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이란 말이 있다. 꿩이란 대개 사냥해서 잡고 닭은 집에서 기른다. 사냥하다 보면 못잡는 때도 있지만 집에서 기르는 닭은 몇 마리인지 바로 계산이 선다. 그래서 원래 요리에는 꿩고기를 써야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꿩이 없다면 급한대로 닭으로도 비슷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의 유래다.

 

뭐든 마찬가지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려면 코발트 안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수입해서 써야 하는 코발트 안료는 비싼데다 수급까지 불안정하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철가루로 그림을 그리니 그것이 철화백자란 것이다. 원래는 물소뿔로 만들어야 하는 각궁이지만 여러 사정으로 물소뿔의 수입이 여의치 않으면 소뿔이나 다른 재료로도 대체해서 만들어 썼었다. 당장 써야 하는데 구하기도 어려운 재료를 기다리느라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 없는 때문이다.

 

반도체업체에서 일본산 고순도 고품질 소재와 원료를 굳이 사용하는 이유는 효율 때문이다. 한 마디로 순도와 품질이 좋은 만큼 불량률을 자신이 의도한 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제조원가도 낮추고 이익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일단 일본산 소재와 원료들이 제 때 필요한 만큼 공급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불량률을 1% 낮추는 대신 3개월에 한 번, 그것도 제한된 양만을 공급받는다면 과연 그런 소재와 원료를 사용할 이유가 있을 것인가. 차라리 불량률이 조금 높아지더라도 더 쉽게 더 싸게 필요한 때 필요한 양을 구할 수 있는 소재와 원료 쪽이 효율 면에서도 더 낫지 않겠는가. 불량률 1% 줄이겠다고 비용이 12배 늘어난다면 그것이야 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인 것이다.

 

이미 일본 제품의 점유율이 100%가 아니라는 점에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설사 약간의 품질차이는 있더라도 이런 식으로 정치적인 이해에 따라 마음대로 공급을 차단하는 상대와 계속 거래하는 것과 비교하면 어쩌면 그쪽이 더 나을 수 있다. 실제 일본이 수출규제를 발표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에 대한 대체제들이 언급되고 있었다. 국산도 있고 다른 나라 다른 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도 있었다. 다만 그것들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테스트기간과 그를 적용하기 위해 공정을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동안 국산제품이 개발되었을 때도 대기업들은 그것들을 사용하기를 꺼렸었던 터였다. 새로운 제품을 공정에 적용하려면 그만한 시간과 수고와 비용이 필요하다.

 

비로소 일본 정부도 깨달은 모양이다. 아니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다. 지금 일본 정부의 조치로 인해 일본 기업들이 얼마나 우리 기업들의 신뢰를 잃었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에 대해서. 여전히 자신들의 제품이 없으면 삼성에서 반도체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수출물량을 풀면 바로 다시 일본 기업들의 제품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한국내 일본에 우호적인 여론을 불러일으켜 다시금 자신들에 유리한 상황으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이 일본 정부의 의도처럼 그리 쉽게 이루어질 것인가.

 

각오한 것이다. 그냥 다소간의 손실이나 낭비를 감수하겠다. 그만큼 더이상 일본기업들을 믿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일본 기업들을 휘두르는 일본 정부를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일본 정부에서 어떻게 나오든 한국 기업들은 일본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당장 거래가 재개되어도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으니 최소한 일본과 상관없는 다른 기업과 거래하려 한다.

 

멍청한 것이다. 굳이 반도체를 제조하는데 고순도 고품질의 소재와 원료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면 그만 못한 제품으로는 아예 반도체를 만들지 못하는 것인가. 만들 수 있다면 과연 그 비용이나 손실 등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가. 삼성이 바보가 아니다. 하청이 원청을 상대로 싸워 이기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를 가지고 마지막 장난질을 하려 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결국 소재와 원료, 부품들의 품질이란 효율의 문제다. 그나마도 결정적인 수준도 아니고 약간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수준인 것이다. 99.999와 99.999999999의 차이가 얼마나 될까? 다만 그만한 비용과 손실을 감수해야 할 당위가 있는가 없는가. 고맙기도 하다. 삼성이 결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주 재미있어졌다. 끝이 보이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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