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정치인이란 높으면서 낮은 자리다. 관료는 다르다. 인사권을 가진 상사의 인정만 받으면 그 아래 다른 모두로부터 떠받들려질 수 있다. 상사에게는 철저히 낮추고 아랫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오만해져도 된다. 굳이 국민이라고 안중에 둘 필요 없는 것은 어차피 자신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상사이지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험을 통해 선발된 엘리트이기에 국민의 위에 군림하며 그들을 업수이여겨도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정치인은 다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이 스스로 정치인이 되려 하면 그런 다수 국민, 유권자의 지지가 필요하다. 평소 안중에도 없던 길거리 노점상이나 폐지줍는 노인조차 그들의 한 표가 없으면 정치인이 될 수 없다. 당장 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어도 다음 선거를 기약할 수 없다. 철저히 낮춰야 한다. 최소한 선거를 치르는 동안 만큼은 비굴할 정도로 낮추고 유권자의 눈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자기보다 공부도 못했고, 집안도 별볼일 없고, 돈도 못 번 못난 대중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비위를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가나 싶었다. 하필 그 주위를 채우고 있는 것이 정치 자체를 우습게 여기던 이명박의 측근들이다. 그들도 국민 무서워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국민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는 것도 배우지 못했다. 기자들조차 자기보다 아래다. 성가시게 물어대며 멋대로 기사를 쓰는 기자라는 인간들부터 자기보다 한참 못한 존재들이다. 원래 정치를 시작한 이유도 그것이었을 터다. 자기보다 못한 것들이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고 훨씬 높은 자리에서 거들먹거린다. 고작 국회의원이 장관이며 대통령의 수석이며 인정받은 엘리트인 자기의 위에서 놀려 한다. 이번 기회에 바꿔 보겠다. 그러니까 반기문 주위에 버티고 있는 인사들이 이명박 계열이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이명박을 지지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정치가 우습다.


하지만 쉬울 리 있나. 여기저기 번거롭게 돌아다녀야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도 행동도 수도 없이 보여야 한다. 자기가 자기가 아닌 것 같은 것도 굴욕인데 그런 자기를 모두가 선의로 봐주지 않는다. 지지율마저 떨어진다. 내가 뭐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뭐한다고 이 굴욕과 수모를 견디고 있는 것일까. 개헌 어쩌고 떠들 때 슬슬 싫증을 내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참 용케 여기까지 버티며 오기는 왔다.


대부분 알고는 있었다. 이 사람은 깜이 아니다. 깜은 커녕 대선이라는 엄격한 검증의 과정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지지율이 떨어지고 추대가능성이 사라지면 불출마하지 않을까 예상은 하고 있었다. 조금 빨랐던 것은 생각한 것보다 더 형편없었거나 그래도 생각보다는 영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이대로 버텨봐야 가능성은 없다.


될 사람이 아니었다. 되어서도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최순실이 많은 일을 해주었다. 자기의 아버지가 만든 이 땅의 보수를 박근혜가 완전히 박살내 주었다. 대세라 여기고 했던 행동들이 이제와서 발목을 잡는다.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동안 반기문을 지지하던 사람들마저 의심하기 시작한다. 똥밭에서 태풍이 불었는데 똥벌레 한 마리가 휩쓸려 떨여졌다. 갑작스런 뉴스가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예정된 수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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