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PC에 목숨거는 놈들이 습관처럼 목놓아 부르짖는 말들이 있다. 오만하다. 가르치려 든다. 강요하려 든다. 그런데 처음 이 말들을 들었을 때 나는 어떤 기시감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어디서였을까? 얼마전 떠올랐다. 아, 그거였구나.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평론가 하나가 자기가 본 영화에 대한 평론을 쓰면서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를 쓴 적이 있었다. 인터넷이 난리가 났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단어를 썼다고. 평범한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선별하여 쓰는 것은 오만하고 무례한 것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반응들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역시 이야기했었다. 가르치려 든다. 강요하려 든다. 

 

사실 계기는 어느 유튜브 컨텐츠에 달린 댓글 하나였다. 바보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준 때문이다. 바보들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게 되고 그 목소리에 다른 바보들이 모이면서 바보가 더이상 바보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바보가 정의가 되고 신념이 되고 가치가 된다. 그래서 세상은 바보가 되어 버린다. 

 

실제 그보다 몇 년 전 심형래의 영화에 대해 진중권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단어를 썼을 때는 반응이 또 상당히 달랐었다는 것이다. 진중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무엇을 뜻하는가 찾아보았고 인터넷에서도 그 의미를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었다. 지식이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를 닮아 자신 또한 지식을 갖기를 바라는 열망이 그때는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단어라면 어떻게든 알려 하고, 알지 못하는 개념에 대해서도 물어서라도 배우고자 한다. 그것은 원래 반PC를 주장하는 그놈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런데 다 필요없고 내가 아는 단어로만 써달라. 내가 아는 개념으로만 풀어달라. 아니면 오만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알게 하는 것은 가르치려는 것이고 강요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악인 것이다. 무지가 지성을 억압한다.

 

PC라는 것은, 즉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것은 기존의 관성과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백인우월주의가 아직 만연해 있는 미국과 유럽 사회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아직 성소수자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나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것들을 바로잡아 나가려 한다. 부유하고 빈곤한 차이는 있더라도 그것이 차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되고, 사는 곳이 어딘가에 따라 현실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인위적인 차별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아가 인간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환경에 대해서까지 과연 더 나은 세계를 위해서 더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일단 지금 PC라 이야기되는 것들은 그 가운데 답이라 여겨지는 것들일 것이고. 그런데 그런 모든 과정들을 이해하려니 머리도 딸리고 의욕도 없고 만사가 귀찮으니 한 마디로 뭉뚱그리고 만다. 오만하다. 가르치려 든다. 강요한다. 그래서 대안은 무엇인가?

 

그래서 반PC 주장하는 놈들이 단골로 언급하는 것이 바로 본능이라는 것이다. 원래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성소수자를 배격하고, 장애인을 멸시하면서, 빈부의 차이에 따라 차등을 두며 살아 왔었다. 수 천 년 넘게 그러고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그러지 말자는 건 인위적이고 억압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그래왔으니까 그러지 말자고. 그래서 원래 그래왔으니까 옳다는 것인가? 하긴 반PC 주장하는 놈들 대부분이 그 잘나신 능력주의도 함께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주류가 바로 능력에 의한 줄세우기와 차별을 주장하는 이른바 2030 남성들인 때문이다. 백인이 우월하니까 백인을 최우선으로 두고, 자신들은 그래도 흑인보다는 피부가 하얀 편이니까 흑인 위에 있겠다. 성소수자라는 존재에 대해 굳이 이해하고 그들과 공존하려 하기보다 그냥 대놓고 멸시하고 조롱하고 배척하면 그쪽이 더 자기가 잘난 존재가 된 것 같지 않은가. 시골 산다고 우대받지 말고, 가난하다고 배려가 주어져서는 안되고, 사회적 약자라고 지원이 돌아가서도 안된다. 왜? 내가 그들의 위에 존재해야 하니까. 그것이 곧 본능일 테니까. 그들이 입만 열면 떠드는 신분상승이라는 말처럼 다시 원래의 신분제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자신들이 지배신분에 속하는 신분제로. 왜? 그쪽이 더 쉽고 더 편하고 더 직관적이니까.

 

물론 예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놈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었다. 아니 원래 PC의 반대편에 있던 관습적이고 관성적인 도덕과 정의를 고수하던 보수주의자들은 오히려 더 첨예하고 정교한 논리를 펴고 있었다. 이들과는 별개다. 그냥 막연하게 쟤 싫으니까. 저것들 마음에 안드니까. 그런 것들따위 거부하고 싶어지니까. 다만 그런 부류들에게 과거에는 마이크가 쥐어지지 않았었다. 그래도 그들을 대변하는 보다 첨예하고 정교한 논리를 펴는 이들이 대신해서 마이크를 쥐고는 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막나가는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그런 놈들이 마이크를 쥐고 비슷한 놈들을 선동해서 아예 세력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그것도 심지어 남의 나라에서 반PC라 그러니까 그게 뭔지도 모르고 말 그대로 원숭이 새끼들마냥 답습해서 떠드는 수준들로 말이다. 아니 언제부터 일본 학부모단체의 압력에 의한 검열들까지 PC가 된 것인데? 미국 보수적인 개신교 교회와 역시나 학부모 단체들에 의해 이루어진 도덕주의적인 검열들까지 죄다 PC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심지어 판타지세계에는 성소수자란 없다는 막말까지 떠든다. 그동안 판타지소설이나 만화, 영화, 게임 등에 등장한 LGBT들에 대해 한 번 떠들어볼까? 그런데 통한다. 왜? 생각이 없으니까. 생각하기 싫으니까.

 

그러니까 나로 하여금 생각이란 걸 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그냥 지금까지 살던 그대로 살도록 하는 것을 오로지 바란다. 그러면서도 신분은 상승했으면 좋겠다. 돈은 많았으면 좋겠고, 신분은 높았으면 좋겠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았으면 좋겠다. 이야, 이러고나니 또 얼마전 봤던 판타지 지뢰가 생각나네. 반PC란 반지성주의의 다른 말이라는 이유다. 그나마 미국에서는 미국의 주류 백인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관습과 가치라는 것이 있으니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동안 자기들이 그래 왔으니까. 그래도 전혀 문제없었으니까. 그래서 더 나았었으니까. 그런데 먼 한국땅에서 제대로 PC라 할 만한 어떤 교육도 정책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오히려 더 과격한 모습까지 보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바보는 답이 없다. 그리고 바보는 자기가 바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런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 수 천 년 인간은 그러고 살아왔다라? 그러지 말자고 인류는 지금까지 문명을 발전시켜온 것이 아니던가. 과연 진정 무엇이 인간의 진실한 본능일 것인가. 새삼 깨닫는 것이다. 저 새끼들은 답이 없다. 한숨만 나온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