야 한다. 나이가 있으니 건강관리를 위해 혈압을 재려 하면 역시 혼자서 재는 것보다 남이 재 주는 편이 훨씬 빠르고 편하다. 체력관리를 위해 운동을 마쳤으면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 주는 정도도 업무에 포함될 수 있다. 그래서 비서가 여성이니까 이런 일도 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사실 박원순 시장도 잘한 것은 없다. 비서가 여성이라도 화를 낼 때는 화를 내야 하고, 짜증날 때는 짜증도 내야 한다. 그랬어야 비서들이 여성인 비서를 앞세워 방패막이로 삼지 않는다. 여성 비서를 앞세우면 화내고 짜증낼 것도 그만큼 더 참더라. 자는 것 깨우면 불편한 표정을 짓거나 할 때도 있는데 여성 비서가 깨우니까 그런 게 없더라. 왜 사람을 차별하는가? 여성 비서에게도 야단도 치고 질책도 하고 불편한 기색도 내보였으면... 아, 그래도 여전히 욕먹었을까? 여성인 비서를 함부로 대한다고?

어차피 누군가 갈아입을 속옷을 가져다 줘야 한다면 여성 비서가 아니면 남성 비서가 그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란 뜻이다. 그래서 굳이 남성 비서가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여성이라서 그 일을 시킨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비서가 하는 일이니 남녀 구분 없으 그냥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된 것인가. 더구나 속옷심부름을 시키는데 어떤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거나 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었는가. 그냥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라 시킨 것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남자 비서들은 아무래도 박원순 시장이란 사람을 마주 대하기가 몹시 불편하다.

아무튼 웃기는 것이다. 여성이니까 시켜서는 안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 해서는 안되는 말이나 행동들이 너무 많다. 대부분 남성이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들이다. 그런데 여성이라서 문제라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한 마디로 여성은 특별하다는 것이다. 특별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성은 다르다. 그러면 비서 앞에도 여성을 붙여서 여비서라 불러야겠지. 당연히 여비서라 불리는 만큼 하는 일도 달라야 한다. 그것을 바라는 것인가. 남비서 할 일 따로 있고 여비서 할 일 따로 있다. 시킬 수 있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들도 서로 전혀 다르다.

여성을 거짓말을 않는다. 여성을 사실을 왜곡하지도 편취하지도 않는다. 여성은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여성이 성추행으로 고소한 순간 이미 가해자로 유죄가 확정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성주의가 바라보는 여성의 정체란 것이다. 세월이 너무 지나 버린 것일까. 더치페이를 문제삼는 여성주의를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여성은 전혀 별개의 존재로 전혀 다른 일을 시킬 목적으로만 채용하고 대우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래서 나 역시 인정한다. 인간이 아닌, 보편의 개인이 아닌 단지 여성이라면 굳이 일반적인 일을 위해 채용할 필요가 없다. 여성에게 시킬 일에 대해서만 여성을 채용하면 된다.

여성주의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다수 여성의 입장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많음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런 여성들과는 신분부터 다르신 분들이란 것이다. 여성주의를 팔아먹는 여성을 수단화하는 특별한 여성님들이다. 그게 바로 여성주의의 현주소다. 없던 여성혐오까지 생기려 한다. 대단한 여성주의자들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