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방송사에서 계약직, 그것도 여성 방송인을 해고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주장하는 페미니즘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약자인 여성 비정규 방송인의 밥줄까지 끊으려 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하긴 심지어 현직 검사마저 남성인 검찰 수뇌부를 움직여서 징계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절대 비판해서는 안된다며 감싸고 도는 김재련은 일찌기 박근혜 정부에 부역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약자인 여성노동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전력이 있는 이였다. 무슨 의미인가.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고발과 관련한 일련의 논란들이 오히려 정의당을 비롯한 자칭 진보들을 관짝에 넣고 못질까지 하게 되었다는 이유인 것이다. 진보란 당연히 사회적 역자를 위한 고민이고 실천이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달라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참 약자인데 그런 이들의 밥줄을 끊으려는 것은 진보의 태도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군사독재를 지지한다고 야간 환경미화원들의 열악한 처지는 아예 외면하겠다는 것인가?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부당한 억압과 착취를 긍정한다고 아파트 경비원들이 일방적으로 해고당하는 상황을 방치하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이 진정으로 위하겠다는 사회적 약자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계약직 방송인인가? 정부에서 요직까지 맡았던 변호사인 것인가? 여성에게 여전히 불리한 검찰조직에서 고군분투중인 여성 검사와 손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남성인 검찰지휘부와 연대하려는 것인가?

 

한 마디 비판은 커녕 질문조차 못하게 감싸고 있는 그 김재련이 그동안 해 온 발언들을 보라. 조금이라도 불리한 발언인 나오면 2차가해라며 입법으로 막겠다 엄포놓는 그 김재련의 이후 행보들을 보라. 그래서 이번 북한에 의한 한국 국민의 피살과 시신훼손 사건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조차도 어느새 납득하고 마는 것이다. 전쟁을 했어야 했다 주장한다. 전면전으로 확전될 위험까지 감수했어야 했다 주장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조심스럽게 대하던 이전의 진보들과 전혀 다른 입장이다. 왜이겠는가. 연대할 대상이 달라진 것이다. 어디에 속해 있는가 정체성마저 달라진 것이다. 그럴싸한 변호사와 대단한 검찰 수뇌부와 훌륭한 여성 정치인, 기업인, 지식인들이다. 그러니까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한 논란에서 저들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깟 공부도 못해서 경비나 서는 계약직따위 자기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당시도 물었던 것이다. 여성 사용자와 남성 노동자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정의당은 누구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일 것인가. 그런데 사실 답은 이미 박지희 아나운서가 TBS에서 잘린 순간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규탄했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성 노동자의 밥줄을 끊느냐며 함께 연대해서 싸우려 했어야 했다. 정의연 논란에서도 정의당은 화해치유재단에 속해 있던 자칭 여성주의자들과 연대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쪽이 아무래도 정의연 쪽 보다는 스펙이나 지금의 사회적 지위 면에서 훨씬 우위에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저들과 어울리면 자신도 저들처럼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째서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이 다수 연루된 사학비리에 대해서는 감히 공정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인가. 어째서 보수진영에서 나타나는 법적 도덕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는 것인가. 물론 발언하기는 한다. 그러나 조국 전장관 딸의 표창장이나 추미애 장관 아들의 휴가에 비하면 턱없이 미미하기만 하다.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들의 정규직화에 대해서도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당연하다. 그러면 민주당과 비슷한 부류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안철수나 보수진영에서 항상 민주당에 대해 하는 말이 있다. 평생 자기 힘으로 돈도 벌어보지 못한 백수 나부랭이들이 기회를 잘 만나 운동권 전력만으로 국회의원씩이나 되었다. 그래서 감히 민주당에 대해서는 길을 내달라 요구하면서도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지 못하는 것이다. 스펙도 화려하고, 사회적 지위도 저만한데, 기왕 어울리려면 저런 이들과 어울려랴 하지 않겠는가. 기왕 칭찬을 들으려면 조선일보 같은 일류 언론의 칭찬을 들어야 한다.

 

심상정의 본심이 아닌 것은 안다. 다만 심상정도 어느새 뒷방으로 밀려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정의당의 주류는 그런 무리들이다. 여성을 위해서 계약직 여성 방송인의 밥줄을 끊고, 남성중심의 검찰조직에서 고군분투하는 소수의 여성검사들마저 남성인 수뇌부를 움직여서 징계하려 한다. 표창장과 휴가에는 분노하지만 수 천억 대 부정과 사학비리에는 침묵한다. 선택적 정의는 그들이 지향하는 바와 닮아 있다. 그럼에도 저들이 진보인 이유는 여성주의가 진보라 여기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한겨레와 경향이 진보언론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재련도 전수혜도 모두 진보다. 민주당은 아무것도 아닌 그냥 악이다.

 

그런 적대감이 이번 북한군에 의한 한국국민 피살사건에 대한 이해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민주당은 무조건 잘못했다. 민주당 정권은 무조건 악이다. 그런데 원래 정부가 바뀌기 전부터 일관되게 지향해 온 방향이기도 했다. 민주당만 아니면. 문재인만 아니면. 그리고 이제 여성주의를 통해 정의당의 정체성 자체가 바뀌게 된다. 자칭 진보의 지향 자체가 바뀌고 만다. 그래서 누구와 연대하고 어디에 정체성을 두는가? 그래서 묻는다. 여성 사용자와 남성 노동자 사이에 다툼이 있다면 누구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일 것인가. 진보의 현실이고 정의당의 현실이다. 당연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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