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이후 민주정부 대통령들의 공통점이라면 취임하는 순간 이미 차기 대권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 전대통령도 맨손 500만 표를 외치던 이인제를 영입하고, 노무현 전대통령을 해수부장관에 임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노무현 전대통령 역시 당내 유력 대선주자였던 정동영과 김근태를 각각 통일부와 복지부의 장관으로 임명함으써 국정에 대한 경험을 쌓고 자신의 실력을 국민들에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이낙연과 김부겸, 김영춘 등 당내의 유력인사들을 행정부로 불러들여 기회를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대통령의 이름으로 대놓고 한 사람을 차기 대통령으로 밀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노무현 전대통령도 대권에 대한 욕심만 컸던 정동영이나 김근태로부터 많은 원망을 들어야 했었다. 조금만 더 자기에게 기회를 몰아줘도 괜찮을 텐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실망으로 배신감으로 이어진 탓이었다. 그러나 이후 치러진 선거들에서 드러났듯 결국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이며 인망이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지율이 바닥을 뚫고 들어가느라 너도나도 현직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하는 상황에 노무현 전대통령이 기회를 더 몰아주었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러니까 기회는 내가 줄테니 그 기회를 살려서 대통령까지 되는 것은 알아서 하라. 안타깝게도 당시 노무현 전대통령이 기회를 주었던 인간들 가운데 제대로 그 목적을 이룬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찌되었거나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박원순이나 이재명 등은 이미 지자체장으로써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만한 무대를 스스로 쟁취하여 가지고 있었다. 굳이 대통령의 도움까지 필요치 않았다. 아니 지난 2월 신천지발 코로나19의 확산상황에서는 이재명의 한 발 앞서가는 과감한 행동들이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까지 견인한 바 있었을 정도였었다. 결국은 국회의원 배지 하나 밖에 없는 김부겸이나 김영춘 같은 민주당의 험지에 도전하던 원내 인사들일 것이다. 인품이나 실력을 익히 알고 있지만 중앙정치에서 소외된 전남의 도지사로 있다는 이유로 어느새 잊혀진 이름이 되었던 이낙연도 마찬가지였다. 대선후보감이 많아야 만일의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다. 이후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개혁정책들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정권재창출을 위한 준비는 필수적이다.

 

대통령이란 그냥 국가원수에 행정부의 수반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이미 정치인이다. 최고의 위치에서 최고의 힘을 가진 대한민국 제 1의 정치인이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행동이 정치적이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소속 정당의 지지율을 움직이고 의회에서의 의석수를 바꾸며 차기 정권에 대한 기대에마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소속 정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의회에서의 의석이 줄고 차기정권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면 그만큼 대통령의 정책에도 영향이 돌아오게 된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라도 소속정당인 여당과의 협력은 필수적이고 여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정치적인 고려 또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니까 정부가 여당에 힘이 되어 주고, 여당이 정부에 힘이 되어주는 선순환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그러라고 정당의 이름으로 대선후보도 내고 하는 것이다. 문재인 개인의 이름만이 아닌 당의 이름까지 더해서 차기 대통령감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면 지금의 남북경색국면에서 청와대가 당에게 도움을 구할 것은 무엇이고, 또한 당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이인영을 통일부장관으로 끌어 온 것이다. 이미 그동안 원내대표로써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며 당내에서 또 한 사람 유력한 리더로써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었다. 민주당에서 큰 세력을 이루고 있는 운동권 가운데서도 성골이라 할 수 있는 전대협 의장 출신이고, 정치인으로서도 다선의원이며, 원내대표로써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바 있으니 다음 단계를 준비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전에도 몇 번이고 당대표며 원내대표에 출마하면서 자신의 정치적인 야심을 가감없이 드러낸 바 있었기에 그러니까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야심과 실력을 십분 발휘해서 통일부를 이끌고 남북경색국면을 타개하는데 기여해 보라. 어제도 말했듯 그것은 이인영에게 또 한 번 더 큰 기회가 되어 줄 것이다. 당장의 경색국면이 풀리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그 공은 고스란히 이인영에게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인영 만일까?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대한민국이 북한도 아닌대 대북전문가라 할 만한 사람이 박지원 하나 밖에 없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파격이라 여겨질 정도로 국정원과 그렇게 어울려 보이는 인물도 아니다. 그런데 왜 박지원인가? 그러니까 지금의 남북경색국면이 긍정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그 공을 통일부장관인 이인영 혼자서 모두 독점하게 두어야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대표 선거에도 출마해야 하는 이낙연을 다시 행정부로 불러들일 수 없다. 이낙연의 옆에 붙여 줄 수 있는 인물에게 그 역할을 나누는 것이 적절하다. 이낙연은 열린우리당 분당 당시 노무현 전대통령과의 인연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남았을 정도로 구 민주계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그리고 박지원은 그 구 민주계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말이 구 민주계지 김대중 직계다. 아직 원내에 확실하게 자기 사람이랄 만한 사람이 없는 이낙연에게 있어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있는 박지원이 국정원장이 되어 대북문제에서 크게 활약하는 것은 상당히 반가운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남북관계의 경색은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다. 타개할 수 있다.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이대로 그 모든 공을 청와대 혼자서 독점해야 하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과 그 다음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자리에 차기와 차차기를 위한 안배를 마련해 둔다. 즉 박지원을 굳이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국정원장이란 자리에 앉힌 것은 차기 대권주자로서 아직은 불안한 이낙연에 대한 배려 차원인 것이다. 당장 이재명만 해도 대북전단에 대해 강경한 조치를 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낙연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래서야 자칫 당대표가 되고 난 뒤에도 존재감없이 묻힐 수 있다. 더구나 박지원이 돌아오면 운동권의 이인영에 더해 민주당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구민주계도 다시 흡수할 가능성이 생긴다.

 

아무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면 그런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위기를 그냥 넘기지 않고 기회로 삼는다. 차기와 차차기를 위한 기회로써 당과 함께 나눈다. 뼈에 깊이 새겨야 한다. 이낙연이든 이인영이든. 김부겸이나 김영춘도 대통령을 감히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김현미에게도 기회는 충분히 주었었다. 김대중부터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까지 민주정부의 대통령들처럼 당을 위해 노심초사 노력하는 대통령은 보수정당에 없었다. 공작 같은 것 말고 정당한 정치적 행위로써. 그런 의미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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