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은 여우다. 확실히 나이를 먹으며 말과 행동에서 실수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자기 안방인 선거에서는 여전한 관록을 보여준다. 국회의원 배지가 걸린 총선을 앞두고 이토록 잡음이나 분란 없이 조용히 돌아가는 민주당의 모습이란 지지자들마저 수많은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일 것이다. 크게 이슈가 될 만한 일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때마다 신속하게 큰 무리없이 원만하게 넘어가는 능숙함마저 보이고 있었다. 누구의 공이겠는가.
그래서 생각했다. 사실 나도 경향일보를 욕하기는 했지만 - 절대 경향신문이라고는 안 불러준다 - 조금 무리하지 않았는가 싶기는 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리버럴 정당이고, 민주주의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앞세우는 정당인데 과연 언론사의 칼럼을 검찰에 고발하는 것이 법적인 문제를 떠나 타당하고 정당했었는가. 민주당이 지키고 추구하고자 했던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듯 보이지는 않겠는가. 자칫 그로 인해 지지층의 이반을 불러오지는 않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주체할 수 없이 분노하던 나 자신의 모습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선거가 쉽지 않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격차가 10% 가깝게 나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이후의 전망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고 한다. 취약한 외곽에서부터 조금씩 이반이 일어나고 있고, 그 안쪽에서도 동요가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당장의 지지율만 믿고 낙관하며 방심한다면 자칫 얻어야 할 표조차 다 얻지 못하고 선거에서 지는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른다. 나 하나 쯤이야. 이 정도 격차가 벌어져 있는데 나 하나 투표하지 않는다고 얼마나 결과가 달라지겠는가.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는다고 지기야 하겠는가. 심지어 당 내부에서조차 위기의식 없이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는 이들이 있을 지 모른다. 분위기를 다잡는다. 지금 당의 상황이 그렇게 낙관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정부와 여당을 둘러싼 언론환경이 어떠한가. 앞으로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들 언론들은 어떻게 나오게 될 것인가. 피아구분도 필요없다는 것은 그나마 진보언론이라고 같은 편이라 여겼던 경향일보가 대놓고 민주당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망해야 대한민국이 산다며 아예 민주당 빼고 투표하라며 선동하고 있었다. 경향일보 편집부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명백히 선거법 위반인 그런 칼럼이 지면에 실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 혹시라도 경향일보를 보지 못한 지지자들을 위해서라도 그 칼럼의 내용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당이 모든 언론에 의해 전방위로 포위되어 있다. 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언론의 보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면 야당이 아닌 언론에 의해 선거에서 패배할 지 모른다. 더구나 언론은 지금 정부와 적대하는 검찰과도 손잡고 있는 중이다. 검찰이 언론을 통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더불어 언론에도 경고를 한 것이다. 이번 고발에는 이해찬 대표가 뒤로 빠져 있었다. 일선에서 고발을 상의없이 결정했을 뿐 이해찬 대표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질책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안다. 이해찬 대표의 의지 없이 언론을 선거법위반으로 고발하는 상당히 엄중한 결정인데 일선의 판단만으로 이루어졌을 리 만무하다. 이해찬 대표의 의지가 아니었으니 차기유력대선주자인 이낙연 후보의 제안도 있고 해서 고발을 취하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해찬 대표 자신의 의지였다면 과연 대통령이라고 그것을 강제로 뜯어말릴 수 있을까. 누가 있어 그를 질책하고 취하하도록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불출마를 선언했으니 더이상 정치적인 이해에 얽매일 이유도 없다.
어차피 민주당 입장에서도 총선에서 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란 것이다. 여전히 대통령은 문재인이지만 이후 국정동력이 크게 떨어지며 다음 대권까지 내줘야 할 지도 모른다. 더이상 자극하면 민주당도 끝장을 보려 할 지 모른다. 자유한국당이 그런 것처럼 더이상 민주당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언론들은 크게 곤란을 겪게 될 지 모른다. 한 번 본때를 보여준 것이다. 민주당도 미치면 자유한국당처럼 언론사를 고발할 수 없다. 칼럼니스트와 함께 언론사까지 모두 고발할 수 있다. 그만큼 이번 총선을 임하는 각오가 필사적이다.
역시 그동안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동안에는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항상 자기들만의 방식을 고수해 왔었다. 자신들만의 원칙과 가치를 마지막까지 지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니다. 무조건 이기고야 만다. 방해하는 놈들은 모두 가만 두지 않겠다. 그래서 하필 경향일보였던 것이다. 조중동이야 처음부터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었으니 그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 경향일보이기에 오히려 민주당의 의지가 더 명확히 전달된다. 언론의 보도 그 자체를 문제삼을 수 있다. 자유한국당만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도 그럴 수 있다.
지금이어야 했던 이유다.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 그때는 통제가 어려워진다. 차라리 지금 터뜨려야 언론을 고발했다는 오명을 벗을 시간적 여유도 벌 수 있다. 마침 아직 코로나의 여파에 보수통합 이슈까지 더해져 잠시 이슈가 터지고 끝날 수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보수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질 경우 회복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패닉에 빠지는 것도 예방한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벌어준다. 그만큼 위중하고 그렇기 때문에 언론도 더이상 봐주지 않는다.
더 열심히 선거운동 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드시 투표하고, 주위 사람들도 설득하고, 그래서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표를 끌어모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도록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후보자들 역시. 당원들 역시. 언론은 믿지 말라. 언론에 기대지도 말라. 언론은 모두 적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겠지만. 경향일보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확실한 멸망시켜야 할 적이다. 전선을 분명히한다. 목표와 종기도 분명히한다. 여우다운 짓이다. 적당한 위기감은 승리에 도움이 된다.