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약속하고서 시간에 늦은 경우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약속은 지켜져야겠지만 그러나 자기만의 사정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시간에 늦었다. 그래서 약속시간에 늦은 것은 법적이거나 도덕적인 문제 가운데 어디에 속하게 될 것인가? 고소고발로 처벌받아야 할까? 아니면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인가?

 

세상에는 법이나 도덕 같은 보편의 규준을 적용해 판단하기에는 애매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평소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면서 라면은 잘만 쳐먹는다. 라면봉지가 바로 플라스틱이다. 동물복지를 주장하면서 값싼 고기만 인터넷에서 골라 사는 중이다. 참치가 멸종위기라는데 어째서 참치김밥은 그리 잘 먹는 것인가. 분명 학벌주의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일 테지만 기왕에 대학에 가려면 내 자식은 서울대처럼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옳다. 좋은 대학 나오지 않아도 나름대로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으면 좋지만 굳이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려는 것을 말리지 않는다. 그래서 뭐가 문제란 것인가?

 

직장에서 부하여직원에게 딸에게 선물할 옷을 고르는데 도와달라 부탁을 한다. 일관계가 아니다. 당연히 부하여직원 입장에서 자신의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부탁인 것이다. 하지만 평소 신뢰가 있었고 친분도 있었기에 도와줄 것이라 믿고 부탁했고 기꺼이 그 부탁에 응하기도 했다. 성폭력 관련해서 당사자가 성폭력인가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도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서로간에 양해 아래 친근감의 표현으로 신체접촉이 있었거나 표현이 조금 더 과감해졌거나 하는 정도라면 법적인 처벌대상까지는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주위에서 보기에 그리 보기에 좋지 않았다면 그런 자체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할 수 있다. 보기에 안 좋았다니 내 행동이 조금 부적절하기는 했네.

 

금지가 아니다. 주의고 권고다. 그래주었으면 좋겠다. 따라도 그만 안 따라도 그만. 그래서 양해할 수 있으면 그만 양해 못하겠어도 그만. 그럴 필요가 있으면 사과하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다. 추석기간 동안 고향에 갔다 왔다고 뭐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굳이 여행을 다녀왔다고 비난할 이유는 더욱 없는 것이다. 시절이 이런데 여행은 자제했으면 좋았겠지만 자기가 가고 싶어 간 것이니 뭐라 말하기는 그렇다. 딱히 내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상대가 받아들이기에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면 그 부분은 인정해야겠다.

 

그래서 가십이란 것이다. 법적인 문제도 아니고, 도덕적인 문제도 역시 아니고, 하지만 제법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만한 문제적 행동이기는 하고, 그렇다고 딱히 책임을 묻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미약하다. 그러니까 잠시 구설에 오르고 망신 좀 당하고 그것으로 끝이다. 너무 상습적이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한 번 겨우 그런 것으로 과연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하는 말이 있다. 보수진영은 그런 부분에 대해 딱히 도덕적인 선명함이나 순결함을 주장한 적이 없다. 법적으로도 결백을 주장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진영은 그래도 된다. 하지만 도덕과 정의를 이야기해 왔기에 민주진영은 아주 작은 구설조차 허락되어서 안되는 것이다. 박덕흠 3천억보다 더 중대한 비위라는 것이다. 조수진 11억보다도 더 큰 부정이란 것이다. 윤석열 가족의 비리보다도 더 큰 범죄인 것이다. KBS 기준에서는 그렇다. 한동훈과 관련해서 오보가 아닌 표현상의 실수조차 뉴스에서 바로 사과해야 하지만 김경록씨의 인터뷰를 왜곡한 것은 김경록씨가 문제다. 그러니까 부적절하다는 것이 어떤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어긋난 행동을 뜻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감정적으로 보기에 좋지 않고 불편하다는 정서적인 문제인 것인가.

 

어찌되었든 국민이 불편하다면 잘못된 것이다. 국민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면 잘못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인의 자세다. 그러나 언론의 자세는 아니다. 그렇다면 왜 잘못이고,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법을 어겼는가? 사회 보편의 도덕적 규범을 어긴 것인가? 그도 아니면 그냥 정서적인 문제인가? 그냥 내가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내가 언론이 권력이라 말하는 것이다. 내가 기분이 나쁘니 범죄다. 비리다. 부정이다. 악이다. 마오쩌둥이 그랬다.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손가락 하나로 중국의 참새를 씨를 말려 버렸다.

 

법으로 금지한 것도 아니고. 규범으로 강제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다수 국민들이 정부의 주의와 권고에도 해외도 나가고 여행도 다니고 했었다. 금지는 금지고 권고는 권고다. 명령이 아니다. 언론이 문제삼으면 문제가 된다. 보수진영이 문제삼으면 문제가 되어야 한다. KBS가 기계적 중립이라? 세상 기계 다 망가졌다. 버러지새끼들인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